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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우리를 먹이시는 예수님
요 6:1-15



과식과 탐식을 줄이는 것은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는 예수님 말씀에 대한 실천입니다. 전등 하나 줄이는 운동이 전기요금 절약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의 문제인 것처럼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는 말씀은 우리 미래의 생존 지침이기도 합니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곳에 모인 배고픈 군중들을 먹이시는 주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이 현장에 있는 먹거리가 한 소년이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임을 아시고 그것을 가져오게 하셔서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축복하신 다음 배고픈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고 남은 것을 거두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긍휼
 이 사건은 4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유일한 사건입니다. 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 등과 함께 요 6장 본문에도 기록되어 있어서 모든 복음서의 기록자들이 한결 같이 이 사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5절). 주님은 군중들의 배고픔을 알아차리시고 그들을 먹이시길 원하셨습니다. 이때는 세례 요한의 순교 직후였습니다.(마 14:13) 많은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따르고 존경하고 사랑했었는데 그런 그가 간악한 여자의 계교로 목이 달아나자 백성들의 허전함은 이를 데 없었습니다. 주님은 그 소식을 듣고 모여든 분노하고 실망한 백성들에게 긴 가르침을 주셨고 날이 저물자 그들이 배고플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현실에 허탈한 마음을 안고 모여든 그들을 ‘목자 없는 양 같다’고 하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막 6:34) 사람들을 돌려보내어 각자 먹을 것을 사먹게 하자고 제의하는 제자들과는 달리, 주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해결하자’고 말씀하시면서 가진 것을 파악하게 하셨습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배고픔을 헤아리시는 주님의 긍휼의 심정이 오병이어의 기적의 출발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 8:3). 나병환자를 치유하시면서 예수님은 구태여 환자의 몸에 손을 대셨습니다. 이것은 율법에 의하면 금기사항입니다. 또 주님은 말씀만으로도 낫게 하실 수 있으신데도 손을 대셨다는 것은 인간의 행복을 상실당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 환자의 모진 삶에 대한 주님의 연민과 긍휼이 넘치는 모습입니다. 이같이 주님은 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독생자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은혜도 주십니다.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 10:12). 한 분이 주신 긍휼의 은혜가 모두를 만족하게 한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모두에게 선한 일이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두를 만족하게 하십니다. 나의 문제 해결이 다른 사람에게도 축복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만족한 문제 해결의 길은 주님의 긍휼에 있습니다. 언제나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를 가슴에 품고 살고, 나도 긍휼을 삶의 덕목으로 실천하고 살면 오천 명을 만족케 하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우리 삶에 현재의 은총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2.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모든 사람에게 풍족하게 나누신 후 주님은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심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한 조각도 소흘히 하지 말라는 교훈과 함께 모두가 풍족하게 되고 나눔을 실천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낭비를 삼가야 하는 절약의 정신이 필요함을 가르치십니다. 절약의 정신은 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주님께서는 사용해야 할 물질은 아끼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거룩한 소비를 해야 하지만 헛된 낭비는 철저히 금하셨습니다. 필요한 일에는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부어도 되지만 광야에 떨어진 떡 부스러기 한 조각도 버리지 말고 다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교회 살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최대한 사용해야 하지만 우리가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절약해야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잠 21:20). 과소비와 낭비는 미련한 자의 행위입니다. 칼뱅은 근면, 절약, 구제를 매우 중요한 경제생활의 원리로 제시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부를 만들고, 사용을 절제해서 축적하고, 그것으로 구제와 선한 일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칼뱅의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버리는 것을 줄이면 사람을 살릴 수 있고 희망을 선물할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말씀을 오늘날 심각한 지구촌 문제인 생태문제와 연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과소비와 낭비는 그 자체의 문제를 넘어서는 생태위기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과식과 탐식을 줄이는 것은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는 예수님 말씀에 대한 실천입니다. 전등 하나 줄이는 운동이 전기요금 절약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의 문제인 것처럼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는 말씀은 우리 미래생존 지침이기도 합니다. 버리는 것이 없는 광야에 오천 명의 잔치와 열두 바구니의 축복이 이어지고 이 열두 바구니는 또 다른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3. 영생의 양식을 먹어야
 광야의 기적은 또 다른 의미로 반전됩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주님을 찾아 다녔습니다. 주님은 찾아온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26-27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들에게 양식을 주심은 단순히 한 끼 양식을 주심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더 귀한 영생의 양식을 주시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주님은 ‘표적’이라고 하셨습니다. 표적은 Miraculous signs 즉, 상징적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바구니를 거두시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판단하며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한다는 소동이 생겼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14-15절). 예수님은 사람들이 이 기적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고 친히 공급하시는 분이시지만 이 육신의 양식을 해결하시는 것에 주님의 궁극적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에게 영생하는 양식이 되신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표적으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일을 통해 그 자신이 우리를 위해 살을 주시고 피를 주시는 생명의 주님이심을 증거하십니다. 주님은 왕이 되라는 권고를 거절하시고 산에서 기도하셨고 오히려 자기 생명을 바쳐 살과 피를 대속 제물로 주셔서 우리의 생명 양식이 되시려는 결단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생하는 양식인 자기 생명을 공급하십니다. 그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그래야 영원히 산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