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희망으로 볼 수 있는 근원은 용서와 화해를 통해 평화를 구축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를 전쟁과 진압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사랑과 협력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을 정의하는 표현 중에 ‘Homo Esperance, 희망하는 존재’라는 말이 있습 니다. 인간은 희망함으로 존재의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흔히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을 하는데 그 역시 세상이 혼란하고 역사가 소용돌이치는 어려운 시대에 관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도 도전정신과 강한 의지와 헌신이 필요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죽음으로 깊이 상처 받고 역사의 미래에 대하여 깊은 회의에 빠졌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라고 하신 것은 낙심하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도전하고 노력하고 침노하는 자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도전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추대를 받고 왕이 되는 장면입니다. 이때는 정말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과 지도부가 궤멸한 직후 이스라엘의 국가적 위기를 수습하고 열두지파를 결속시키고 가장 강력한 시대를 만드는 일에 성공합니다.
1. 용서와 화해를 선택하다
다윗이 유다 지파의 추대를 받고 왕이 된 후에 가장 어려운 문제는 전사한 사울 왕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반발이었습니다. (삼하 2:8-9) 그들은 다윗에게 투항하지 않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추대하고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분열을 극복하고 열두지파 모두를 통합하는 통일 왕국을 건설하려고 했고 그 방법으로 전쟁이 아닌 용서와 화해와 포용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사람들은 정치적 행위라고 평가하기도 하고 진정성 있는 사랑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이런 방법이 사울을 따르던 모든 지파들을 감동시키고 안심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1절). 열두지파의 대표들은 다윗을 찾아와 다윗의 왕국에 합류할 것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당신이 진정한 이 나라의 왕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고 때로는 무력진압의 유혹이 있었지만 다윗은 끝까지 인내하면서 유화정책을 실천하고 그들이 감동할 때까지 기다리며 평화를 향한 그의 진심을 보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새로운 왕권을 인정하지 않고 세력을 구축하며 대항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무력진압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며 애굽에서부터 함께 고락을 같이하여 지금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천년의 역사에서 서로 이해가 달라진 것은 불과 20여년입니다. 다윗은 20년의 갈등 때문에 미래 전체를 파국으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끝까지 기다리고 인내하며 마침내 하나의 나라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조화와 연대였습니다.
미래를 희망으로 볼 수 있는 근원은 용서와 화해를 통해 평화를 구축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를 전쟁과 진압의 대상으로 여기 지 않고 사랑과 협력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가능한 일입니다.
2. 도전정신을 이어가다
다윗의 30년 인생은 다른 사람의 수백 년 인생보다 파란만장하고 험 난했습니다. 이제 정상적인 권력을 장악하여 명실상부한 열두지파 전체 를 지배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긴 세월 동안 감당 못할 시련을 당한 후에 드디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 받는 절차를 세 번이나 거쳤습니다. 어린 시절 집으로 찾아온 사무엘 선지자에게 발탁되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면서 첫 번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는 사울이 죽은 후 유다 지파 사람들이 헤브론으로 찾아와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삼하 2:4) 그리고 세 번째로 이스라엘 열두지파 대표들이 다윗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옹립했습니다. 다윗은 왕의 즉위식을 세 번이나 한 후에 비로소 실질적 왕 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한숨 돌리고 좀 쉬어갈 만도 했지만 쉴 틈도 없이 측근들과 함께 예루살렘 정복에 나섰고 결국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그곳 을 다윗성으로 불렀습니다. 예루살렘은 가나안 정복 후 수백년간 당연히 포기한 지역이었고 누구도 정복을 시도할 꿈도 꾸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절벽 위의 물 긷는 곳을 기어 올라가는 상상초월의 방법으로 이 지역 정복을 시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이 예루살렘도 그들에게 주신 땅이기 때문에 차지 해야 할 의무가 있었고 또 기도하고 도전하면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주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이었고 또 할 수 있는 일로 믿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그는 도전했고 승리했습니다.
미래를 희망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믿음으로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도전정신의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시 18:29) 다윗은 수많은 장벽들이 그 앞에 있었지만 주를 의뢰하고 의지하며 담을 뛰어넘듯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불가피하게 큰 산을 넘어 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단 강을 건너지 않고 가나안을 얻을 수 없었던 것처럼 다윗은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않고는 나라의 미래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절벽을 기어올라 점령을 시도했습니다. 그 능력은 오직 하나 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3. 기본에 충실하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10절).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의 왕국은 점점 더 세력을 얻었지만 이것 은 동시에 국제적 견제와 도발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 이 전쟁을 걸어왔고,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아비나답의 집에서 예루 살렘으로 옮겨오기 위한 큰 일을 시작했습니다.(삼하 6장) 크고 작은 일 들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진행하면서 다윗이 결코 망각하지 않았던 기본 사항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12절).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권능을 주시고 전투 능력을 주시고 왕의 지위에 세우신 모든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고 돌보며 하나님의 백성들로 번영하도록 하시려는 목적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희망으로 만들려면 나는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는 존재 목적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진보가 가능하고 미래가 더 가까이 다가오도록 살아야지 내일을 파괴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 근본에 충실하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에 성실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모든 통치행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임’을 항 상 기억함으로 위대한 시대를 창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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