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이상 실패한 과거에 발목 잡히지도 말고, 자기 고민에 매몰되지도 말고, 불필요한 논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도 말고, 눈을 들어 모든 민족들의 영적 현실을 직시하고 복음 들고 나갈 결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대를 통찰하는 예리한 분별력과 명철함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려다가 그리스도인의 근본을 상실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교회의 근본, 그리스도인 삶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묵상하며 살아야 합니다. 미국의 목사이며 작가인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실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태복음은 매우 무겁게 실천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마태복음은 구조적으로 말씀과 주님의 이적을 반복하며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와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균형 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의 교훈과 생활 속의 실천을 조화롭게 이루어나갈 것을 강조하는 의도적 구조입니다. 특히 마태는 교회공동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많이 교훈하고 강조합니다.
본문에 의하면 주님은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셔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고 세례를 베풀고 배운 말씀을 실천하는 자들이 되게 하라’고 분부하십니다. 주님의 명령을 들은 제자들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가운데서도 갈릴리를 출발하여 땅끝을 향해 가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위대한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1. 갈릴리로 가신 주님
복음서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신 일을 비중 있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고 싶어 하신 이유에 대해 혹자는 그들을 신앙의 원점으로 다시 부르신 일이라고 해석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함께 위로하자는 주님의 제안이라고 해석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오랫동안 2등 국민 취급을 당했습니다. 변방의 도시였던 갈릴리는 자주 외세의 침공을 당하며 고통을 당했지만 예루살렘 사람들은 늘 갈릴리 사람들을 천대했습니다. 이런 갈릴리에 나사렛 예수의 등장은 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죽으심으로 그 모든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갈릴리 사람들의 희망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상처 입고 아파하는 이 사람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갈릴리로 부르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 제3의 해석이 있습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이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나라의 변방지대였습니다. 때문에 많은 이웃 나라 사람들이 갈릴리를 통과하여 먼 나라로 여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에서 이루어진 일들은 삽시간에 인근 여러 나라에 전파되곤 했습니다.(마 4:24, 막 1:28)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행하신 모든 일들도 오고가는 사람들을 통해 인근의 모든 세계로 순식간에 전파되었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세계로 향하는 관문인 이곳으로 제자들을 다시 부르셔서 넓은 세계로 나가야 할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을 향해 복음의 문을 활짝 개방해야 할 세계 선교의 큰 비전을 보여주기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를 전후해서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혹스러웠고 두려웠으며 상처도 있고 불명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제는 더 멀리 넓게 온 세계를 바라보게 하시면서 제자들이 땅끝을 향해 나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실패한 과거에 발목 잡히지도 말고, 자기 고민에 매몰되지도 말고, 불필요한 논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주눅 든 모습으로 살지도 말고, 눈을 들어 모든 민족들의 영적 현실을 직시하고 복음 들고 나갈 결심을 해야 합니다.
2.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19, 20절). 선교학에서는 이 명령을 그리스도의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으로 부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는 말씀이 하나님의 문화명령이라면 본문은 전 세계 모든 민족을 향한 복음 전도를 명령하시는 대위임령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소위 예수님의 지상명령으로 불리는 이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 십자가 복음의 증인들이 되어 땅끝까지 가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 모든 교회들의 연합과 일치를 이루는 일을 위해서, 미전도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하는 일들을 위해서, 세계 교회의 신학적 성장을 견인하는 일을 위해서, 전 세계의 교회성장을 주도하는 일 등을 위해서 기여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기 교회 역사는 선교역사였고 그들의 신학은 선교학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하지도 않고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도 없고 십자가 외에는 전할 것도 없고 귀한 것도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고 세례 베풀라고 하시는 말씀을 명심하고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여 땅끝에 이르도록 복음 전파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3. 함께 하시는 주님
주님의 명령을 들었을 때는 제자들의 준비가 온전치 못했을 때였습니다. 신앙적 내용의 정리도 미비했고, 공동체 안의 내부적 정비도 더 필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도를 위한 마음의 결단도 부족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주 제자들의 부족한 믿음에 대하여 염려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며 어떤 제자는 예수를 뵙고 경배하였지만 어떤 제자는 의심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항상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함께 계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결핍은 우리를 두렵고 망설이고 주저하게 만듭니다. 믿음의 부족은 우리를 현실 문제의 늪에 빠지게 만듭니다.
마태는 이 복음서의 결론 부분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실 것을 거듭 약속하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명백히 밝히며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 권능 많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약속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염려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이 거룩한 복음 사역에 헌신하라고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리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신앙의 원점에 다시 서서 주님은 땅끝의 먼 세계를 바라보게 하시면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고 세례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결심하고 헌신하는 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능력 많으신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갈릴리를 출발하여 땅끝까지 복음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사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