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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말씀의 샘 > 강해/제자의 도 > 요한 칼빈의 기독교강요 강해
2010-11-26
세속정부와 국가
 

본문 : 롬13:1-7, 마22:15-22

제23강 세속정부와 국가
(롬13:1-7, 마22:15-22)

칼빈의 신본주의적 정치관을 정리하면 첫째, 하나님 홀로 어떤 피조물도 아닌(하나님만이 그것들을 창조했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유지하시고 그의 법으로 다스리시기 때문에) 나라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통치권을 가지고 계신다. 둘째, 정치적 영역에서 죄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깨뜨렸다. 그 결과 통치 목적을 위해서 이 사람들 속에 권위가 행사되게 하였다. 셋째, 이 권위가 어떤 형태이든 하나님의 위엄으로부터 내려오는 권위에 의한 것 외에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 동료 인간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가지지 못한다.

칼빈은 국가의 절대권한(Omni-competence)에 반대하고 어떤 권리도 기존의 법들 위에 있거나 초월하지 못한다는 끔찍한 개념에 반대하며 어떤 입헌적 권리들도 인정하지 않는 전제 정치의 교만에 반대하여 항의한다고 한다. 대중의 힘(democracy)에 호소하지 않고 또는 인간의 위대함이란 착각에도 호소하지 않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 전제정치의 강물을 가로질러 막는 댐을 건설했다.(4.20)

관리는 법을 수호하는 자이며 지키는 자(4.20.3) 이다. 법은 통치자들에게 객관성을 준다.(4.20.14-16) 칼빈은 세속정부는 하나님이 인류를 긍휼히 여겨 제공하신 방법 중 한 가지라고 믿었다. 따라서 인간정부의 영역은(대개 법 같은) 인간 문화를 위한 자비의 증거라고 믿었다. 세속군주의 임무는 종교에 대한 공적 표현이 기독교인들 중에 존재하도록 그리고 인간애가 사람들 중에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세속정부가 없다면 또는 만약 타락한 사람들이 벌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확실히 죄를 범할 것이다.(4.20.2) 그리고 사회는 혼란으로 점점 악화될 것이다. 무정부 상태를 엉망진창 밀짚에 쥐처럼 사는 것으로 비유했다.

칼빈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권위를 포기하고 사생활로 돌아가라 명령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주어졌던 권세를 그리스도에게 돌리고 그 분이 홀로 모두 위에 뛰어나도록 하셨다고 주장한다. 권력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그 분이 세상의 합법적이고 바른 통치를 위해 그들을 임명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권리는 하나님이 인류의 복지를 위해 제정하신 것이다.(로마서 주해, 479)

칼빈은 공복들을 호의적으로 하나님의 대리자들(4.20.6), 사람의 안전을 보전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가장 높은 선물(4.20.25) 그리고 하나님이 정한 일반국민의 무죄함, 검소 품위, 평정의 보호자들이며 변호자들(4.20.9)로 부른다. 세속정부에 명해진 목표는 하나님께 드리는 외적인 경배를 귀하게 여기고 보호하며, 건강한 경건의 교리와 교회의 입장을 보호하며, 우리의 삶을 사람들의 지역사회에 맞추게 하며, 우리의 사회적인 행위를 세속적 의로움에 맞게 하며, 우리를 서로 화해시키며 전반적인 평화와 평온을 진작시키는 것(4.20.2)이라 했다.

관리들은 사리사욕을 위해서가 아니고 공익을 위해 통치하는 것이다. 그들은 굴레벗은 권력이 아니라 백성들의 복지에 제한된 것을 부여 받았다.… 그들은 권력을 행사할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대리자로 삼아 그분의 일을 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그분에게 답변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긴 직무는 백성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빚진 자들이다.(로마서 주해, 481)

칼빈은 정치와 섭리가 둘 다 실행되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왕국이 완전히 실현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임해 있다고 하였다.(4.20.2) 그러나 칼빈은 신정주의자(theocrat)로 낙인찍지 않도록 예수가 그의 종들이 세상 나라의 강화를 추구하지 않았다고 말한 복음구절에 대한 그의 주해들(요18:36)을 다시 들 수 있다.

세속관리는 단독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범법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칼을 가지고 하나님의 바로 그 심판들을 수행한다.(4.20.10) 칼빈은 전쟁을 치를 권리의 한 예로서 그 땅에서 사악한 자들의 멸망을 용인한 다윗왕을 인용했다. 세네카의 잠언을 언급할 때 칼빈은 진실로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는 군주 아래 사는 것은 나쁘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용되는 사람 아래서 사는 것은 훨씬 더 나쁘다(4.20.10)는데 동의했다.

그는 세금이란 공공의 필요를 지원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서 신중한 한계를 권고했다. 명분없이 일반백성에게 세금은 부담시키는 것은 포악한 착취다.(4.20.13) 순종은 기독교인의 의무다. 그러나 왕들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시지 않으려면 낭비와 값비싼 사치품을 탐닉하지 않아야 한다.(4..20.24)

기독교인들이 공공법정을 이용할 수 있음을 확실히 인정했다.(4.20.17) 법적 소송절차를 밟는 것은 그 자체로 악한 것은 아니었다. 고소할 권리를 말한 것은 평화주의를 칼빈이 거부한 논리적 결과다. 재산을 지키는 개인의 권리를 위해 고소할 수 있으나 욕심, 보복 그리고 과도하게 소송에 의지하는 것을 경고했다.(4.20.18-21)

칼빈은 신자들에게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통치자들의 마음을 바꾸도록 촉구했다.(4.20.29) 혁명에 관하여 그는 중간군주들을 통한 평화롭고 유익한 혁명을 지지했다. 사람들에게 불경건한 행위들을 강요하는 관리에게 저항할 자유와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통치자들에게 순종하는 것 때문에 결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단념해서는 안된다.(4.20.32) 칼빈의 저항이론은 히브리산파의 반역에 대한 그의 주해에서 나타난다. 바로의 살인명령에 대한 어떤 순종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왕들을 만족시키려는 시도는 사악하다고 보았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란 예수의 가르침을 주해하면서 칼빈은 어떤 관리에게 순종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우리 안에 자유롭게 갖지 못해서는 안된다고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정치적인 질서를 깨뜨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다. 그래서… 왕과 관리에게 순종하는 것은 항상 하나님께 경배하고 경외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 만약 왕이 하나님의 권위 중 일부라도 자기 것으로 주장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범죄함없이 지낼 뿐아니라 그들에게 복종해서는 안된다. 왕들이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서 왕을 존경한다면 이는 자연이치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앞뒤가 뒤바뀐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 땅의 왕들이 하나님에게 대항하여 일어날 때 그들의 모든 권력을 버리는 것이며, 그들을 사람의 수로 넣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들이 매우 반항적으로 하나님의 권리를 빼앗기를 원할 때, 하나님의 보좌를 엄습하고 하나님을 하늘로부터 끌어내리려 할 때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철저하게 대항해야 한다.(사도행전4:19-20주해, 178, 214-215)

칼빈은 세속정부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그는 세속정부의 역할과 극한적인 환경을 제외하고는 기독교인들은 그 정부에 복종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논한다. 세속정부는 인간의 죄성의 해악을 방지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므로 칼빈은 어떤 정부라도 전혀 정부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였다. 어떤 정부가 아무리 변형되고 부패되었다 할 지라도 무정부상태보다는 훨씬 낫고 더 유익하다(벧전 주해, 480)고 믿었다.

칼빈은 왕들과 관리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들이 누구일지라도 우리가 강요받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수락하신 봉사이기 때문에 그 직분은 두려울 뿐아니라 자발적인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로마서 주해, 483) 관리들에게 종교와 국민의 품위를 보호할 것을 요구한다.(딤전2:2 주해)

이종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