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독일, 베트남, 예멘의 통일 과정에서 각각 배워야 할 역사적 교훈들이 있다.
우선, 독일 통일은 동독의 공산정권과 서독의 민주정권이 협상을 통해 이룬 것이 아니다.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가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Ostpolitik)을 계승해서 이룩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통일 전 서독이 동독에 대한 엄청난 경제 지원을 했다는 것도 오해였다. 독일 통일은 동독의 공산 체계가 붕괴됨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1989년 동독인들이 서독으로의 대규모 탈출을 시도하면서 시작된 사태는 동독 민주혁명으로 이어졌고 결국 공산 정권이 베를린 장벽과 함께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독의 콜 총리가 끝까지 공산 정권과의 협상을 거부한 점이다. 협상 조건을 내건 ‘동독 민주화’는 자유선거를 통한 동독 공산당의 종식과 함께 민주 정부의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그 다음에야 콜의 기민당 정부는 새민주 정부와 통일 조약을 체결해서 동독의 5개주를 서독으로 편입시키는 통일을 일궈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콜 총리가 브란트 총리의 정책기조를 이어받지 않은 사실은 통일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 요인이었다. 사민당의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통해 대규모 경제 지원 정책으로 서독 정부는 동독과의 교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상호 방문과 연결망을 시도하였다. 서독 정부는 고속도로 통행료나 정치범 석방 대가등의 명분으로 한화 60조원을 동독에 지불하고 통행?우편협정?TV시청 등의 양보를 얻어냈다. 베를린 장벽 붕궤 2년 전인 1987년 동독인 500만 명이 서독을 여행했고 그중 20대가 100만 명이었다. 한 해 동안 주민 수십만 명이 여권을 받아 해외여행을 했고 서독은 경제 발전과 체제 안정을 통하여 동독인들이 심리적으로 동경하고 바라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서독 경제 지원 때문이 아니라 1989년 동독의 민주화라는 역사적 격동 속에서 헝가리 민주화라는 변수를 통해서 동독인들이 헝가리를 통한 오스트리아로 탈출이 계기가 되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만약 1990년대 우리 정부의 ‘햇볕정책’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서독의 동독에 대한 지원은 연평균20억달러 정도였는데 그중 상당 부분이 친척과 교회에 보낸 물품이어서 동독 정부에 상당 수준의 현금이 지원되지 않았다. 지원된 부분도 철저하게 동독이 제공한 실질적인 서비스에 대한 지급으로 처리되었지, 정상회담 한다고 수억 달러를 무상으로 지원하는 일은 없었다. 결국 원칙에 입각한 서독의 당당한 통일정책이 1990년 10월 3일 마침내 독일 통일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다. 겉모양만 요란한 통일 정책이 아닌 효과적이고 실현 가능한 통일 정책이 우리의 통일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몽골울란바타르대 명예총장ㆍ서울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