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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하나님의 목회'에 부르심을 받았나이다
2017 사명자 대회

11월 20일(월)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의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시므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의 은혜를 베푸셨다.
1. 신앙의 출발에서 - 신앙의 출발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거저 받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를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진리를 오직 성경에서 배운다.
2. 받은 자로서 - 인생의 크고 중요한 것을 다 받은 자로서 은혜를 베푸신 분에게 우리는 최소한 이 질문은 해야 한다. “왜, 무엇 때문에 제게 이렇게 하셨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분명하다. “이제 후로는 너를 위해 살지 말고 나를 위해 살라!”
3. 사명자의 자세 - 교회는 주님의 교회요, 목회는 주님의 목회이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목회를 위임 맡은 사명자로서 자기를 위하여 살고, 자기를 위하여 직분을 맡고, 자기를 위하여 교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직분을 맡고, 주님을 위해 교회 일을 하는 것이다(롬 14:7-9, 갈 2:20).


11월 21일(화)
자기를 부인하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이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제자란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들이며 사명자란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섬기려는 자들이다. 오늘날 다수의 기독교 신앙인들이 자기 부인이 아니라 자기 실현을 위하여 예수를 부른다. 기독교는 자기 추구, 자기 실현의 종교가 아니다.
1. 자기 십자가를 지고 - 주님의 십자가는 주님 밖에는 아무도 질 수 없는 십자가이다. 각 사람들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진 자기 십자가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 지혜로 분정해주신 형편과 처지가 바로 그것이다. 신앙생활은 현실 도피가 아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상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지만 베드로가 서야 할 자리는 변화산상이 아니라 산 아래 삶의 현장이었다. 지금 우리의 목회 현장은 서울교회이다.
2. 나를 따를 것이니라 -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우리는 향방을 잃어버리거나 놓쳐서는 안된다.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주님의 자취를 따라가야 한다(벧전 2:19-21). 예수님을 따르는 사명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자기 부인이다. 사명을 받은 사람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하겠다.

11월 22일(수)
짐을 서로 지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 6:2, 5)
1. 서로 다른 짐 - 우리 모두에겐 서로 져야 할 짐이 있다. 크고 무거운 짐은 함께 져야 할 것이고, 작고 가벼운 짐들은 각자 져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은 자기 홀로 짐을 지고 가기에도 벅찬 길이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짐을 서로 지라고 권한다. 교회에는 어느 누구에게 속하는 짐인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누군가는 져야 할 그런 짐들이 있다. 사명자들은 바로 그런 짐들을 위해 구별된 사람들이다.
2. 교회 안에서 요구되는 두 종류의 사역 - 교회 안에는 말씀괴 치리의 사역을 하는 목사와 장로가 있고 세상적 돌봄을 위하여 사역을 하는 집사와 권사가 있다. 목사와 장로 뿐 아니라 집사와 권사들도 목회자이다. “설교직은 단지 여러 직책들 중 하나이며 그것과 병행하여 신자의 가정 방문과 감독과 징계를 통하여 사역을 시행하는 장로직이 존재하며 더 나아가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집사직이 존재한다. 또한 최종적으로 이 지리를 발전시키고 진리를 교훈하고 변호하는 교사직도 존재한다”(바빙크의 ‘하나님의 큰일’524)
주님은 한 사람에게 모든 은사를 다 주지 않으셨다. 항상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또 다른 사람의 도풔을 사용하기를 원하신다.(81)

11월 23일(목)
이웃을 기쁘게 하라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 15:1-2).
1.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신앙인 - 교회 안에는 믿음이 강한 자도 있고 약한 자도 있다. 믿음이 강한 자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여야 한다(롬 15:1). 그렇다면 누가 믿음이 강한 자이고 누가 믿음이 약한 자인가?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롬 14:1). 그러나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아주되 비판 없이 받아야 한다(롬 14:1). 그리고 피차에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2. 기쁨조차도 타인 위주라야 한다 -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고 이웃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배려를 말한다. 선진 사회의 특징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며, 이것은 성경의 정신이요 선민이 살아갈 수준이다.
3.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 - 이웃에 대한 비난과 비방은 우리 입에 담을 바가 아니다. 가능한 이웃에 대하여는 칭찬하고 변호하여야 하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침묵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다고 했다(빌 2:5, 요 5;30, 6:38).
예수님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하여 배려하며 살 것을 가르친다. 특히 가난한 이웃에 대하여는 더욱 배려하며 살도록 교훈하셨다. 뿐만 아니라 되갚지 못할 사람들을 대접하도록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받은 사명자로서 신앙인의 예의를 갖추어 살아야 할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이웃을 적극적으로 배려하며 사회 전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11월 24일(금)
서로 발을 씻기라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3-14)
예수님의 제자들에 그 날 밤은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너무나 황송한 나머지 제자들은 내일은 내가 주님의 발을 씻기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들에게 내일은 영영 주어지지 않았다. 사랑을 받아보지 않은 자들은 사랑을 흉내낼 수 없다. 하나님 사랑은 형제 사랑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요일 4:21).
이런 말씀을 받은 오늘 우리들은 주님은 우리를 섬기러 오셨다는 기독교의 핵심을 본다. 발씻김의 절정은 십자가상의 죽음이다. 주님에 대하여 우리는 주님의 섬김을 잘 받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주님께로부터 발 씻김을 받은 자로서 주님의 발을 씻겨 드리듯 서로의 발을 씻기며 살아야 한다.
-서로를 섬기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그가 우리의 발을 씻겨주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의 발을 씻겨 주는 것이 마땅하다
-교회의 목회자들은 발 씻기는 일을 모범적으로 감당하는 자들이다
-교회로서는 제자의 모습을 잘 드러내야 한다

11월 25일(토)
권계하고, 격려하고, 붙들어주고, 오래 참아야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데살로니가 교회는 칭찬 듣던 소문난 교회였다. 다른 교회에 본이 되었고, 좋은 소문이 있는 교회였다. 소문의 내용은 목회자와 성도들에 관한 것이었다(살전 1:8). 그러나 소문난 교회에도 문제 있는 성도는 있게 마련이다. 문제 있는 성도란 게으른 자들, 상심하고 낙심한 마음이 약한 자들(칼뱅), 말씀을 듣고도 전진하는 못하는 힘이 없는 자들을 말한다. 이들에게는 인내가 요구된다. 이들만 보고 있으면 교회는 문제덩어리로 보인다.
하지만 교회에는 이런 성도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는 이들을 감당한 성숙한 성도들이 함께 있다.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고,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는 사람들이 성숙한 성도들이다. 혹은 목사로, 혹은 장로로, 혹은 집사와 권사들이 이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딤전 5:10, 17). 칼뱅은 데살로니가전서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어떤 사람이 상심한 사람을 두 번씩이나 위로했는데 또 다시 똑 같은 일을 한다면 사람들은 그에 대해 일종의 역겨움, 아니 분노를 느낄 것이요 이것이 자신의 임무수행을 가로막는다는 점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권를 하는 일이나 비난을 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즉각적인 발전을 보지 못할 경우 더 이상의 성공을 포기하고 만다" 바울의 의도는 우리가 모든 사람에 대해서 인내할 것을 권면함으로써 바로 이러한 조바심을 제지하는데 있었다.
서울교회는 우리 시대에 본이 되었던 교회이다. 좋은 소문이 있던 교회이다. 그러나 세대교체에 즈음하여 예상치 못했던 갈등을 맞게 되었다. 이 갈등을 거치며 우리는 우리 속에 우리도 알지 못했던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형제자매에 대하여 용서를 구할 것이 있다면 용서를 구해야 한다. 홀로 헤치고 나가기에 벅찬 현실일지라도 서울교회 성도들은 건전한 신앙교훈을 받은 성도답게 성숙한 성도로서 각자의 위치에서 적절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서울교회 성도들은 말씀에 근거한 소망을 가지라(미가 7:7-9). 우리 모두는 주님의 교회 가운데 세움 받은 목회자들로서 위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를 힘입어 쉽지 않은 이 현실을 잘 감당해 나가야 한다.
성삼위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하나님 말씀을 받은 섬긴 종과 이 말씀에 함께 참여한 서울교회 모든 성도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자.

정리 : 허 숙 권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