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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5
<순례자 233> 십자가에 못 박힌 자의 외침

십자가 사형은 로마인들에게는 아주 모독적인 형벌로 알려졌기 때문에 로마시민에게는 십자가형은 유보되었다. 반면에 유대인들에게도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는 혐오스런 형벌이기 때문에 예수를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처형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 대신 죽으신 예수 십자가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영광의 십자가로 변신케 했다.

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했나?
유대인들은 예수가 신성모독죄를 지었기 때문이라 했고, 로마인들은 정치적 반란꾼으로 몰았고, 가롯 유다의 배신의 쓴잔으로 백성들의 모반으로 십자가가 세워졌다고 한다. 가롯 유다는 「내니이까」뻔뻔스럽게 자기는 아니지요 확답을 받으려 했지만 「네가 말 하였느니라」하셨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본 십자가는 예수께서 속죄양으로 죽게 하셨다. 유대인들 각 사람의 죄 위해 한 마리 희생양이 필요하고, 한 가족 위해 유월절 한 마리 양이 필요하듯이, 한 민족 위해 그리고 속죄일에 한 마리 양이 바쳐지듯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어린양 예수께서 단번에(once for all)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속죄를 받게 되었다.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사 하나님과 화해케 하시려고 하나님은 십자가를 세우셨다.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의 형벌을 그리스도께서 받으시고(고전15:3) 온갖 치욕과 버림과 고통과 아픔, 저주와 죽음을 내 대신 받으신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께서 원망과 시비‧변명‧호소 대신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자기를 때리고 조롱하고 저주를 받았으나 예수는 다시 저주하거나 원망치 않고 용서하셨다. 자기를 때리고 못 박은 자를 모르실리 없건만 예수님은 하늘에서 보복의 소나기나 불비를 내려 저들을 멸절시켜 달라 하는 대신 침묵하시다가, 위로 하나님 아버지께 대하여는 당신의 존엄이 굴욕을 당하며, 당신의 선하심이 버림을 받고 있는 순간에 천군, 천사의 파송권을 갖고 계신 그리고 신성모독을 심판하실 주권자 하나님께 얼굴을 들어 외치시기를 “당신의 거룩‧존엄‧능력‧명예를 잊으시고, 저희를 용서하옵소서”라고 하셨다. 심판자로서 하나님이 아니라 중보자로 아버지 하나님께 향한 기도를 드린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 대신 하나님의 자비를 애원하신 예수님은 인간 앞에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하거나 자기 수난의 시간적 단축을 구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살인자들의 용서 뿐 아니라, 저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원한 것이다. 인간이 용서를 알지 못할 경우 그 용서는 무용하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부활하신 후 저들이 죽인 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경우 저들에게 두려움보다 위로가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과 선한 선물이 여기 돌연히 나타났으며 이로써 모든 죄악으로 찬 현재는 지나가 버리게 되었다. 무리들은 예수님의 기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저들이 자기의 행하는 바를 알지 못하나이다’라며 이해하고 있다.


예수님의 이 기원이 21세기에 사는 우리에게도 타당성이 있는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던 형리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예수를 메시야나 하나님의 아들로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못 박히신 예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셨다.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 승리하심으로 나타나 우주의 주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선․악 간에 판단하실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핑계할 수 없는 인생들이 지금도 그리스도를 비방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신 그리스도의 기도는 1세기에 십자가에 그리스도를 못 박은 자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타당성을 가진 말씀이다.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몽골울란바타르대 명예총장ㆍ서울교회 원로>

한국장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