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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강 : 사도신경의 내용을 알고 믿는 유익 (1)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사도신경은 서방교회 전통을 대표하는 신앙고백문이고, 약 100년경 로마 교회의 세례문답에서 발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신앙에 기초하고 있으며, 12개의 항목에 걸친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 신앙과 부활 신앙의 균형잡힌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의 사도신경으로 매주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우리가 속해 있는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2000년의 시간 동안 변하지 않고 전해 내려온 복음의 내용을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고 머리로 기억합니다.
 사도신경의 내용을 다 암송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도신경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다면, 또 매주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한다고 하더라도 예배순서의 일부로만 생각했다면,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는 유익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기회가 적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는 유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신경의 내용이 복음의 요약이기에 그 유익을 아는 이단들은 그 유익이 자신들에게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사도신경의 내용을 문제삼아서 폐기하려는 시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59문 : 이 모든 것을 믿는 것이 당신에게 지금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며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가 됩니다..
 제59문의 답을 살펴보기 이전에 문제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문제 자체가 몇 가지 내용을 전제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전제가 동의가 되어야 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에서 언급한 ‘이 모든 것’은 ‘사도신경의 12 항목’을 말합니다. 사도신경의 12개 항목을 ‘모두 믿는다’는 것이 첫 번째 전제이고, 이 모든 것을 믿을 때 ‘유익이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전제입니다. 그리고 그 유익은 나중 또는 죽어서가 아니라, ‘지금’ 누린다는 것이 세 번째 전제입니다.
 이러한 전제를 확인함으로써, 그 유익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세 가지 전제를 언급한 것은 제59문에 대한 답이 여러분이 원하는 답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59문답은 ‘이 모든 것’ 즉 복음을 믿는 것이 ‘지금’ 주는 유익을 두 가지로 제시합니다.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답만을 보면 너무나 뻔하고 당연한 말처럼 보이는데, 정작 이 너무나 뻔하고 당연한 말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는데 우리가 가진 신앙의 헛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59문답이 중요한 이유는 “구원=죽어서 천국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제59문답의 키워드는 ‘지금’입니다. “구원=죽어서 천국가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은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유익이 구원의 확신을 얻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었다는 말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은, 구원을 받았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확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 구원의 확신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복음을 믿음으로써 의롭게 되었다고 믿습니까?”라는 질문과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믿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면서 같은 질문을 다르게 표현하는,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왜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왜 그렇게 구원의 확신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의롭게 되었다고 믿기는 하지만 실제의 삶은 의로움과는 거리가 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믿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상속자로서 누리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볼 때 삶이 의롭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오는 것이지만, 하나님 뜻대로 하는 거룩한 고민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 그 확신이라는 것도 결국은 확실한 믿음, 믿음인데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과 다른 종류의 믿음이 아니라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정확하게 해야 하는데,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됩니까?”하는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됩니까?”를 질문해야 합니다.

60문 :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됩니까?


 답: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만 됩니다. 비록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크게 어겼고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으며 여전히 모든 악으로 향하는 성향이 있다고 나의 양심이 고소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공로가 전혀 없이 순전히 은혜로 그리스도의 온전히 만족케 하심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선물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나에게 죄가 전혀 없고 또한 내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실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모든 순종을 내가 직접 이룬 것처럼 여겨 주십니다. 오직 믿는 마음으로만 나는 이 선물을 받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공로가 전혀 없이 순전히 은혜로 그리스도의 온전히 만족케 하심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선물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나에게 죄가 전혀 없고 또한 내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실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모든 순종을 내가 직접 이룬 것처럼 여겨 주십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과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양심’에 귀를 기울이느냐 ‘복음’에 귀를 기울이느냐의 차이일 뿐만 아니라, 판단 기준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냐, 아니면 ‘성경’이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오늘 죽더라도 천국에 가는 것이 모두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이 세 가지 내용이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세트 메뉴, 패키지, 종합선물세트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가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는 마음으로만 나는 이 선물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방법은 ‘오직 믿음’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것도 전제가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믿음’ 자체가 ‘행위’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행위와 대조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은혜라는 토대 또는 전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내가 의지를 동원해서 나의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인 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은혜가 전제된 믿음이 아닙니다. 나의 의지를 사용하고 지적인 동의라는 과정을 거쳐서 복음을 받아들인 ‘행위’에 불과합니다. 믿음과 행위를 구분하고, 행위를 저급하게 취급하는 것은 은혜라는 전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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