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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인간의 본성 (1)

인간의 본성은 선할까요? 아니면, 악할까요?


 학창 시절에 “국민윤리” 과목을 공부하면서 시험에 나오는 중요한 내용이라고 해서 외웠던 지식 가운데 성선설과 성악설이 있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그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한 맹자의 인간론을 성선설이라고 하고, 반대로 인간은 처음부터 그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한 순자의 인간론을 성악설이라고 합니다. 맹자의 성선설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선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고, 악을 싫어하며,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자의 성악설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악하기 때문에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선함을 배우고 익혀서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교육의 방향과 목적이 달라질 수 있기에 서양교육 철학에서도 갓난아이가 처음부터 유전된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느냐 아니면 백지상태에서 태어나느냐의 문제로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 사이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논쟁으로 프랑스의 데카르트는 ‘본유관념(innate idea)’을 주장하였고, 영국의 로크는 ‘백지상태( , white paper)’를 주장하였습니다. 본유관념과 백지상태 사이의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본유관겸과 백지상태 사이의 논쟁 그리고 성선설과 성악설 사이의 논쟁에서 어떤 입장에 서 있을까요?

제6문: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렇게 악하고 패역한 상태로 창조하셨습니까?


 답: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또는 자신의 형상 곧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마음으로 사랑하며, 영원한 복락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살고, 그리하여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창세기의 기록을 따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하게 창조하셨다고 가르칩니다. 창세기 1장의 기록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고, 하이델베르크신조 제6문에서도 창세기 1장의 기록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처음에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대로 만드셨으며,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서론적 질문에서 언급한 성선설과 성악설 가운데 성경의 입장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면서 둘 가운데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성선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선하게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인간들이 해야할 일들을 알려주심으로써 창조사역을 마치신 후에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시려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사람은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마음으로 사랑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동반자”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망각하였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으며,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에서 멀어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성이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제7문: 그렇다면 이렇게 타락한 사람의 본성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답:우리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타락하고 불순종한 데서 왔습니다. 그때 사람의 본성이 심히 부패하여 우리는 모두 죄악 중에 잉태되고 출생합니다.
 6문과 7문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하게 창조하셨는데, 세상에 악이 존재하게 되었고 인간에게 타락한 본성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비유로 표현하자면 컴퓨터에 일종의 프로그램상의 오류가 생겨난 것인데-하나님께서 사람을 불완전한 존재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면-무엇 때문에 본성이 타락하게 되는 것의 원인이 된 악이 발생한 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선하게 창조하시고, 어떤 사람은 악하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선하게-아담과 하와 모두를 선하게 창조하셨는데 타락한 본성이 생겼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타락한 사람의 본성은 어디에서 왔습니까?”하는 질문을 “그렇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어디에서 왔습니까?”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에 맞지 않는 악의 문제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 안에서는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다면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 곧 악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다루는 신학이론을 신정론이라고 합니다. 고통의 문제와 악의 문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이의를 제기하는 논거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악의 문제에 대해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7문답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타락하고 불순종한 데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로 창조하신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부족하셔서-전지전능과는 거리가 멀어서-인간의 죄를 막지 못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인간이 그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였습니다. 이 ‘잘못 사용된 자유의지의 결과’, 그것이 곧 불순종입니다. 불순종의 결과 인간의 본성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 불순종이란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명령을 어기고 금지된 것을 취한 것을 말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바로 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결과가 본성을 타락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나무 열매 하나 먹었을 뿐인데, 그런다고 뭐가 어떻게 달라지나?하는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깟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하게 유일하게 금지하신 것이라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하였을 때 타락하였고, 그 결과 인간의 본성이 달라졌습니다. 흔히 하는 표현으로, 하나님이 그어 놓으신 선을 인간이 넘은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 어느 곳에서든지 어느 방향에서나 잘 보이는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셔서 그것을 볼 때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임을 알고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하셨지만, 인간은 그것을 무시하고 창조주와 같이 되려는 교만한 마음이 죄를 범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교만한 마음이 불순종을 낳았고, 불순종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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