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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8
내 사랑 서울교회여, 깨어나라!
2020 홍해작전 말씀요약


6월 18일 (목)
참된 예배의 신학적 원리 (요 4:23-24)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있는가 하면 거부하시는 예배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올바른 성경적 가르침을 근거로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특별히 공적인 예배는 어떤 것입니까?

1. 보편적 통일된 예배 형식(모범)이 있는 예배
예배에 보편적이고 통일된 예배의 형식이 있어야 하는 것은 교회가 특정인의 교회가 아닌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하나이며, 주님께 나아가는 방식도 같아야 합니다.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합당한 예식입니다. 대부분의 예배가 굉장히 육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모습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 원리에 근거하기보다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요구사항에 더 집중하며 인간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수단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예배를 생각하기보다는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즐겁고 더 만족한 예배를 할 것인가에 치중하기 때문입니다.

2. 성경적이고 하나님 중심적인 예배
예배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최고 최상의 반응인 것입니다. 예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들만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예배는 그 말 자체에 함축된 것처럼 사람들이 고안한 방식이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식으로 행해질 때 지존하신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가 되는 예식이 됩니다.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행하는 의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예배자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6월 19일 (금)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요 4:23-24)



1. 진리로 예배하라
진리로 예배하라는 것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 갈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진리이신 예수님의 공로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곧 거룩과 영광을 요구하십니다(레 10:3).
우리는 때대로 우리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전 4:6)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진정한 자유는 진리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2. 영으로 예배하라
① 영으로 예배하라는 것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는 예배를 의미합니다(롬 12:2). 구약에서는 외적인 형식에서 구별된 것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상징적인 것들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온 마음을 다 쏟아붓는 것이 영적인 예배라고 합니다.
② 영으로 예배하라는 것은 단순한 예배를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창의적인 방식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단순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지성소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히 10:19-22). 이처럼 영으로 예배하는 것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단순한 것입니다.
③ 영으로 예배하는 것은 경외심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정신은 경외감으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것이 예배입니다(히 12:8). 경외심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두려워하는 자세입니다(계 5:11-14).
④ 영으로 예배하라는 것은 지혜롭고 합리적으로 마무리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배는 모든 것들이 품위가 있고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6월 20일 (토)
공예배의 중요성, 그 유익과 특권Ⅰ(시 87:1-3)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더 사랑하시는도다”(시 87:2). 야곱의 모든 거처는 성도 개인의 경건의 시간 혹은 사적인 예배를, 시온의 문은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공적인 예배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처소에서 개인이 드리는 예배도 기뻐하시지만 그 보다는 공적으로 함께 모여 예배 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신 12:5-7).
그러면 공예배의 복과 유익, 그리고 특권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은 공예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 경배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경배할 때 더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시 22:22-25). 공예배가 무시당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십니다(말 1:6-8 11).

2. 공예배에서 주님의 임재하심이 더 많이 크게 나타난다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출 20:24) 마 18:20절에서 주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갖겠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3. 공예배에서 가장 명백한 하나님의 현현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날이 이르기까지 공예배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영광과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하나님의 모습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시 27:4).

4. 공예배에 더 많은 영적 유익이 있다
목자는 주님께서 공예배를 집전하도록 세우신 교사입니다. 교회는 그들에게서 먹을 영적 양식과 쉼이 무엇인가를 지도 받습니다. 성도는 목자들을 통해 영적인 위로와 양식을 얻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성도는 공예배를 통해서 목자들이 눈물로 전하는 복음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지식을 얻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됩니다.



6월 22일 (월)
공적 예배의 유익과 특권Ⅱ (시 87:1-3)



1. 공예배는 성도들을 더 굳게 세운다
사적인 예배는 개인만이 유익을 얻게 되지만 공예배는 온 회중에게 유익이 넘칩니다(슥 8:20-21, 시 34:3). 요즈음 교회에 나가지 않고 혼자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간혹 이런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은 교만 때문입니다. 이같이 냉랭한 자들이 뜨거움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복이 넘치는 공예배의 자리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예배를 통해서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2. 공예배는 타락(배교)을 방지하는데 효과적
개인 경건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는 신앙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신비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개인의 신앙 검증을 공예배를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쫓겨 다니며 망명생활을 할 때 개인적으로 경건의 시간을 많이 가졌지만 그 때 다윗에게는 수많은 유혹이 찾아왔습니다(삼상 26:19). 공예배는 성도들로 하여금 배교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지해 주는 안전망입니다.

3. 공예배는 하늘나라와 가장 가까운 처소이다
성경에서 묘사하는 천상의 모습은 골방에서 혼자 기도하는 것과 같이 개인적으로 무엇을 하는 장면이 전혀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영광스럽고 찬란한 예배가 모두 공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다윗도 시 84:1-2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사모함의 충족이 주의 장막에서 온다고 고백합니다. 공예배에서 천국을 맛보지 못하면 개인의 경건 시간은 허망하게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4. 공예배는 가장 큰 자비를 얻는 최고의 시간
공예배는 가장 큰 심판을 피하는 최고의 자비의 시간입니다. 교회가 공적으로 기도할 때 베드로가 감옥에서 구출되었습니다(행 12:5-17).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실 분, 우리를 파멸에서 구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이시니 이 하나님 앞에 모두 모여 부르짖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6월 23일 (화)
사적 경건시간이 더 은혜롭지 않은가? (마 15:7-10)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경건의 시간에 성령이 더 많이 위로해 주시고 도움을 주시어서 감격과 기쁨을 누린다고 말합니다. 또한 공예배는 지루하고 형식적이고 일방적이어서 별 감동이 없다고도 합니다.

1. 판단의 기준은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다
개인의 경험과 감정, 체험이 우선되면 사단은 즉시 바른 길에서 벗어나기를 미혹합니다. 경험은 속임을 당하기 쉽습니다. 기독교인은 성경의 교훈에 의해서 통제되어야 하고, 주관적인 느낌은 객관적 성경에 의해 검증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태양보다 화로에서 더 큰 열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태양보다 화로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경험이 우리의 판단을 결정하는 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경험에 의한 사람의 교훈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자리로 나갈 수 있게 합니다.

2. 특수한 것은 보편적인 진리가 아니다
공적인 모임이 막혔을 때, 혹은 개인적으로 고난과 핍박으로 인해 개인적이 경건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을 때 하나님은 그때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공예배를 사모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개인의 경건시간의 힘은 공예배를 통해서 더욱 강화됩니다.

3.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은혜는 공예배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의 열매이다
사적인 시간에 가지는 보충적인 은혜, 확장되는 은총, 주님을 향한 더 짙은 애정표현은 언제나 공예배에서 이어지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공예배의 유익은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그 후광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일에 개인의 느낌이나 감정이 아닌 하나님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4. 공예배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마음의 태도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공예배가 성경적이고 바른 신학에 기반하여 집전되고 있는가? 라고 하는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 1:15-16절에서 모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문제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죄악된 상태에 있는지 혹은 마음과 행실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영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6월 24일 (수)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치 못한 예배 (시 29:1-2)



시편 29편은 순수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섬기는 최고의 수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1. 공예배보다 못한 일을 선호하는 행위
공예배보다 개인적인 의무를 더 선호하는 것은 죄악되고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편리주의를 추구하고, 인본주의에 사로잡히고, 세속주의에 빠져 경건을 자신의 야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하며 성경적이지 않은 것들을 더 선호하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경시하는 풍조를 피해야 합니다. 또한 공예배의 참여를 주저하게 만드는 그 어떤 유혹에도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대로, 하나님이 정하신 날에 하나님이 정해주신 장소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다.

2. 개인적인 경건시간으로 공예배 시간을 대체하는 행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나면 우리는 한 주간을 잘 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 이 말씀과 같이 사도 바울은 정해진 시간, 정해진 원칙대로 예배할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곧 품위요 질서라는 것입니다. 공예배는 경시하면서 개인의 경건시간은 주님께서 용납해 주시리라고 기대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더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3. 거룩한 옷을 입고 경배하지 않는 행위
거룩한 옷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을 말합니다. 그 분의 의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며 나오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자격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뿐입니다.





6월 25일 (목)
공예배에 생명을 걸라 (시 100:1-5)



시편 100편은 성도가 공예배에 생명을 걸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서 큰 영광을 받으시고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의 방편이 되기 때문에 공예배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1. 하나님께 우리의 소유권이 있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나를 지으신 분이 누구입니까? 나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분의 뜻대로 살아야 하고, 그 방편이 예배입니다.

2. 우리의 생존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에게 의존되었다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며 목자는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예배를 통해서 성도들이 배부르고 힘을 얻는 양식을 풍성하게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공예배에 열심히 참여하십시오. 이것은 우리의 영적 생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3. 여호와는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성실하시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시 30:5). 죄와 허물뿐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요 은총은 영원하여 우리의 삶을 무덤까지 책임져 주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우리의 목숨을 거는 일은 너무도 타당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선하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선하시고, 하나님의 사유하심이 선하시고, 하나님의 언약이 선하시고 하나님의 모든 존재가 다 선하시니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공예배를 복되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즐거이 부르며 기쁨으로 섬기며 나아 가십시오.

맺는 말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주의 말씀을 전하는 종들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십시오. 복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아멘.

정리 : 허숙 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