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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5
구유에 누우신 예수



예수님의 탄생은 영원하신 분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신 것이요 창조주가 피조물 되신 역사이고 무한하신 분이 세상의 시공 속으로 사람 되어 오신 일이었습니다.


 세상에 오신 구주 예수님은 그 모습이 초라하다 못해 슬프고 안타깝게 보입니다. 이곳은 베들레헴이었습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주야로 율법을 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처럼 하고 잠시 머물다 떠나는 거류민과 나그네도 환대하라는 것이 율법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존중해야 할 인륜인데 고향을 찾아온 젊은 내외가 해산할 곳이 없어 구유에 아기를 누이도록 무관심한 일은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할 냉정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베들레헴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동방의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찾아왔을 때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베들레헴이 그 예언된 탄생 장소라고 알려주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자기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을 뿐 더 이상의 관심도 흥미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 에게 외면 당한 일이 예수 탄생이었습니다.

 1. 고난의 땅에 오시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BC31-AD14까지 재위한 로마의 첫 황제였습니다. 본명이 옥타비아누스였던 그는 BC31년 악티움 해전에서 경쟁자였던 안토니우스를 격퇴한 후 로마의 공화정을 폐지 하고 첫 황제가 되어 로마 제국의 새 역사의 문을 연 사람이었습니다. 아우구스도라는 이름은 ‘가장 높은 자, 신성한 자 또는 존엄한 자’를 의미합니다. 신성한 자의 칭호를 얻은 그는 스스로를 신격화했고 백성들에게 무한의 복종과 경배를 요구했습니다. 로마의 권력은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굴종을 강요하며 야만인 취급을 하던 어둠의 세력이었습니다.
 아구스도에 의해 내려진 ‘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명령은 온 천하가 로마의 압제와 그릇된 종교와 폭력으로 신음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상 전체가 이와 같이 깊은 흑암에 잠겨 있었을 때 예수님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때부터 세상은 찬란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예 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죄와 어둠의 세력이 온 세상에 가득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희망을 잃었고 세상은 칼과 창의 힘을 가진 자가 스스로를 신으로 부르며 군림한 시기였습니다. 모든 어두움은 빛이 나타나면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법인데 세상의 어두움은 사라질 줄 모르면서 온 세상을 지배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예수님의 탄생은 영원하신 분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신 것이요, 창조주가 피조물 되신 역사이고, 무한하신 분이 세상의 시공 속으로 사람 되어 오신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고 어두움의 마귀 권세는 물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주님은 인간 역사가 가장 큰 고난과 절망에 신음하던 때에 세상을 구원하실 생명의 말씀이며 구원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2. 베들레헴 구유에 나시다
 베들레헴은 구약 역사에서 중요한 무대로 여러 차례 성경에 등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탄생 당시에는 시골의 한 촌락에 불과했습니다. 작은 마을이 호적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자 묵을 곳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해산하고 ‘아기를 구유에 뉘었다’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은 메시아 생애의 성격을 보여주는 상징적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모습은 외면, 냉정, 가난, 무관심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구유에 탄생하신 예수님 은 일생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 9:58)는 말씀처럼 평생을 가난과 자기 비움의 삶을 사셨습니다. 성탄은 그리스도의 자기 낮춤의 시작이었고 그 마지막은 십자가에 죽으심입니다. 우리는 영광의 그리스도를 말하지만 성탄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종의 형체를 가진 사람이 되신 것이며 죽음을 위해 세상에 오신 가슴 아픈 탄생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그가 이렇게 세상 삶을 시작하신 것은 삶의 영광이 땅 위의 명예와 부귀에 있는 것이 아니며 인생의 승리가 세상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낮아짐이 높아짐이며 포기하고 내려놓음이 인생의 면류관이며 죽는 것이 사는 것이며 지는 것이 승리임을 보여줍니다. 낮아짐이나 내려놓음이 수많은 상처를 내게 남길 수 있지만 자발적 가난과 내려놓음은 고통스럽고 버려진 자들의 삶을 넉넉히 이해하고 돕는 성숙한 사랑을 갖게 합니다. 주님은 약한 자로 오시고 버려진 구유로 오셨고, 숱한 시험 중에 일생을 사셨고, 그 시험을 겪으셨 기에 시험 당하는 자들을 아시고 도우심으로 그는 모든 약한 자들의 소망이 되십니다.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낮아지고 비우고 약한 자가 되고 고난을 선택하신 모습입니다. 대림절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누추하고 남루하기 그지없는 구유에 계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가슴 치고 회개하며 높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엎드려 구유 앞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3. 큰 기쁨의 좋은 소식
 하나님의 아들이 구유에 탄생하신 이 역설적 사실에 대하여 베들레헴 의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이라고 전했습니다. 신학자 Bengel은 이를 ‘이 소식은 목자들에게, 온 이스라엘에,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었다.’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기때문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입니다. 둘째는 예수 탄생의 소식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 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지금 탄생하신 성자의 성육신과 대 속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성취되고 인류 구원의 대망이 성취됨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또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는 말씀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피조물들 사이의 모든 평화가 화목제물 되시려 세상에 오신 메시아 예수를 통해 성취될 것임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예수 탄생의 소식은 우리 죄가 사함 받게 된 소식이며, 영생을 얻게 된 소식이며, 갈등과 전쟁과 억압으로 가득한 세상에 평화와 화해와 사랑의 새 역사가 시작된다는 소식입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진 아기가 모든 사람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된다는 것은 성립자체가 불가능한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손바닥 크기의 구름으로 큰 비를 예고하시듯 아기 예수님 탄생 소식을 통해 온 인류 구원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현실의 구체적 역사가 되게 하신 일이 성탄 역사인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평강의 왕이신 분이 한 아기의 모습으로 탄생하심으로 세상에 구원과 평화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천사는 노래하고 땅의 목자들은 달려가 경배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 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구유에 오신 예수 정신은 겸손, 자기 비움, 자발적 가난, 희생, 사랑, 평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