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골2:14-15, 히4:14-16
제12강 그리스도의 구원사역(Ⅱ)
(골2:14-15, 히4:14-16)
ⅱ)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정하신 흠 없는 희생 제물이었다. 그는 율법의 저주를 스스로 당하셨다. 그리스도의 대속을 예표했던 구약의 희생제물과 일치했다.(2.16.6) 그는 우리의 죄의 수치와 책망을 스스로 당하시고 대신 그의 순결함으로써 우리를 옷 입히셨다.(고후5:21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다. 이는 우리가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칼빈의 이중 전가 교리가 있다. 우리의 죄는 그것 때문에 죽으신 하나님의 죄 없는 아들의 영적 은행계좌로 들어가고 그 아들의 의는 우리의 파산된 영적 은행 계좌로 옮겨짐으로써 우리를 하나님 앞에 용납되게 한다.
칼빈은 이 문맥에서 승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가 그를 압도했던 저주아래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저주를 스스로 취함으로 그 저주의 압력을 분쇄 하였다. 이런 까닭에 믿음의 눈이 있으면 정죄 받으심에서 죄사함을 곧 그가 받으신 저주에서 축복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얻으신 승리를 아주 당연하게 크게 선포한다. 마치 수치로 가득 찼던 십자가가 승리의 마차로 바뀌기나 한 것처럼(골2:14-15)
칼빈은 그의 독자들에게 그리스도와 그의 희생을 항상 마음에 두도록 강력하게 권하였다. 그가 희생제물이 아니었다면 그가 우리의 속량, 속전, 화해시라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우리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ⅲ) 사도신경은 그가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고 한다. 칼빈은 우리의 대속주 그리스도가 우리와 자신을 동일시한 것으로 보았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신자들이 얻는 두 가지 유익을 말한다. ⓐ 우리 원수인 사망, 마귀 그리고 하나님 진노에 대한 두려움 등에 대한 승리다. ⓑ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죄에 대한 승리이다 고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살라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죽으심을 헛되게 하지 않는 한 모든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그 죽으심이 효과를 나타내게 되어 있다고 선언했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묻히심에서 이중의 축복이 우리 위해 나타났다고 한다. 하나는 우리를 얽매었던 죽음에서의 해방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육체를 죽이는 것이다.
③ 그리스도의 지옥강하(2.16.8-12)
ⅰ) 사도신경에서 죽으심과 묻히심 다음에(장사되시어) 지옥에 내려가신지 사흘 만에… 로 된 부분에서 교부들 중 몇이 이 지옥강하를 뺀 사실을 칼빈은 지적하면서 그것은 매우 중요한 교회로서 유익하고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신비를 포함하고 있다는 보석 같은 교리라 했다.
사도신경은 우리의 신앙의 요약으로 모든 항목이 완전하고 예외 없이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에서 나왔다. 지옥으로 번역된 단어를 때로는 음부(grave)로 번역되지만 지옥강하를 음부강하로 해서는 안 된다. 음부강하는 죽어 무덤에 묻힌 것이므로 불필요한 반복을 했을 리 없다고 본 것이다.(2.16.8)
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가 선조 림보(limbo)에서 죽은 신자들을 자유케하여 낙원으로 인도하려고 지옥(netherworld)에 내려 가셨다. 칼빈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죽은 의인과 악인 모두에게 알려졌다.(2.16.9)
ⅲ)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가 자기의 육체로는 죽음을 당했고 그의 영혼은 지옥의 고통을 당한 것이다.(2.16.10)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고 그의 정당한 심판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엄중한 보복을 십자가상에서 당하셔야 했다.(히5:7) 칼빈은 승리라는 용어를 추가하여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화해의 결과들 가운데 하나로 그의 죽으심을 표현하였다. 그리스도는 몸만 아니고 영으로도 죽었다. 이 영혼의 죽음이 곧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바 지옥강하의 의미이다.
ⅳ) 그리스도의 지옥강하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한다.(2.16.11) (행2:24; 히5:7; 시22:1; 마27:46) 성부 하나님의 진노는 아들 자신에 대한 진노가 아니고 우리 죄를 대신 지신 대속주 되신 그에게 그의 진노를 부으셨다. 범죄하여 정죄 받은 사람의 진리에 우리를 대신하여 있던 그를 하나님은 잠시 버리셨다. 그리스도가 아버지의 버림받았다는 것은 단지 외관상일 뿐이 아니고 실제로 지옥의 공포로 심하게 고통스러워 하셨다.
ⅴ)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두려움에 떨었다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명예를 손상 시켰다는 이들의 주장을 칼빈은 비판했다.(2.16.12) 복음서 기자들이 그리스도의 공포와 두려움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가 인간적인 연약함을 취했다해서 그의 하늘의 영광이 결코 훼손되는 것이 아니고 비참한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더 적합하게 해 준다.(히4:15) 죽음보다 더 두려운 어떤 것으로 인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구주는 핏방울을 떨어뜨렸고(눅22:44) 잔을 마시기를 주저했으며(마26:39) 성부는 천사를 보내어 그를 수종들게 하셨다.(눅22:43)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했다.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야 했는가를 보여준다. 그는 우리 대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깊은 절망 가운데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마27:46)
④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보좌 우편에 앉으심(2.16.13-16)
ⅰ) 그리스도의 부활이 지옥강하 다음에 나온다. 부활이 없으면 지금까지 논한 것들이 헛것이 된다.(2.16.13) 우리가 거듭나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는 것(벧전1:3)은 그의 죽으심을 통해서가 아니고 그의 부활을 통해서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만큼 필요하다. 그의 죽음을 통해서는 죄가 씻어지고 죽음이 소멸되었으며 그의 부활을 통해서는 의가 회복되고 생명이 되살아났다. 이로써 그의 부활 때문에 그의 죽음이 우리 안에서 그것의 능력과 효력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일종의 보증을 받음으로써 우리가 우리 자신의 부활을 확신하게 된다.
ⅱ) 그가 승천하던 때에야 비로소 그의 왕국을 사실상 시작하셨다.(2.16.14) 예수의 승천으로 말미암아 그의 새롭고 강력한 방식으로 성령을 보내실 준비를 하셨다. 그의 몸이 하늘 위로 올라간 것처럼 그의 능력과 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경계를 초월하여 퍼져 나갔다. 그의 신체적 임재를 철수한 것은(행1:9) 신자들의 순례길에서 그들과 함께 하시기를 그만두기 위함이 아니고 그의 직접적인 능력으로 하늘과 땅을 통치하기 위함이었다.
ⅲ)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2.16.15)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에 대한 주권(Lordship)을 얻으셨고 그에게 맡겨진 통치권을 엄숙하게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앉으심의 목적은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이 그의 위엄을 경배하고 그의 손으로 통치를 받으며 그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의 권능에 복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앉으심은 하늘의 심판 자리에서 통치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히1:3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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