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05주년을 맞이하는 종교개혁이 한국 교회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질문하기 전에, ‘과연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인가?’를 질문하게 됩니다. 중세 교회를 비판하면서 오직 말씀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외쳤던 마르틴 루터와 쟝 칼뱅의 개혁정신이 과연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가를 되집어 보면 긍정적으로 대답하기 힘든 것이 한국기독교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바꾸려고 했던 로마 가톨릭교회의 잘못들 가운데 하나는 ‘사제들’을 ‘제사장’과 동일시하는 신학적인 오류 및 그것에서 비롯된 폐단이었는데, 이러한 오류가 되풀이되는 듯한 모습을 최근 총회에 올라온 어느 노회의 헌의안을 통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성전이 아니고, 목회자는 제사장이 아닙니다.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라고 자처하였고 사제들은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여겼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7성사라고 하는 제도를 통해서 교회와 사제에게 얽매이도록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성직자 임명하는 문제를 가지고 황제 하인리히 4세와 힘겨루기를 하다가 자신의 힘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황제에게 수찬 정지 명령을 내립니다.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권징인 수찬 정지가 교황의 힘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던 수단으로 사용된 이유는 사제가 나누어주는 성만찬의 떡을 받아먹지 못하면 성찬을 통해서 주어지는 구원의 은총으로부터 떨어진다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에 항복한 하인리히 4세는 엄동설한에 무릎을 꿇고 교황에게 용서를 구하였는데, 이 것이 그 유명한 카롯사의 굴욕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정점으로 교황권은 땅에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닌 성만찬의 떡을 받아 먹음으로 구원의 은총이 주입된다고 가르치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그것을 나누어 주는 사제들의 권한을 극대화시켜서 마치 사제들이 죄를 용서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는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죄 선언을 하는 대제사장의 권한이 마치 교황의 권위인 것처럼 행동하는 로마 가톨릭의 사제직에 대하여 루터는 ‘만인제사장직’을 선언하였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직접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을 수 있으며,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기에 로마 가톨릭의 교황이나 사제들은 제사장이 아니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종교개혁 기념 주일을 맞이하여 개혁자들의 정신을 이어가며 오늘날 한국기독교에게 전할 말은 이것입니다. ‘로마 가톨릭 사제가 제사장이 아니 듯, 개신교 목사도 제사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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