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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1
소위 관상기도에 대한 진단과 대안(2)
2018년 신년 기획 기사

오늘날 한국교회에 이단과 사이비가 판을 치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지 않으신 비본질적인 기독교 프로그램들이 횡행하는 이 때, 우리 성도들은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에 근거하여 미혹하는 영들을 분별해야 할 것이다. 아래는 관상기도에 관한 글이며 필자의 허락을 받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관상기도는 신사도들에 의해서도 매우 증진되고 있고, 신복음주의권에서도 매우 유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레노바레의 리차드 포스터와 The Message를 쓴 유진 피터슨이 바로 그들이다.

1. 관상기도의 의미
그리스어로 관상은 '하나님을 보다'라는 어원을 가진다고 한다. 이는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관상기도는 직관의 기도라 할 수 있으며,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이세영, 이창영, 향심기도 수련). 키팅 신부는 "관상이란 내적 병형의 과정이며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대화이자 우리가 동의만 한다면 신성한 일치로 이끌어주시는 대화"라고 하였으며, "생각과 말과 감정을 초월하시는 궁극적인 신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정신과 마음 즉 존재 전체를 개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우리 안에 계시며 호흡보다 더 가까이 계시며 선택보다 더 가까이 계시며 우리의 의식 자체보다 더 가까이 계시다고 믿는 하나님께 우리의 의식을 개방한다"고 한다. 관상기도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이며, 공부가 아니라 수련이며, 지식이 아니라 체험이라고 한다. 체험과 깨달음은 수련을 통해서 얻어지며, 수련 없이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다고 한다.

2. 관상기도의 배경
동양적 신비주의 사상과 가톨릭 신비주의를 물려받은 것 중의 하나가 현대 관상기도/향심기도이다. 관상영성이 복음주의 교회로 들어오게 된 것은 70년대 세 명의 수사들(토마스 키팅, 윌리엄 매닝어, 버절 페닝턴)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종교 통합적인 가톨릭 신학자들, 일주일간 불교명상 피정을 제공한 동양 선의 대가인 조슈 사사키, 초월명상을 가르친 트라피스트, 수사였던 폴 메리첼 등을 수도원으로 초청했다. 가톨릭 수사들과 동양명상가들의 대화를 통해 가톨릭 관상기도는 평신도를 포함한 다양한 계층의 신자들이 손쉽게 훈련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향심기도(Centering Prayer) 또는 ‘듣는 기도’ 라고도 불리는 관상기도는 "1970년대 초 미국의 한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영성에 목말라하는 현대인들을 위해 가톨릭 전통의 관상기도를 대중화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향심기도는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현존하시는 하나님께로 가는 지름길인 동시에 우리를 관상기도로 이끄는 첫 단계 라고 한다. 이 기도 방법은 하나의 권위가 없고 단일화된 가르침도 없다. 대부분의 스승들이 중세 신비주의, 힌두교, 불교의 영성 교사들을 인용한다. 이처럼 관상기도가 불교와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것은 명백하다.

맺음 말
지금까지 통용되던 기도 분위기에 대하여 새로운 기도방식에 대한 요구는 정당하다고 여겨진다. 부르짖는 기도만 기도가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늘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기도도 좋은 기도일 수 있다.
하지만 겉모양이 같다고 해서 속도 같은 것은 아니다. 겉모양은 같더라도 속의 정신과 내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기도방식을 도입할 때에 배경을 살펴서 조심할 필요가 있겠다. 특히 관상기도와 관련해서는 로마가톨릭적인 배경 뿐 아니라, 이교적이고 혼합 종교적인 배경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렇게 그 배경이 확인된 이상 앞으로 더 이상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지 말고 성경적인 가르침과 전통 안에 머무르는 것이 영적으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굳이 그런 위험성이 있는 관상기도가 아니더라도 성경의 교훈을 살펴 고요히 묵상하며 주의 뜻을 헤아리는 기도를 얼마든지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