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이 올해로 501주년이 되었다.
종교개혁은 자유 · 평등 · 민주주의에 더해 자본주의의 근대성을 가져다준 위대한 종교적 혁명이다.
1517년 10월 31일 신부 마르틴 루터(1483∼1546)는 독일의 작은 마을 비텐베르크성 교회의 문에 가톨릭에 정면 도전하며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다. 이 가운데 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내용이 종교개혁에 불을 지피게 되었다. 당시 루터의 나이는 서른 넷, 젊디 젊은 성직자였다. 그는 수도자이면서 신부였고 또한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는 교회에서 요구하는 선행을 실천한 게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한다’는 ‘칭의(稱義)의 개념’에서 구원의 길을 찾았다. 그는 기독교 본연의 길을 찾고자했다. 루터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의 신앙과 구원이었다. 95개조 반박문은 즉시 독일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루터는 가톨릭교회와 대화하고 싶어 했으나 교회는 응답이 없었다. 대신 독일 국민과 신자들이 응답했다. 이 일련의 일들로 인하여 루터에게는 생명의 위협도 가해졌다.
루터는 신앙의 문제, 즉 교회개혁에 집중하려 했으나, 교회는 루터를 적으로 만들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오로지 루터 신부에게 반박문 철회만을 요구했다. 개혁은 고사하고 대화조차 거부했다. 교회의 권위와 선택만을 무조건 따르라고 요구했다. 결국 교회는 루터를 이단으로 내몰아 종교재판을 열어 교수형 내지 참수형으로 다스리길 원했고, 루터의 개인적 순수 신앙은 굴절되었다. 당시 독일인들은 루터의 반박문 사건을 계기로 국가종교를 탄생시켰고, 이를 두고 권력과 종교의 야합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나 종교의 권력화는 모양만 달리하면서 오늘날까지 계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들은 갖가지 유형의 권력 카르텔을 만들어냈다.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개신교는 이런 권력 카르텔의 중심세력을 형성하면서 과잉 성장해 왔다. 교회는 숫자를 과시하고 커다란 교회를 짓기에 혈안이 되었다.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종교개혁 정신이 깃든 교회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 루터의 신앙은 굴절 되고, 종교개혁의 본 뜻은 훼손되었다. 이제 교회와 성도는 이러한 권력을 카르텔을 깨고 도덕과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 루터는 가톨릭의 거대 권력에 맞서 오직 믿음을 강조하며 개신교를 탄생시켰지만 개신교는 시간이 흐르며 가톨릭과 방불한 권력의 카르텔을 형성해 왔다.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해마다 열리는 거창하고 거룩한 구호를 외치며 개최하고 있는 총회와 노회에서도 우리는 권력의 카르텔을 보며 절망하고 신음한다. 이는 개교회도 다르지 않다. 개혁의 정신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한 한국교회는 사람들은 물론 하나님께도 외면을 당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현실을 냉철히 통찰하여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목회를 해야 한다. 목회자는 목회성공이라는 야망의지를 내려놓고, 교회는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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