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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되는 가정, 존엄한 노후
창 47:1-12


<삶이 무르익어갈수록 신앙적 정체성이 더욱 선명해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혼돈과 무절제한 세상 문화 속에서맑고 투명하고 선명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 명예롭고 존엄한 노후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십계명의 하나로 주신 하나님은 이것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좋은 세월 다 지나갔고 뜨겁던 가슴도 식었고 몸은 불편한데 남은 날마저 길지 못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시인은 그 남은 날 계수하기를 원합니다. 남은 동안도 소중히 살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많고 흔한 것보다 희귀한 것이 더 소중하듯 젊은이들의 많은 세월보다 노년의 짧은 세월은 더 소중합니다. 이 시기는 가슴 속 회한을 치유하고 신앙을 재건하고 삶의 품격을 되찾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평생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말년에 평화와 명예를 누린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야곱의 일생은 끝없는 고난과 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어버리고 그리움과 슬픔 속에서 긴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대제국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나타났고 대흉년의 기근에 시달리던 가족 모두를 이집트로 초청했습니다. 야곱은 그 후 17년을 평화롭게 자손들의 행복한 삶을 지켜보다가 소망 중에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었을 때 장엄한 절차를 거쳐 고향 가나안에 묻혔습니다. 야곱의 노년의 삶이 존엄했습니다.

 1. 분명한 정체성
 가나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문명 세계를 건설한 애굽 사람들은 목축을 미개한 문명이라고 하며 유목민을 천대했습니다. 그러나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내려간 야곱은 왕 바로 앞에서 생업이 무엇이냐는 바로의 질문에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야곱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결코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거류하고자 왔으니 고센 땅에 살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이런 당당함은 그들의 영적 정체성을 밝히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17년을 살면서 당당한 신앙인의 모습을 견지했습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창 48:21). 그는 죽음에 임박해서도 끝까지 전능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창세기는 모든 교리와 신앙의 모태’라고 했습니다. 족장들은 천지를 유랑하면서도 유일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지키며 살았고 그 신앙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의 종교 세력은 막강한 정치 경제 세력이었습니다. 그런 애굽의 종교 세력 앞에서 야곱의 신앙은 비웃음의 대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는 자기들의 신앙 정체성을 대범하게 밝히고 평생 그 신앙을 유지하며 복잡한 다신교 사회에서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애굽에 살았으나 애굽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야곱은 권력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했고, 바로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그의 노후를 명예롭고 품격 있게 만든 첫 번째 요인입니다. 삶이 무르익어갈수록 신앙적 정체성이 더욱 선명해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혼돈과 무절제한 세상 문화 속에서 맑고 투명하고 선명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 명예롭고 존엄한 노후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축복하고 살아가는 영적 권위의 사람
 야곱이 바로를 만났을 때 그는 비록 불안하고 정처 없는 난민이었지만 오히려 국가의 원로처럼 바로를 축복합니다.(10절) 그는 그렇게 원로의 모습을 보이며 당당하게 영적 권위를 나타내 보였습니다. 육신적으로는 나그네요, 피난민이요, 제왕에 대한 신하의 입장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당당한 품위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야곱은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챈 사람이었고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이었지 양보나 희생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130세의 원로가 되어서는 축복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야곱이 이렇게 인생 말년에 축복하는 사람의 여유를 가진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는 자기 일생을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라 했고, 조상들을 설명하면서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이라고 했습니다.(9절) 그는 세상 나그네 길을 마치면 본향으로 복귀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터득했습니다. 반면 바로는 세상 권력에 집착했습니다. 터무니없이 자신을 신격화시키기도 하고 죽은 후에도 영생할 것처럼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세상 것에 집착하고 살아가는 바로를 보면서 야곱은 오히려 그를 긍휼히 여기고 축복했습니다.
 우리의 노년기가 품격 있고 존경스럽고 명예롭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다음 세대들, 후배들에 대한 축복하는 마음과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많아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이 어른이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래야 그 곁에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인생을 배우고 교훈을 받고 삶 전체가 명예로워지게 됩니다.

 3. 가정의 회복, 노후의 영광
 야곱의 삶을 가장 명예롭게 만들고 그의 노후를 영광스럽게 만든 것은 가정의 회복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의 치명적 실수는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챈 일입니다. 결국 에서는 믿음을 떠나 이방인의 길로 갔습니다. 그것은 야곱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였을 겁니다.
 노년의 야곱은 죽은 줄만 알았던 사랑하던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요셉이 온 가족을 애굽으로 초청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의 가정을 회복시킨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당사자인 요셉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7-8). 야곱 또한 눈을 감으며 요셉에게 ‘형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창 50:17)고 유언했습니다.
 결국 이 가문은 거대한 민족으로 부활했습니다. 창세기가 끝나고 출애굽기가 시작되면서 제일 먼저 기록된 내용이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의 명예가 회복되고 그의 삶이 빛나는 것은 그 후손들이 이방 땅 애굽에서 용서하고 화목하고 결속하여 큰 민족으로 번성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셉 형제들은 회개와 용서를 통해 위기의 가정을 회복하여 거대한 민족으로 번성했으며 야곱은 행복한 말년을 보내다가 평안한 죽음의 복을 누렸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길게 요셉의 역사를 기록한 이유는 후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파멸의 위기가 왔을 때 서로 회개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을 통해 오늘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위에서 신앙적 정체성을 굳게 지키고 세상과 이웃을 축복하는 영적 품위를 지니며 서로 화해하고 평화를 이룰 때 하나님은 가정이 회복되게 하시고 우리의 노후를 존엄하게 하십니다. 이 영광의 길로 우리가 함께 가야하겠습니다. 그리하면 ‘내가 너와 함께 갈 것이다’라는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를 향한 약속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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