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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강 : 사도신경_죄사함, 부활, 영생(2)

57문: “육신의 부활”은 당신에게 어떠한 위로를 줍니까?


 답:이 생명이 끝나는 즉시 나의 영혼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 올려질 것입니다. 또한 나의 육신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일으킴을 받아 나의 영혼과 다시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들 가운데 하나는 부활신앙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부활신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몇 가지 전제들 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들, 그 증인들이 전한 복음,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제시한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그리스도인들... 이 모든 전제들 위에 저와 여러분이 부활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직한 신앙이 참으로 부활신앙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부활의 소망이 없이 구원의 소망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적이 없어서 예수님과의 첫 대면에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는 인사를 해야할 그리스도인들도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부활신앙과 부활의 소망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증인이란,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소망과 위로를 줄 뿐만 아니라 참된 구원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참된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소망과 위로의 내용이 무엇인지 제57문답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부활 소망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57문답은 두 가지 내용을 제시하는데, 하나는 “구원에 대한 설명”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불멸과 몸의 부활을 통합 하는 것”입니다. 논리적인 순서대로 그리고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옮겨가는 방식으로 “구원에 대한 설명”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영혼불멸은 믿지만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들, 영혼만을 중요시하고 몸을 중요시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제57문답의 첫 번째 문장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첫 번째 문장은 전통적으로 구원에 대한 설명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이 끝나는 즉시 나의 영혼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 올려질 것입니다.” 구원은 몸이 죽은 후에 영혼이 그리스도에게 올려지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구원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구원 =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라는 공식에서는 중요한 두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하나는 몸을 위한 자리, 다른 하나는 부활 신앙을 위한 자리입니다.
 그러면, 다음으로 “영혼불멸과 몸의 부활을 통합하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통합이라는 단어 자체가 전제하는 것은 분리인데, 여기서는 죽음으로 인해서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몸은 생명이 끝나 죽은 상태가 되면, 영혼은 그리스도 곧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성자 하나님에게로 올라가게 됩니다.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 전통적으로 마지막 때가 되면 - 다시 통합될 것인데 이에 대해서 57문답의 2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또한 나의 육신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일으킴을 받아 나의 영혼과 다시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 몸과 영혼의 통합을 여기서는 “다시 결합되어”로 표현하는데, 다시 결합될 때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위로를 얻고 있는지, 몸의 부활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몸의 부활과 부활신앙 없이도 영혼의 구원과 십자가 신앙만으로 충분히 위로를 받는다고 느끼고, 그것으로 만족하며 그것이 구원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십자가와 부활이 몸과 영혼이 통합된 전인격적인 구원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원이 몸과 부활을 포함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도 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전도하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몸을 위해서 구제하고 돌봄을 제공하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58문 : “영원한 생명”은 당신에게 어떠한 위로를 줍니까?


 답:내가 이미 지금 영원한 즐거움을 마음으로 누리기 시작한 것처럼 이 생명이 끝나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완전한 복락을 얻어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에 대한 설명은 “현재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58문답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 가운데 제57문에서 언급한 “몸”과 연결하여 중요한 내용 하나만을 언급하면 “이미 지금”입니다. “이미 지금”은 몸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 곧 “현재의 생명”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이미 지금 누리고 있는 영원한 즐거움은 현재의 생명이 끝나도 영원히 계속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한 완전한 복락을 얻게 될 것”이라는 소망과 위로를 58문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누리고 있는 영원한 즐거움은 나중에 누리게 될 완전한 복락과는 다르지만, 완전한 복락은 더 좋은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이유가 됩니다.

정 리


 정말로, “구원 = 죽어서 천국가는 것” 이라는 공식을 기독교의 핵심 진리라고 믿고 구원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빨리 죽는 편이 논리적으로 합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 =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충분히 납득할만하게 설명은 하지 못해도 마음으로는 “참(true)”은 아니라는 생각이 있기에 이 땅에서 오랫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면서,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아니라면, 나 혼자 누리고 다른 사람은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논리로 사용하면서 이 땅에서 소망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실제로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인들에게 이런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교회가 막대한 부과 권력을 쌓기 위한 목적으로 이 땅에 소망을 두지 말고 천국에 보물을 쌓으라고, 그 방법은 교회에 헌금하는 것이고 또 면죄부를 구매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부를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몸과 영혼을 전인격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보면, 복음을 믿어 죄사함을 받고 몸이 죽은 이후에 영혼이 천국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곳으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구원은 좁은 의미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구원은 몸과 부활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몸의 구원은 이미 지금 현재의 삶에서 누리고 있는 구원의 기쁨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또 전하며 살아가는 삶을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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