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통일은 1973년 휴전 협정으로 미군이 철수한 2년 후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이 공산 세력에 의해 함락되면서 이루어졌다.
휴전 협정 후 남베트남의 ‘민족해방전선’은 1974년 1월 공세를 시작하면서 전쟁을 재개시킨다. 남베트남군의 병력은 북베트남군에 비해 월등했지만 조직력과 사기에서 밀린 남베트남군은 쉽게 무너졌다.
이 과정에서 남베트남의 티에우 대통령은 비밀리에 미국으로 망명하고, 사이공은 결국 함락하게 된다. 베트남은 전형적인 무력에 의한 통일 사례이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통일 사례이기도 한 베트남 사례에서 교훈을 얻자면, 무력에 의한 통일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통일은 원하고 한쪽이 붕괴되지 않을 경우 불가피한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월남 패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남베트남처럼 법치가 무너지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정부는 국가 기능을 제대로 못하게 되면서 결국 안보와 주권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혼란한 사회에서 도덕성과 법치의식을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과 간첩, 종북 세력의 끊임없는 통일전선 전략을 효과적으로 막고 자유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를 해야 한다.
아라비아반도 서남쪽에 위치한 남북 예멘의 통일 사례는 무력이 아닌 평화적 협의에 의해 통합이 가능한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 자본주의적인 북예멘과 공산주의적인 남예멘이 상반된 체제를 극복하고 타협을 통해 하나로 합치는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다. 국경 충돌 및 여러 차례의 도발도 있었지만 1990년 독일과 비슷한 시기에 남북 예멘은 통일을 이루었다. 예멘 통합에 따른 권력구조 배분은 두 정부 지도자들이 양측의 경제ㆍ인구 등의 국력을 바탕으로 비례 배분한 비례통합 유형이다.
그러나 통일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북예멘으로 인한 흡수통일에 더 가깝다. 보수정치ㆍ시장경제ㆍ자유진영 노선의 외교 등의 도입을 감안하면 남예멘이 통합 정부에 비례적으로 참여는 했지만 공산국가로서의 정체성은 잃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도 계속된 갈등은 내전으로 이어졌고 1994년 예멘은 재통일 과정을 거쳐야 했다. 물론 재통일은 북진영의 무력에 의해 평정되었다. 독일 통일 때와 마찬가지로 남예멘의 경우에도 고르바조프의 개혁 추구와 서독 통일 정책에 대한 지지만 아니었어도 상황은 달랐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멘 모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통일 기반이 취약한 상태의 통일은 위험하다는 것이고 특히 사회 통합 과정에서 오는 갈등과 진통은 예멘과 같이 내전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연방이니 민족화합이니 그리 쉽게 애기할 일들이 아니다.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몽골울란바타르대 명예총장ㆍ서울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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