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의 영광은 건물의 화려함에 있지 않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에 있는 것이며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백성들의 순전한 예배와 눈물의 기도에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절망의 시기에 태어났으나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인생을 살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역전이 무엇인지를 자기 인생으로 보여준 인물입니다. 포로였던 그가 위대한 정치인이며 신앙인의 사표(師表)로 남게 된 것은 시작보다 나중의 영광이 더 큰 삶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떄문입니다. 구약학자 Otto J. Baab은 다니엘의 인생에 대해 헌신, 전문성, 봉사, 희생,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낙관주의의 심각한 후퇴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오염된 지구 환경도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비관론도 설득력을 얻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지속적으로 희망을 말하고 더 영광스러운 내일을 제시합니다. BC536년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하고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유대인 포로들의 귀환을 허락하는 조서를 발표하자 많은 포로들이 고국으로 귀환했습니다. 그때 스룹바벨, 여호수아, 스가랴 등과 함께 귀국한 사람이 학개 선지자였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 돌아왔지만 이들에게는 기쁨보다는 실망과 아픔이 더 컸습니다. 너무나 황폐해진 고국의 산천을 보면서 그들은 망연자실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용기를 갖고 예루살렘의 재건을 추진했습니다. 특히 성전재건 사역을 최우선으로 추진했습니다. 반발과 저항, 모함과 방해가 많은 가운데 결국 성전공사는 중단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나타난 사람이 학개 선지자입니다. 그는 지도자들과 백성을 격려하면서 다시금 성전 재건 사역에 나서도록 촉구했고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처음 영광보다 클 것이라며 희망과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1. 지친 사람들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BC536년 42,360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룹바벨 총독과 여호수아 제사장의 인솔로 제1차 귀환민이 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었던 예루살렘은 패망 당시보다 더욱 처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민족의 가장 중심점이었던 성전은 무너진 모습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돌아올 때의 다짐처럼 가장 먼저 성전 재건을 위한 일에 착수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한다는 기쁨에 힘을 보태고 정성을 기울여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소박한 규모로 재건을 시작했는데 그나마 이스라엘 북 왕국 후손들의 방해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전 건축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렇게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고 그로부터 16년이 지났습니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아직 성전 건축을 재개할 시기가 아니라며 움직이지 않았습니다.(학 1:2)
이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영적 질서가 무너진 그들을 통렬히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의 전을 이렇게 방치하고 자기들은 좋은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십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구분하지 못하고 가장 시급하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삶의 핵심인 것을 방치한 채 먹고 마시고 돈 벌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 구멍 뚫어진 전대에 돈 넣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학 1:6) 우리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2. 함께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 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학 1:14-15). 이 말씀으로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는 모든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마음이 한마음으로 감동된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와 기쁨으로 성전공사를 재개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15절에 이 시기가 다리오왕 2년 6월 24일이었다고 밝힌 부분입니다. 사실 공사가 중단된 것은 이전의 왕 캄바세스 2세가 자세하고 정확하게 살피지 못한데 원인이 있기도 합니다. 유다 지방에서 거짓 보고서 한 장이 전달되자 심사숙고도 없이 공사 중단을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캄바세스가 죽고 다리오 왕이 즉위했습니다. 그는 이 사태를 살피고 문서 창고에서 과거 고레스 왕이 성전 공사를 허락한 문서를 찾아 확인하고 예루살렘의 성전 공사 재개를 허락하고 막대한 재정지원도 허락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지역 총독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에스라 6:7-8)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충성할 마음을 결심하고 신앙 중심의 생각으로 돌아오자 다른 문제들은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4). 하나님께서는 거듭하여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태양은 당신 없이도 떠오르고 당신 없이도 서산으로 길 찾아서 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유다 백성이 말씀에 감동받고 사역에 발 벗고 나설 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우리 짐을 대신 지시는 주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영광스러운 내일을 주십니다.
3. 나중 영광이 더 클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헌신과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두 번째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성전의 규모가 왜소하다며 크게 실망했습니다. 옛 성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건축 시작할 때 그 주춧돌이 놓인 것만 보고도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완공 후에는 ‘이렇게 보잘 것 없는가?’라며 실망했습니다. 첫 번째 성전을 지을 때는 다윗이 모든 필요한 것들의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그 아들 솔로몬이 여한 없이 화려하게 지었습니다. 당시는 유다왕국의 국력이 전성기여서 문제가 없었고 주변 나라들의 최고 재료와 최고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마음껏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성전 재건을 한 것만으로도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초라한 성전을 기뻐하십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9절). 하나님은 이 성전의 영광이 지금보다 나중이 더 위대해질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창대해지는 법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권력과 돈으로 지은 첫 성전보다 땀과 눈물과 피로 지은 이 성전이 더 영광스러워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의 영광은 건물의 화려함에 있지 않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에 있는 것이며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백성들의 순전한 예배와 눈물의 기도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영광스러워야 합니다. 이 영광은 세상의 화려함이나 삶의 규모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결함과 흔들림 없는 믿음과 하나님 사랑을 날마다 실천하는 삶에 성도의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 회복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온전한 헌신으로 주님 앞에 설 때 우리는 내일을 낙관할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내일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