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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함께 하시다
행 2:42-47


성령님은 우리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 등 인격의 모든 분야를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신앙의 진리를 인식하게 하시고 받아들이게 하시고 그렇게 살도록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하셨으나 제자들은 여전히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홀로 남은 제자들은 염려와 근심, 두려움과 불안에 쌓여 모여 기도하는 가운데 갑자기 그들 가운데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행 2:1-4) 영문을 몰랐던 주변 사람들이 다 놀라며 이게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대혼란이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이 일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임하신 일이라고 설명을 하며 유대인들의 회개와 예수 신앙을 촉구했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 교회가 형성되었고 세계 역사를 새롭게 하는 소망과 은혜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1. 바른 신앙의 확증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성령 주실 것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사실 성령을 보내실 것에 대한 약속은 이때가 처음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이미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라고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성령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등장과 함께 성령께서도 같이 나타나셨습니 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다고 했고(마 3:16),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눅 4:1- 2)고 했습니다. 이 밖에도 성령에 대한 말씀이 여러 군데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성령이 임하실 것을 약속하시고 강조하신 것은 십자가를 앞두신 때였습니다. 주님은 특별히 마지막 설교에서 성령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시며 성령 임재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이 오심을 그렇게 강조하신 이유는 성령의 역사 하심이 아니면 우리에게 믿음의 역사가 시작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전 12:3)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구원에 이르게 되고 그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이요 은혜입니다. 모든 믿음의 시작은 성령의 역사하심과 주관하심의 결과이어서 믿음의 역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사람은 바른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오순절날 성령 충만했던 베드로는 설교하면서 “그런즉 이 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고 했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를 바른 믿음으로 인도하십니다. 흔히 성령 충만을 많이 강조하면 광신자가 되거나 신비주의자가 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할수록 우리 믿음은 아주 정상적이고 이성적이며 모두에게 공감 가능한 바른 믿음을 형성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 등 인격의 모든 분야를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신앙의 진리를 인식하게 하시고 받아들이게 하시고 그렇게 살도록 역사 하십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친히 성령과 함께 하셨고 우리에게도 성령 충만을 강조하셨습니다.

 2. 새로운 공동체 형성
 오순절 성령 강림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게 했고 이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게 했는데 그 공동체가 곧 교회입니다. 이 공동체의 기본 특성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은 것입니다.(42절) 예루살렘 교회가 세상 모든 어머니 교회로서의 역할을 다 하게 한 동력은 바로 배움이었습니다. 성령 강림 직후의 예루살렘 교회는 가르치는 사람도, 가르치는 내용도 제도화되고 체계화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바로 가르치기를 시작한 것은 그만큼 이 일이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철저하게 혈연으로 결속된 민족 공동체였던 것에 비해 교회 공동체는 다양한 민족을 포함하는 공동체입니다. 유대교 공동체가 사회적 강제성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교회 공동체는 철저하게 자발적 헌신에 근거해야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이상은 너무나 거대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미처 조직화하지 못한 모임이었고 운영의 설계조차 마련되지 못한 공동체였지만 처음부터 세계 열방을 상대로 비전을 품었던 공동체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도들을 ‘학문 없는 범인’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모든 면에서 부족했지만 사도들은 사명감을 갖고 가르침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가르침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기적이 일어났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이 모습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으로부터 해방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르침을 받고 스데반, 빌립, 바나바와 같이 기라성 같은 예루살렘 교회의 순교적 헌신자들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교회는 지속적인 부흥을 했습니다.

 3. 사회적 인정
 모든 지상의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합니다. 교회는 분명하게 하나님께 속한 기관이지만 동시에 지금의 현주소는 세상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속하진 않지만 세상에 있습니(Not of the world but in the world). 예루살렘교회는 신생의 거룩한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예루살렘이라는 세상 현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원칙 없는 개방성 때문에 본질을 상실하는 세속화도 경계해야 하고, 동시에 세상과의 지나친 단절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은 교회입니다.(47절) 이것은 기존의 유대교에서는 볼 수 없는 요소들이 초대 교회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교가 예수님으로부터 지나치게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것에 대하여 호되게 책망받은 것처럼 너무나 겉모습에 치중했지만 초대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 감격과 기쁨과 생동감이 넘쳐났는데 이 부분이 예루살렘 시민들이 보기에 감동적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교회제도와 예배형식이 존재하지만 그 자체가 교회의 영향력을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교파나 제도에 관계없이 신앙의 진정성과 지역사회에 대한 사랑의 진정성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근본입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께 대한 순교적 충성과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로마를 변혁시켰습니다. 그들은 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순결하고 거룩 신앙으로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 신앙과 사랑의 진정성으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는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도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며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는 귀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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