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권력을 쟁취하고 군림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낮아짐과 자기희생을 통한 섬김으로 세상의 평화를 만드실 사랑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던 시기는 가이사 아구스도가 온 천하에 호적령을 선포했던, 이스라엘의 역사가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메시아 그리스도가 속히 오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메시아 대망사상을 품고 있을 때 주님은 베들레헴, 약속된 장소를 통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에 대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 4:4)라고 했습니다. 가장 적절한 하나님의 시간에 우리 주님께서 오셨음을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시간을 말하는 헬라어가 대표적으로 두 단어가 있습니다. Kronos라는 단어와 Kairos라는 단어입니다. 전자가 일정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즉, 세월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결정적인 한 시기 즉, 특정한 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역사의 무의미한 흐름의 시간을 의미 있는 특별한 시기가 되게 했습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은 예수님의 탄생과 일생을 기록하면서 매우 특별한 역사해석을 바탕으로 기록했습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고난당하는 종으로 묘사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합니다. 누가복음에는 인간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여성, 약한 자들, 병들고 소외된 자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신 인간애가 넘치는 사랑의 예수님을 강조합니다. 반면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이 알아 듣기 쉽게 구약 예언의 성취이신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1. 왕으로 오신 예수님
마태복음의 예수 탄생 기록의 특징은 예수님을 왕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마 1:1에는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고 시작하면서 다윗의 뒤를 이은 왕들의 족보를 밝히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도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냐’고 질문했습니다. 헤롯은 새로운 왕이 탄생 했다는 말에 기겁하듯 놀랐습니다. 그는 왕권에 대하여 과도한 집착을 보이며 자기 권력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사람은 가차 없이 처형했습니 다. 그래서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집단 학살까지 하는 광기를 보였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며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라고 물을 때 주님은 주저하지 않으시고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하시며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왕은 왕이시지만 지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종류의 세 속적 왕이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모든 세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늘에서부터 땅에까지 이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하나님은 왕이시다’라고 하고 ‘예수님은 왕으로 오셨다’라고 말합니다. 왕은 백성을 억압하고 지배하고 수탈하기 위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고 정의와 평화 를 보장하며 나라와 백성의 미래를 책임진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왕으로 오셨다 함은 우리를 지키시고 구원하시며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책임지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음을 의미합니다.
2. 왕을 맞이하는 태도들
‘유대인의 새 왕이 태어났다’는 소문은 단번에 예루살렘을 소동하게 만들었습니다. 헤롯은 자기 권력에 대한 도전과 위협이라고 생각했고, 백성들은 무슨 까닭인지 알지 못해 웅성거렸고, 제사장들과 종교인들은 왕의 비위를 맞추느라 민감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베들레헴의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헤롯은 베들레헴과 그 인근에 있는 두 살 아래 사내아이를 모두 죽였고 그 자신도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한 채 여리고에서 아무도 애통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런 헤롯의 일탈과 광기는 메시아 를 철저하게 정치 지도자로 오해하는 것에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왕으로 설명하고 ‘평강의 왕’으로 말했습니 다. 메시아 탄생 예언의 정수로 알려진 사 9:6에서는 그를 일컬어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시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눅 2:14에서는 탄생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권력을 쟁취하고 군림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낮아짐과 자기희생을 통한 섬김으로 세상의 평화를 만드실 사랑의 왕이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44), 이 말씀은 예수님이 제시 하시는 리더십의 원리입니다. 주님은 결코 썩고 부패한 세상 권력에 한 치의 관심도 흥미도 없 으셨습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또한 종교인이면서도 종교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헤롯에게만 충성하였습니다. 반면 성경에 대한 지식도 여호와 신앙에 대한 경험도 전무했던 동방의 이방인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을 찾았습니다. 그들만이 진정한 성탄의 은총을 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신앙인인 것처럼 위선을 일삼는 거짓 종교인들은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의 은총과는 관계없는 사람들입니다. 단 한 번의 예배를 위해 여러 달을 순례하고 권력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한, 예배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자기 인생을 걸었던 동방의 박사들의 모습이 우리 모습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3. 헌신하고 순종한 사람들
동방의 이방인들은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귀한 예물을 봉헌했습니다. 그들의 예물은 이 세상에 오신 왕에 대한 최선을 다한 예의였고 앞으로 전개될 메시아의 삶을 위해 너무나 소중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예물이란 자신의 인격과 정성을 담은 것이어야 하고 헌신자의 진정성이 수반되어야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성탄절은 이런 진심 어린 헌신의 계절이어야 합니다. 동시에 그들은 별의 인도를 받 고 왔다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오는 것도 순종이 었고 가는 것도 순종이었습니다. 헌신과 순종 이 두 가지가 진정한 경배 자의 모습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믿음은 반드시 순종과 헌신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매우 담백하고 단순한 것입니다.
동방의 순례자들이 드린 경배를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것은 그 경배가 진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예물도 진심이었고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도 진심이었습니다. 참 신앙이었습니다. 이 성탄 계절에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믿음으로 예배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배자들을 찾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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