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음모가 난무하는 역사의 한 가운데서 조용히 기도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래도 역사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고 외치는 다니엘의 무언의 함성을 듣게 됩니다
삶의 위기는 젊은 날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 삶을 마감할 때까지 위기는 여전히 찾아오고 평생 지켜온 신앙의 가치들이 도전받는 시험 앞에 서게 될 때가 많습니다. 다니엘은 어린 나이에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고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것은 BC 605년경으로 그는 이곳 포로지에서 6,7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본문의 다니엘은 80세가 넘었던 때였습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정치인으로, 시대의 지성인으로, 여호와 신앙인으로, 그리고 선지자로 살아오는 동안 무척 많은 어려움과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80세나 된 노령의 지도자에게 다시 한번 정치적 회오리바람이 몰아쳐 그의 생명이 백척간두에 서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생을 지켜온 신앙인의 삶을 강제 종료 당하게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멸망하고 중동 일대의 새 주인으로 페르시아가 등장했습니다. 페르시아는 이 광활한 지역의 통치를 위해 과거 바벨론 정부 하에서 일했던 지도자들을 중용했습니다. 이때 다니엘은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용되었습니다. 이 일을 주관하던 페르시아의 분봉왕인 다리오는 세 사람의 총리 가운데 다니엘을 그 중의 으뜸 총리로 세우려 했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을 막기 위해 긴급한 입법이 이루어졌는데 그 법은 ’왕 이외의 누구에게도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미동도 없이 전과 같이 기도했고 결국은 사자 굴에 던져지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노인 다니엘의 영적 위엄을 보게 됩니다.
1. 모함과 음모 앞에서
사건은 페르시아가 새로운 점령지에서 통치권을 효율적으로 행사하기 위해 제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페르시아는 각 식민지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매우 유화적 통치를 선호했습니다. 이것은 강력한 철권통치를 중시했던 바벨론의 잔혹한 통치와는 매우 결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다리오 왕은 전국을 120도로 나누고 각 도마다 수령을 임명하여 다스리게 했고, 그 위에 총리 셋을 두어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했습니다. 그런데 왕의 판단에 다니엘이 너무나 출중했고 오랜 행정 경험으로 매우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는가 하면 유대인 출신이어서 바벨론 출신의 관료들보다는 훨씬 더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세 사람의 총리 가운데 으뜸으로 세우고자 했습니다.(3절) 그러나 이 계획은 강한 반발에 직면했고, 즉각적으로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음모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도덕적, 정치적 허물을 발견하지 못하자 새로운 법률제정에 나섰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기도 금지법’이었습니다. 그들은 왕을 설득하기를 ‘앞으로 삼십일 동안 왕 이외의 그 누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어긴 사람은 누구나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자’고 했습니다.(7절)
이 법의 초점은 다니엘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관료들은 한 사람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거짓, 교만, 허영, 불의함 등 모든 악한 요소들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국가경영이라는 숭고한 목적보다 자기들의 권력 장악에 몰두합니다. 신앙의 정도를 지키고 하나님께 충성하며 진정한 세상의 공익을 위한 봉사자로 사는 길에는 언제나 이런 종류의 모함과 함정이 기다릴 수 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선한 역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을 훼방하고 저지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들 앞에 이런 올가미와 위협과 합법을 가장한 사악한 일들을 만들고 행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악법 앞에서 경건한 신앙인의 전통을 따릅니다. 누가 강요한 것도, 문서로 작성된 내용도, 그에게 주어진 법률적 의무도 아니지만 그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그 약속을 지키는 일에 목숨을 걸게 됩니다. 이것이 노인 다니엘의 위엄입니다.
2. 다니엘의 투쟁
다니엘은 기도가 금지된 법령의 선포와 그 형벌이 사자 굴에 던져지는 것임을 알았음에도 늘 하던 대로 자기 집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은 극단적 분리주의자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젊은 세대들이 바벨론에 동화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자기들의 문화와 종교전통이 엄격하게 보존되고 지켜지기를 희망했고 이를 위해 지도자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신앙적 엄격성과 문화적 개방성이라는 두 측면을 모두 중시했습니다. 다니엘은 신앙의 근본을 위협하는 조치들에 대하여 조용하지만 단호한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고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자랑하지도 않고 자기 입장을 발표하지도 않고 조용히 자기 신앙의 길을 갔습니다. 정치적 음모가 난무하는 역사의 한 가운데서 조용히 기도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래도 역사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고 외치는 그의 무언의 함성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기도가 좀 특이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를 금지시키는 것은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박탈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창문을 닫고 조용히 기도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의 모든 희망을 공개하면서 무엇 때문에 기도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며, 당황하지 않고 초연하며, 순교를 자초하진 않으나 주어진 재앙 앞에 타협하지 않는 대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권력이나 죽음의 공포나 미래에 대한 걱정 등 그 무엇으로부터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한 모습이기도 하고 태산 같은 위엄이 보이는 묵직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노년기에 다가온 시련을 대하는 다니엘의 모습이었습니다.
3. 하나님의 구원
다니엘은 마침내 사자 굴에 던져지는 형에 처해졌습니다. 후에 왕이 법령의 잘못을 깨닫고 다니엘을 구조하기 위해 마음과 힘을 다 했습니다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밤을 지새운 왕이 새벽에 사자 굴을 찾아가 ‘다니엘이여 살아계신가? 하나님께서 그대를 구원하셨는가?’라며 소리쳐 불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자 굴에서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기의 극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신앙의 장엄함을 지키는 자들을 살피시고 돌보시는 은혜와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증거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서의 교훈은 성도의 궁극적 승리로 해석해야 합니다. 다니엘이 핍박 받고 무죄한 사람임에도 사형에 처해지고 무덤 같은 사자 굴에 던져지지만 결국은 승리한 것처럼 성도들에게 이런 저런 시련과 박해가 난무하는 세상 가운데서 삶을 살게 하시지만 결국 궁극적으로 영생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얻기 위해 오직 십자가 은혜를 붙들고 오직 예수의 믿음으로 우리의 갈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다니엘은 생명의 위기와 공포 앞에서 그의 갈 길을 갔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