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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 사도신경-성자 하나님(1)
오늘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위키피디아(Wikipedia)에서 ‘예수’를 검색하면 예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 예슈아, 예수스, 기원전 4년경-기원후 33년경) 나사렛 예수 또는 예수 그리스도는 서기 1세기 갈릴래아의 나자렛 출신 유대인 설교자이며 종교 지도자로서 기독교 창시자이며 신앙의 대상이다. 기독교인 대부분은 예수를 성육신한 성자인 동시에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라고 믿는다.
 wikipedia, “예수,” https://ko.wikipedia.org/wiki/예수, [2024. 4. 18. 접속].
 비교적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교회 밖의 문서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하신 성자 하나님인 동시에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라고 믿는다.”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군가를 덮어놓고 믿었던 경험이 있다면,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셨는지, 그리고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서 이 땅에 오셨는지, 그 이유를 한 단어로 말하면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을 통해서 실천하신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고 실천하기 힘든 종류의 사랑처럼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사건 가운데 성육신의 사건에 대해서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성육신 사건을 “사랑의 사건인 동시에 진리를 전하는 사건”이라고 설명합니다.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두 가지 가능한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진리를 배우는 사람을 하나님 자신의 영광된 위치까지 끌어올려서 진리를 전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셔서 사람에게 눈높이를 맞추시고 종의 형상으로 나타나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전하는 동시에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는, 곧 사랑의 연합은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종의 모습으로 나타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겸손의 모습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위에서 아래로 자리를 옮긴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모습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가 빚진자리에 있다는 것, 즉 죄의식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핵심입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는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무엇을 알려주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9문 : 왜 하나님의 아들을 예수, 곧 구주라 부릅니까?


 답:그가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고, 또 그분 외에는 어디에서도 구원을 찾아서도 안 되며 발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의 두 번째 부분에 해당하는 성자에 대한 고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다루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두 내용을 짧게 표현하면 “인격과 사역”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 구원사역인데, 그 이유는 그 누구도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대신할 수 있다면, 대체가능하다면 중요한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제사제도를 통해서 각인시키신 진리 가운데 하나는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는 십자가 사건의 전제입니다. 인간의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피’입니다. 하물며 인간의 죄를 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에 그분 외에는 구원의 방법이 없습니다.

30문 : 그렇다면 자신의 구원과 복을 소위 성인에게서, 혹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데서 찾는 사람들도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답:아닙니다. 그들은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를 말로는 자랑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합니다. 예수가 완전한 구주가 아니든지 아니면 참된 믿음으로 이 구주를 영접한 자들이 그들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에게서 찾든지, 둘 중의 하나만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토착종교와 그리스도교가 혼합되기도 하고 복음이 상황화되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혼합(synchronized)되는 것과 상황화(indigenized)되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에 믿었던 신들을 버리지 않고 이름만 하나님으로 바꾸어 부른다거나, 구원과 복을 소위 성인에게서 또는 다른 데서 찾는 사람들은 혼합된 종교안에 있는 사람들로, 엄밀히 말하면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를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자신들을 구원해 낸 여호와라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을 상황화한다는 것은 기존의 종교행위에 새로운 의미부여를 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우리 조상들이 쌀을 모아두던 단지에 신적인 의미를 부여했던 신주단지를 그리스도교 전통 안으로 가져와서 성미로 사용했던 것과 같습니다.

31문 : 그분을 왜 그리스도, 곧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 부릅니까?


 답:왜냐하면 그분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임명을 받고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큰 선지자와 선생으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감추인 경영과 뜻을 온전히 계시하시고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으로서 그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려 우리를 구속하셨고, 성부 앞에서 우리를 위해 항상 간구하시며, 또한 우리의 영원한 왕으로서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위해 획득하신 구원을 누리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보존하십니다.

 그리스도라고 음역한 헬라어 ‘크리스토스’는 히브리어 ‘메시야’의 번역어입니다. 메시야는 “기름 부음 받은 자”란 뜻으로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보내기로 약속한 사람에 대한 히브리 칭호입니다. ‘기름 부음’은 왕, 제사장, 예언자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것은 그분을 우리의 왕이자 제사장으로 그리고 예언자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은 왕으로서 죄와 죽음과 같은 어둠의 권세를 멸하시며, 제사장으로서 죄사함을 선언하며, 예언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 등 세 가지 차원에서 설명됩니다. 편의상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나누어서 설명하기도 하는데, 인성과 신성을 간직하신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의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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