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받은 은혜에는 하나님의 세밀한 예정과 섭리가 있고 독생자의 생명이 희생되고 성령의 능력이 동원된 너무나 값비싼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서른셋 젊은 나이에 순결한 피를 흘려 만민의 죄를 대속해 주신 우리 주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사람이 당해야 할 온갖 시련과 고통을 다 겪으셨습니다. 식민지 청년의 울분과 고된 노동의 젊은 시절, 머리 둘 곳 없으셨던 가난하고 고단한 세상살이, 식사하실 겨를도 없이 바쁘셨고 풍랑 심한 배 안에서도 곯아떨어져 주무시던 피곤에 지친 일상, 믿고 의지하셨던 제자들의 배신을 겪으시며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홀로 인류의 모든 죄 짐을 지시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시며 십자가에서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고난주간은 그분의 삶에 다가온 고난의 절정인 십자가를 향한 순결하고 용감한 발걸음을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이 고난주간 동안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결단 있는 믿음의 행로를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본문은 주님의 마지막 주간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북단 가이사랴 빌립보를 출발하신 후 긴 여정을 거쳐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여러 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적이 있으셨지만 이번의 경우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할 그때가 온 것입니다.
1. 예루살렘에 들어가자
예루살렘에 가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결의가 매우 강경하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의 입성이 무엇을 의미하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이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은 예수님 자신이셨고 그에 대한 준비 또한 철저하셨습니다.(마 20:17-19) 예수님은 앞으로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사실들을 아셨고, 이 사실들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 마음 준비도 마치셨습니다. 그리고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 예루살렘 입구까지 오시어서 바로 예루살렘 입성을 지시하십니다. 쉴 틈도 없고, 주저하지도 않으시고, 단호하고 명쾌하게 예루살렘으로 가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 중에 이런 예수님의 본심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제자들은 자리다툼으로 신경전을 벌였고, 군중들은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과 유월절 명절 분위기에 들떠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는 현장으로 자신을 의도적으로 단호하게 밀어 넣고 계십니다.
누구에게나 결단해야 할 시기가 있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전 3:1-2). 죽음의 위기에서 피하여 살아남기를 결심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죽기를 각오해야 할 때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자’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도 이제는 각오하셨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사순절의 마지막 주일,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각오는 무엇입니까? 눈물로 기도하며 예수님을 사모했던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결단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그 결심을 뒤로 미루지 말고 예수님처럼 오늘 그 결심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주가 쓰시겠다 하라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시겠다며 제자들에게 나귀를 끌어오도록 분부하셨습니다.(2, 3절). 마태는 이 사실을 기록하면서 이렇게 하신 것은 선지자 스가랴가 예언한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한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슥 9:9) 메시야는 겸손하신 왕이셔서 새끼 나귀를 타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이루셔야 할 터인데 불행하게도 예수님께는 나귀 새끼 한 마리도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건너편 마을에 가서 나귀를 보면 풀어 끌고 올 것을 분부하셨습니다. 만약 주인이 묻거든 ‘주께서 쓰시겠답니다’라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나귀 주인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주님께 쓰임 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제자들로 하여금 알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나귀 한 마리의 도움이 주님께 필요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모든 사역에는 수많은 종류의 나귀 주인들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본 회퍼 목사님의 저서 중 ‘나를 따르라’는 명저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본 회퍼 목사님은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말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에는 하나님의 세밀한 예정과 섭리가 있고 독생자의 생명이 희생되고 성령의 능력이 동원된 너무나 값비싼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기 헌신이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또 본 회퍼 목사님은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할당해 주신 각자의 십자가가 있고 우리는 지시받은 분량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귀 주인은 ‘주께서 쓰신답니다’ 라는 제자들의 말 한마디에 자기 나귀를 서슴없이 드렸습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주님께 나귀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기도 하고 시간이기도 하고 물질이기도 하며 우리의 재능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생명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값비싼 은혜에 감격하면서 ‘주께서 쓰신답니다’라는 말 한마디에 기꺼이 자기를 드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려는 거룩한 결심이 여러분 모두에게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3. 그를 찬송하라
나귀를 타시고 겸손하신 모습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주님을 많은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환영했습니다.(8, 9절) 때는 마침 유월절이어서 예루살렘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나사렛 예수가 예루살렘 온 것을 보고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늘의 수많은 천사들이 어린양 예수님께 찬송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찬양함은 마땅한 일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특별한 일은 당연히 여기고 당연한 일은 특별한 일처럼 여깁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십자가의 은혜는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 특별하고도 측량 못할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은혜를 당연히 내가 누려야 할 권리처럼 생각합니다. 반면 이 은혜를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고 헌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작은 헌신 하나도 마치 특별한 일을 한 것처럼 오만불손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당연히 누릴 권리나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일 뿐입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찬송과 영광 받으시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당연한 일이며 우리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찬양하고 온 생애를 바쳐 주님께 헌신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 이 당연한 감사, 찬송 헌신의 길을 믿음으로 겸손하게 걸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