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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말씀의 샘 > 강해/제자의 도 > 요한 칼빈의 기독교강요 강해
2010-11-20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선행 1
로마서 12:1-3
 

본문 : 로마서 12:1-3

제18강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선행(Ⅰ)
(롬12:1-3)


Ⅰ 칼빈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성령의 은밀한 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3.3.2)

우리의 구원을 향해 인도하신 성령님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바로 그 큰 은혜에 기반하지 않고서 의로우심이나 자기부인의 훈련 및 사랑의 법칙과 같은 것들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칼빈에게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아우르는 일반적인 용어는 중생이다. 중생을 새로운 탄생의 순간으로만 생각하는 현대신학의 경향과 달리 칼빈은 중생을 신자가 죄와 악으로부터 벗어나 영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또한 청교도들이 믿음의 열매를 맺는 접근방법으로 중생을 들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칼빈은 더욱 광범위하게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 과정을 대상으로 중생을 적용하였다. 중생과 회개는 거의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는 하나님의 주도권을 강조하며 다른 하나는 인간의 노력을 강조한다.

주께서 우리를 양자 삼으신 조건은 하나뿐이다. 즉 우리의 양자관계의 띠(bond)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활에서 나타내라는 것이다.(3.6.3)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것(3.6.4),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것(3.6.3), 우리 마음에 복음을 새기는 것(3.6.4)등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기본적 신분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예가 된다. 우리는 이런 신분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신분으로부터 분투하는 것이다.

① 간결성과 명확성은 칼빈의 생애동안 붙잡았던 주제다.(3.6)
3권6장에서 두 가지를 가르친다. 첫째, 우리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의에 대한 사랑이다. 둘째, 이 의에 대한 열의를 통해 우리를 인도하는 준칙이다.(3.6.2) 의에 대한 사랑을 깊게 다룬 칼빈은 동기를 강조한다. 우리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좋은 출발점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를 부르심의 기본적인 원인은 우리의 거룩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이다. 만약 우리가 거룩한 예루살렘 도성에 거 할 것이라면 우리는 이 도성의 신성을 어떠한 불순종함으로도 더럽혀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았음으로 우리 자신을 새로운 오염들로 다시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늘의 정결함과 퇴색하지 않는 면류관을 받기로 정해졌으므로 우리는 이러한 목적에 비추어 살아야 한다.
칼빈은 완전주의(perfectionism)에 대해 경고한다. 동시에 우리 모두는 진전을 이루고자 희망해야 한다.

② 자기부정(3.7)
칼빈은 롬12:1-2 말씀 따라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소유가 된 우리는 우리의 자율성을 내려놓았으며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어 있다. 칼빈은 섬김이라는 말을 통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뿐 아니라 마음의 정욕을 비우고 성령님을 초청하도록 변화 하는 것까지 말하고 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갈2:20 3.7.2)

이웃과의 적절한 관계로 우리의 관심사를 인도한다.(3.7.4) 남을 나보다 낮게 여기는 교만이 모든 죄의 모태임을 인식하였다. 기독교강요에서 시종일관 오만함과 공로를 추구하는 우리의 경향을 탐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아니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남들에게 합당한 명예를 인정할 수 있게 되고 공손하게 존중하며 겸손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모든 은사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고 교회를 위한 것이고 이웃의 선을 위하여 나누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3.7.5) 후일 개혁주의 신학의 중심 사상이 된 청지기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욥기서 주해)
고전13장의 사랑에 대한 내용과 육신에 대한 은유를 사용하여 이웃을 먼저 생각해야 할 필요성과 그들의 유익을 위해 우리의 은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상기시키고 심지어 우리에게 도움이 될 때도 우리가 누리는 유익의 중요도도 이웃의 유익 다음으로 생각 되어야 한다. 즉 모든 것이 사랑의 법칙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관대함이 하나님을 유익하게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만 우리의 은사를 성화되게 하시는 은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적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악을 대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적들의 악한 의도가 아닌 그들 속에 거하시는 아름답고 존귀하신 형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칼빈은 십계명을 방대하게 다룬 내용에서 우리 이웃의 신원과 그가 누구이든 간에 그의 존엄성을 항상 귀하게 할 필요성을 언급한다.(2.8.13-50) 우리가 사랑의 감정에 있어 모든 족속을 구분 짓지 않고 포용해야만 모든 이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 안에 있음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자신으로 하여금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도덕법과 자연법과의 관계를 설명하고(2.8.1) 종종 자연법을 우리 양심의 중심이라 한다. 양심은 참 자유함의 조건을 규정하고 있지만 율법의 의무조항에 내재되어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먼저 심판의 개념이다.(3.19.15) 선한 양심은 우리 마음의 내적인 고결함이다.(3.19.16) 어떤 인간이 세운 법칙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양심을 지배하기를 열망한다.(3.10.1) 칼빈에게 양심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내적인 법이며 어떤 면에서는 저 두 판(the two tables)으로 부터 배울 수 있는 것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다른 이를 돕기 위해 태어났다는 세네카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의 권리 포기는 하나님 의지의 온전한 수용과 협력한다. 우리의 허영심과 자만심에 대한 악한 갈망이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참된 행복을 우리로부터 빼앗아 간다고 맹렬히 비난한다. 우리의 연단과정은 혹독하지만 결국에는 명예와 부는 비참한 결과를 불러 올 것이고 하나님께로 버려지는 것은 축복을 가져올 것이다.(3.7.8)
칼빈은 근면함과 성실성을 권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들이 확실한 부의 창출과 동일시 한 적은 없다. 칼빈은 재물을 통한 위안을 갈망하는 것을 엄격하게 경고한다. 가치 있는 자와 가치 없는 자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맹목적인 부를 신뢰하지 말고 대신에 우리를 풍요롭게 하거나 가난하게 하실 수 있으며 항상 정연하고 공정하신 하나님 한 분만 신뢰할 것을 권고한다.(3.7.10)

③ 고통(3.8)
1-6절에서는 십자가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이것은 이전 주제였던 자기부인에서 연결된다. 그 후 칼빈은 박해에 대해 그 뒤에는 성경적 접근과 철학자들의 접근을 비교한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칼빈 자신이 삶에서 실제로 큰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칼빈의 질병-불면증, 담석, 폐결핵, 아들이 미숙아로 태어나 몇 달 만에 사망, 부인 Idelette(이델레뜨)는 만성적으로 앓다가 결혼 후 9년이 되기 전에 죽었다. 생의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 비난을 많이 받고 박해로 제네바에서 쫓겨났다. 반대파들로부터 안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현대의 논법과 달리 칼빈은 자신의 저작에서 결코 그 자신을 언급한 적이 없으며 심지어 고통에 대한 내용과 같이 그의 실례가 신뢰성을 더 할 법한 경우에도 그러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십자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집중했다.

우리의 구속주 그리스도가 고통의 삶을 위해 부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고통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3.8.1-2) 실제로 그의 삶은 영원한 십자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칼빈은 고통도 축복이며 우리의 구원을 속히 얻는데 도움이 된다. 칼빈은 교만을 내려놓는데 매우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스도의 고통은 아버지께 순종하기 위한 단 한 가지 목적이 있으며, 우리의 고통은 다양한 목적이 있는데 특히 우리의 자만심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겸손할 때에야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진실로 부를 수 있으며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 안에 세워질 수 있다.

인내와 순종은 3.8.3-6에서 다룬다. 자기 기반을 십자가에 두고 얼마나 많은 선한 것들이 이 죽음의 도구를 통해 발생하는 지를 보여준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소망을 얻었다.(롬5:3-4) 십자가를 통해 아브라함 같은 인내를 배운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의 선함이 활기를 얻고 십자가를 통해 순종을 배운다.

십자가를 약(medicine)에 비유한다.(3.8.5) 본질적으로 자기만족으로 인해 의지박약이 되었고, 우리를 건강하게 하시고자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에게 나오신다. 십자가는 징벌의 도구로 묘사하고(3.8.6) 우리는 주님의 친절하심을 알 수 있다. 신자의 징계는 회개케 한다.

의를 위한 박해는 특이한 위로다.(3.8.7-8) 그것을 축복의 개념으로 본다.(마5:10) 가난, 망명, 모욕, 투옥, 망신, 죽음이 그것이다. 만일 집에서 쫓겨났다면 더욱 친밀하게 하나님의 가족 일원이 될 수 있게 된다. 망신은 최악의 형태 중 하나지만 그것도 그리스도의 부르심이기 때문에 비난 속에서 위로를 취할 수 있다.

고통 그 자체를 영화롭게 하지 않고 긍정적 마음을 먹는다 해도 마음의 쓰라림과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신자들이 고통의 절망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대응책은 인내를 기르는 것이라 한다.
순교자의 간증이 성경의 신뢰도를 세우는데 중요 하지만(1.8.12-13) 그리스도 피만이 우리 죄를 대신하기 때문에 과도하게 순교자를 영화롭게 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3.5.3)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은사를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 유익을 위함이니 그 창조하시고 정하신 목적에 따라 은사를 사용한다면 이것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음식은 필요를 위한 것 뿐 아니라 즐거움을 주고 의복은 필요 때문만 아니라 아름답게 보이기 위함이며 풀, 나무, 과일에는 외형의 아름다움과 향기의 유쾌함이 있다. 사물의 효용성만 위한 것이 아니요 즐거움을 위해서도 주신 부분이 있다.(3.10.2)

칼빈은 육의 정욕을 반대하듯 하나님의 선하신 선물을 즐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비인간적 철학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교부들의 전통 따른 연회와 폭식은 꾸짖고 있다. 세상에 대한 경멸과 천국의 불멸을 향한 갈망에 대해 말한다. 우선순위를 고민하고 있다.

의복에 대한 관심이 크면 덕행에 대한 무관심도 크다.(3.10.4) 고전7:29-31에 근거한 세 가지 기본법칙을 제시한다. ①만약 당신이 이 세상에 속한 사물을 사용한다면 지나치게 탐닉하지 말라 ②당신이 가난하게 살게 되어 있다면 그것을 인내하라 ③우리가 계산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우리에게 절제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3.7.8-10)

그는 소명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를 지키는 망루 곁에 머무르며 생각 없이 삶속에서 방황하지 말아야 하며 압제자를 시해하는 일을 금할 것을 말한다. 소명에는 우열이나 귀천이 없다. 폭군의 손으로부터 국가를 해방하는 것은 고귀하다. 우리의 짐을 하나님이 지워주신 것임을 안다면 아무리 낮고 천한 일이라도 그것을 소명으로 알고 순종하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빛날 것이며 귀한 것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이종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