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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19강 : 사도신경-성자 하나님(4)

42문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는데 우리도 왜 여전히 죽어야 합니까?


 답:우리의 죽음은 자기 죗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며, 단지 죄짓는 것을 그치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치루셨는데, 우리가 죽는다면 죗값을 두 배로 치루는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는 40문에서 나왔던 내용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치루시고 죽기까지 낮아지셨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속하셨다고 할 때 대속에 해당되는 영어 표현은 ransom입니다. ransom은 몸값이라는 뜻이 있고, 동사로 사용될 때는 '요구되는 것을 지불하거나 주어서 해방시키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셨기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 무죄선언을 받게 됩니다.
 둘째는 죄의 삯과 죄의 값을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 로마서 6:23(개역개정)입니다. 여기서 ‘죄의 삯’은 ‘wages of sin’으로 표현됩니다. wages는 일한 댓가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 열심히 죄지으면서 살았는데 그 열심히 살았던 댓가가 죄의 삯입니다. 열심히 일한 댓가가 죽음이라고 한다면 열심히 일하지 않고 받지 않았을 텐데, 알고보니 그것이 죽음이었고 물릴 수도 없게 된 상황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 줄 몰랐던 것이라고 해도 죄는 죄이기 때문이요, 이미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의 조상들로부터 유전을 통해 전해받은 죄의 삯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죽음이 이미 예수님께서 치루신 죗값을 한번 더 치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 인류이 조상들의 죄 때문에 빚을 상속받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빚도 유산이고 재산입니다. 이 빚 때문에 유산 때문에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우리의 본성이 변하는 기회입니다. 죄를 안 지을 수도 있는 존재가 이제는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하나님 품에 안기는 안식이고, 영생에 들어가는 첫발을 내딛는 일입니다.

43문 :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사와 죽으심에서 우리가 받는 또 다른 유익은 무엇입니까?


 답: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공효로 우리의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고 죽고 장사되며 그럼으로써 육신의 악한 소욕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우리 자신을 그분께 감사의 제물로 드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약의 희생제사와 연속성이 있습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는 제사의 전제가 바로 그 연속성에 해당합니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심으로 모든 죄인들을 대신하여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는 죗값을 속량 곧 죄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대속받아서 더 이상 죗값을 치루지 않아도 되는 상태 곧 빚을 탕감받은 상태가 된 것이 가장 큰 유익입니다.
 이 외에 우리가 받는 또 다른 유익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공효, 곧 공들인 보람으로 우리의 옛 사람과 정과 욕심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단순히 정과 욕심만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만들었기에 육신의 악한 욕심을 따라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44문 :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는 말이 왜 덧붙여졌습니까?


 답:내가 큰 고통과 중대한 시험을 당할 때에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옥의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셨음을 확신하고 거기에서 풍성한 위로를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그의 모든 고난을 통하여 특히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아픔과 공포와 지옥의 고통을 친히 당하심으로써 나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영어 번역에는 'descended into hell(지옥에 내려가셨다가)'라는 표현이 있으나 한글 번역에는 이 문구가 빠져있습니다. 이 표현은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베드로전서 3:19는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육체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은 죽지 않으셨을 것이기에 영혼은 어디서 무엇을 하다 오셨을지 생각하면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생각하였고, 베드로전서에는 이러한 생각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 번역을 한글로 다시 번역하는 과정에서 초창기 내한 선교사들 사이에서 큰 논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1894년에 발행된 찬송가에는 이 내용이 실려 있는데, 1897년에는 보이지 않고, 1905년에는 다시 포함되었다가 1908년에는 다시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후 오늘날까지 지옥강하 내용이 빠진 사도신조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경해석과 교리적인 논쟁과 관련이 있기에 이렇게 여러 차례에 걸쳐 논쟁적인 부분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반복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이 지옥강하와 관련된 교리는 “지옥정벌(harrowing of hell)”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후 운명하신 시점부터 부활하신 시점 사이에 지옥(또는 하데스)으로 내려가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천지 창조 이래로 그곳에 갇혀있는 영혼들에게 구원을 가져간 것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 믿음과 관련된 고대 영어와 중세 영어 용어입니다. "New English Dictionary"에 따르면, Harrowing이라는 단어는 A.D. 1,000경에 알프릭의 설교에서 처음 등장했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에 카드몬과 신우프와 연관된 고대 영어 시에서 지옥으로의 내려감이 언급되었습니다.
 이로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에 부활하시기 전까지 지옥에 내려가셔서 지옥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아담과 하와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때까지 지옥에 있는 갇힌 영들을 빼내어 오셨다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만인구원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교리이기에 잘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지옥에 내려가셔서 고통받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면 믿지 않을 영혼들이 없을 것이고, 또다시 재림 이후에 지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신다면 그 영혼들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에, 지옥정벌 교리는 만인구원 교리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사도신조를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지옥강하 부분을 삭제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