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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2
고민하는 사람들
(마 19:23-30)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 다음의 세 가지 곧, 이 말이 진실인지, 모두에게 유익한 것인지, 꼭 내가 해야 할 말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늘 고민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생각하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전 7:14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고 했습니다.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고 사는 것입니다.
 본문에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어떤 부자 청년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지를 두고 고민하다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그 결과에 대한 생각 때문에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라는 고민과는 다른 고민이었습니다. 그들의 고민은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습니다.

 1. 한 부자 청년의 고민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6절) 이에 주님께서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하셨을 때 그는 ‘이 모든 것을 제가 지켰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으로 보아 그는 매우 종교적인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매우 촉망 받는 정치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신앙적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고 고위 정치가였으며 청년 기업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것들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들의 꽃처럼 말라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 모든 것들을 영원히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그 부자 청년만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대 이집트 왕들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발굴하면 수많은 부장품들이 발굴됩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도 지상에서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를 바라고 믿었던 당시의 종교적 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누리는 세상의 특혜와 즐거움을 영원히 누리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영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들이 사라질 때가 반드시 온다. 그러니 소유에 집착하지 말라,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 헛된 세상일에 젊음 낭비하지 말고 나를 따르라’(21절). 모두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고민 많은 청년에게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는 진실로 영생을 얻고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인생 최대의 기회 문턱에 섰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고민은 하였으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보다 재물을 선택하고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영생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물질주의자나 유물론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신앙인이 무신론자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진정한 영생의 길을 걷는 믿음의 사람은 ‘나를 따르라’ 하실 때 돌아서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순종할 뿐입니다. 그 삶을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영생이란 막연한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 안에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예수 안에만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2. 제자들의 고민
 예수님과 이 부자 청년의 대화를 지켜보던 제자들도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고민이 생겼습니다. 등을 돌려 돌아가는 그의 무거운 발걸음을 지켜보신 주님께서 탄식하시듯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원받는 일이 그렇게 어려우면 세상에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의문과 고민이 시작된 것입니다.
 제자들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때 주신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6절). 이 말씀은 구원받지 못할 욕심 투성이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무조건 구원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청지기 신분을 망각하고 주인행세를 하고 욕심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람의 힘으로는 변화시킬 수도 없고 욕심에서 해방 시켜줄 방법도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그들을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로 변화시키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부자의 척도는 가진 분량의 의미가 아니라 소유 개념의 문제입니다. 내게 속한 소유물들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이요 나는 그 관리자라고 생각하고 살면 아무리 많은 소유를 가져도 그는 천국가기 어려운 부자가 아닙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사람의 생각과 사상을 바꾸시는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구원의 길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지만 성령에 이끌리어 사랑의 따뜻한 영혼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그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하게 주실 것입니다.

 3. 주님께 헌신한 사람들의 고민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27절). 세 번째 고민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는 엄청난 미래 청사진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는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3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3년을 결산해 보니 불확실한 미래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 질문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철저한 신앙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질문이 주님을 향하게 됩니다. 성실하라고 하셔서 성실했고 기도하라 하셔서 기도했고 봉사하라 하셔서 봉사했습니다. 그런데 미래는 아무리 살펴봐도 잘 드러나 보이지 않아 답답합니다. 이 의문에 대하여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28, 29절).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또 물질적으로 넘치게 축복하실 것임을 매우 명백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우리의 미래는 확실합니다. 건강한 믿음과 정신으로 하나님 뜻에 따라 살면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함께 하시고 은총을 베푸십니다.

 누구에게나 고민이 있습니다. 영생의 길이 무엇인지, 어떻게 천국에 이를 수 있는지, 우리 미래는 어찌 되는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이 모든 고민의 정답이십니다. 생명의 근본이신 예수님 안에 이 모든 고민에 대한 대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따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