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스스로 자기 죄를 발견하기 어렵고, 죄를 알아도 좀처럼 인정하지 않고, 인정한다고 해도 회개하고 고치는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 은혜와 사랑 안에서만 성도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주님의 오심을 가장 잘 준비한 사람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3절) 세례 요한은 야인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야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1. 회개하라
세례 요한이 하는 사역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세례를 베푸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에게 세례에 앞서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에게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6절)고 했고, 막 1:4에는 그의 세례를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세례는 회개가 전제 조건이었습니다. 그가 주장한 주의 길을 준비하는 일의 가장 긴급한 일은 회개였습니다. 회개란 죄를 깨닫고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간청하는 일입니다. 회개가 모든 신앙인에게 가장 긴급하다고 본 것은 회개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소리친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에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고 온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지닌 민족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이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한 것은 자기들만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섬겼고, 율법이 주어졌고 예배와 절기와 할례와 거룩한 전통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구원은 회개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는 자신에 대한 영적 성찰의 결과로 심각한 죄인 상태임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이사야는 선지자로서의 삶을 자기의 죄인 됨의 심각성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죄인 됨의 발견은 세속적인 욕망의 포기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회개는 비움입니다. 회개란 자기 내면을 철저히 비우는 결단입니다. 회개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고, 거듭난 사람 되게 하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회개는 우리를 존엄하고 고귀한 삶의 주인이 되게 합니다. 삶이 누추한 것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베드로 역시 너무나 깊은 회개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의 삶이 더욱 빛났던 것입니다.
2. 회개의 열매
세례 요한은 세례 받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요구합니다. 심지어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10절)라고 말씀 합니다.
세례 요한은 왜 회개를 촉구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끼 식사를 해도 율법의 조항들을 생각했고 문을 열고 나오고 들어갈 때에도 율법을 생각했습니다. 성전 제사를 자랑으로 생각했고 안식일을 지키고 때를 따라 헌금하며 자신들의 신앙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개적인 신앙행위를 서슴없이 행했습니다. 자식을 얻으면 ‘율법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좋아했고 아이들에게 율법 전승하는 것을 부모의 가장 중요한 도리로 생각했습니다. 생활 자체의 모든 것이 종교적이었습니다. 종교가 일상의 삶을 지배했고 종교 권력이 세상을 다스렸습니다. 그런 그들은 자기들에게 더 필요한 열매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 대부분 유대인들의 종교생활을 위선적이고 진정성을 결여한 형식적 행위로 보았습니다. 그는 제사장 사가랴가 매우 늙었을 때 기적적으로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로 안정된 길을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광야로 나와 야인이 되어 메시야가 오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회개의 열매는 회개한 사람에게 적합한 삶의 실천이었습니다. 욕심 가진 자는 욕심을 내려놓고, 권력을 가진 자는 군림과 지배욕을 내려놓고, 원수를 죽이려고 손에 칼을 든 사람은 그 칼을 던져버리는 것이 회개한 자가 살아야 할 삶이라는 것입니다. 또 농사 잘 지은 사람은 창고를 더 크게 지을 생각을 버리고 나눔을 실천하고, 두 벌 옷을 가졌으면 한 벌을 나누는 것이 회개의 열매입니다. 세례 요한은 도끼가 나무뿌리 위에 놓였다고 하면서 속히 회개하기를 촉구했습니다.
3. 알곡은 곳간에
세례 요한은 자기 한계를 잘 알았습니다. 자기 능력으로 그 시대를 구원하지 못할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거나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뒤에 오시는 주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11,12절) 자신이 베푸는 물세례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지 못하지만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야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인간의 근본적 변화와 거듭남을 구현하실 것이라고 증거하면서 그가 우리를 알곡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창고에 모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불가능이 존재하는 곳에 예수님은 불과 성령의 능력,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역사의 결실들을 만드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자기 죄를 발견하기 어렵고, 죄를 알아도 좀처럼 인정하지 않고, 인정한다고 해도 회개하고 고치는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 은혜와 사랑 안에서만 성도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알곡들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 절대 필요한 근본 요소가 회개하는 능력입니다. 이 회개하는 능력을 능력 많으신 우리 주님께서 주십니다.
독일교회는 한때 나치에 협조하고 그 선동대 역할을 했습니다. 심지어 히틀러를 독일을 구원할 아리안 족의 메시야로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제 정신을 차렸을 때 독일교회는 자신들의 끔찍한 범죄 가담에 전율했고 스스로에 대하여 실망했고 깊은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그 상황에서 독일교회는 다른 모든 일을 뒤로 하고 진실하고 담대한 회개를 시작합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2차 대전 중의 독일교회의 잘못에 대하여 세계 교회 앞에 그리고 인류 앞에 참회했습니다. 독일교회의 회개는 고백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당시의 잘못을 교회에서 가르치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교회를 섬기는 일에 지금도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능력 많은 분으로 오시는 주님께서 임하실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은 죄를 발견하기도 어렵고 회개하기도 불가능한 존재이지만 능력 많으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회개케 하십니다.
우리 안에 주님께서 임하시는 길은 회개로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진실하고 깊은 회개로 주의 오실 길을 준비하면, 주님께서 우리 안에 임하셔서 우리를 알곡 되게 하시는 은혜와 능력을 베푸실 것입니다. 능력 많으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은혜와 능력으로 임재하시도록 회개와 변화로 주의 길을 준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