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죄와 비참함에 관하여
한자어 비참(悲慘)을 우리말로 풀어보면 "더 할 수 없이 슬프고 참혹함"이라는 뜻입니다. 흥미롭게도 한자어 비悲자와 참慘자는 모두 마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영어로 번역할 때 mind로 번역하기도 하고 heart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mind and heart"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느끼기도 한다고 말하고 마음으로 안다고 말하는 것처럼, 마음은 감정 뿐만 아니라 생각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죄와 비참함에 대하여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복음을 듣고 반응하는 마음의 상태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죄와 비참함에 놓였을 때 그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똑같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누군가는 비참함을 느끼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비참함을 느끼지 않기도 합니다. 비참함을 느끼기는 커녕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일인데 재수가 없어서 들켰다고 억울하다고 발뺌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굴욕적인 상황이고 또 비참함을 느낄만한 상황인데 아무런 느낌도 없고 생각도 없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비참함을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끼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양심을 주시고 율법을 주신 이유는 죄와 비참함을 느끼고, 그 결과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마음을 갖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3문: 당신의 죄와 비참함을 어디에서 압니까?
답: 하나님의 율법에서 나의 죄와 비참함을 압니다.
사람들은 죄가 죄인지 모르고, 비참함을 느끼지 못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 죄인 줄 알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기도 합니다. 마치 어느 날 관할 경찰서에서 보낸 범칙금 고지서가 우편함에 놓여있는 것을 확인하고 내용을 살펴보는 순간에 느낀 당혹스러움과 돈을 떼이는 비참함을 경험했던 때처럼 말입니다. 습관을 따라 운전했을 뿐이고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하다가 부지불식간에 법규를 위반하는 것처럼, 자신이 하는 행동이 죄인지 모르고 또 그 결과가 비참함인지 모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마치 범칙금 고지서와 같이 인간의 죄와 비참함에 대해서 가르쳐 줍니다.
제4문: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22장에서 이렇게 요약하여 가르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서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죄와 비참함을 알게 하는 그 자체가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또는 율법의 목적은 아닙니다. 마치 범칙금을 발급하여 운전자가 교통법규를 위반했다고 알리는 것과 범칙금을 통해서 국가재정을 마련하는 것이 교통법규의 목적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교통법규는 교통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상호 간에 지켜야 할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약속인 동시에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공정하고 올바른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는 가치의 표현입니다. 궁극적으로 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랑과 정의입니다. 흔히 사랑과 정의는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과 정의가 동전의 양면 그리고 검의 양날과도 같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의 정신은 사랑과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제5문: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
답: 아닙니다. 나에게는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미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만드신 사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보시기에 좋았던 사람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좋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나무의 열매를 왜 먹었느냐고 추궁하실 때, 그들은 책임을 전가하는데, 특히 아담은 하와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 모습이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다"고 말함으로써 여자가 나무 열매를 내게 주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그 여자를 내게 주지 않았다면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발뺌을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타락하게 된 인간은 하나님과 이웃을 미워하는 성향을 보입니다.
정리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1부에 해당되는 3문에서 11문은 우리의 죄와 비참함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번 강의에서는 전반부에 해당하는 3-5문을 다루었습니다. 우리의 죄와 비참함에 대해서 충분히 느꼈다면, 그 다음 단계는 그 죄와 비참함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4영리를 가지고 복음을 전했던 때를 떠올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인정하지 않고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그 사람들 가운데는 착하게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스스로 복음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죄와 비참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양심을 주시고 율법을 주신 이유는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알고, 그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온전히 지킬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