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강: 『참종교와 거짓종교』에 나타난 츠빙글리의 신학사상
1. 들어가는 말: 참된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스위스 종교개혁자 울리히 츠빙글리의 대표 저서 『참종교와 거짓종교』를 통해 “참된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묻고자 합니다. 여기서 츠빙글리가 말하는 ‘종교’는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신앙’ 혹은 ‘믿음의 삶’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 혹은 믿음의 삶은 정직하고 성실한 교회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신앙이 없어도 사람이 직장생활을 성실히 하듯, 교회생활 역시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직분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곧 참된 신앙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참된 신앙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중세에는 복음 자체보다 복음을 둘러싼 종교적 장치와 관행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은혜가 어떻게 주어지는지에 대해 점점 더 복잡한 설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은혜보다 교회가 관리하는 종교적 질서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황도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도 비슷한 혼란이 존재합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 자체를 신앙의 목표로 여기고, 어떤 이들은 특정 목회자나 종교적 전통을 절대화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신앙을 하나님과의 관계라기보다 종교적 행위의 문제로 이해합니다. 이 문제는 츠빙글리가 살던 16세기에도 존재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보다 교회의 권위가 더 크게 보이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말하면서도, 그 은혜가 마치 교회에 의해 관리되고 통제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츠빙글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대신한다고 말하는 종교 체계를 신뢰하고 있는가?” 그에게 참종교와 거짓종교의 차이는 단순히 교회 안과 교회 밖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참종교와 거짓종교는 모두 교회 안에서도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신뢰하고 있는가에 있었습니다.
2. 참종교는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이다
츠빙글리는 『참종교와 거짓종교』에서 참된 신앙과 거짓된 신앙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 책(1525)은 모두 29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님, 인간, 율법, 복음, 교회, 성례, 성인숭배, 공로사상, 연옥, 성상 문제 등 당시 교회의 주요 신학 쟁점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책을 츠빙글리의 가장 완성된 체계신학으로 평가합니다. 그렇다면 츠빙글리는 참종교와 거짓종교를 어떤 기준으로 구분했을까요?
츠빙글리에게 참종교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참된 종교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츠빙글리는 종교의 본질을 종교적 의식이나 외적인 행위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당시 종교적 의식이란 무엇보다 7성사로 대표되는 성례 체계를 의미합니다. 교회가 의무라고 말하는 성례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참종교는 단순히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거짓종교는 종교적 열심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 신뢰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뀌어 버린 상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뢰의 대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돈을 의지할 수도 있고, 권력이나 지식을 의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보다 교회를 더 의지하거나, 하나님보다 종교적 형식을 더 의지할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통로라고 주장하는 교회의 시스템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약속보다 면죄부를 더 신뢰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보다 교회가 발급한 문서를 더 신뢰한다면 그것은 이미 참종교의 자리를 벗어난 것입니다.
츠빙글리는 바로 이 점을 경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신이다.” 이 말은 우상이 반드시 눈에 보이는 형상일 필요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돈도 우상이 될 수 있고, 권력도 우상이 될 수 있으며, 심지어 교회나 종교적 전통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거짓종교는 단순히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거짓종교는 우상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신뢰할 때 우리는 우상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우리의 욕망에 맞추어 조종가능한 존재로 여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 위에도 서지 않습니다. 츠빙글리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 위에만 서 있다.” 그래서 츠빙글리의 신학은 결국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3.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종교적 권위 위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참종교와 거짓종교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앞서, 참종교의 핵심이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신뢰는 마음속의 결단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최종 기준으로 삼는지, 다시 말해 어떤 권위에 순종하는지가 결정됩니다. 결국 “참된 신앙”은 ‘내가 무엇을 의지하는가’에서 끝나지 않고, ‘내가 무엇 앞에서 판단받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츠빙글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참종교와 거짓종교를 가르는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았습니다.
츠빙글리가 살던 시대의 교회는 자신을 단지 신앙을 돕는 공동체로만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교회는 신앙의 질서를 규정하고, 은혜의 통로를 관리하며, 신앙인의 양심을 판정하는 최상위 권위로 기능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결정, 교황의 말, 오랜 관행과 전통은 거의 자동적으로 “옳음”의 지위를 갖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전통을 거부했습니다. 인간이 세운 어떤 권위도—그것이 교황이든 공의회든 관습이든—오류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으며, 인간의 판단과 승인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권위를 갖습니다. 그래서 츠빙글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강한 확신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며 결코 실패할 수 없다.” 이 한 문장은 단순한 경건한 문구가 아니라, “무엇이 최종인가”에 관한 선언입니다. 참종교는 이 선언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권위에 의해 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인간 권위를 판단합니다. 즉 권위의 관계가 뒤집힙니다. 교회가 성경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교회를 판단해야 합니다. 전통이 말씀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전통을 검증해야 합니다. 이 말은 곧 “교회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을 말합니다. 교회가 참된 교회이려면, 교회는 스스로를 무오한 재판관으로 세우는 곳이 아니라, 말씀 앞에 함께 서서 들으며 순종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교회의 권위도 결국 “말씀에 일치하는 만큼”만 정당합니다. 말씀이 교회를 만들고, 말씀이 교회를 정화하며, 말씀이 교회를 교정합니다.
따라서 츠빙글리에게 “참종교”란 단지 개인이 성경을 존중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신앙과 교회의 구조 전체가 말씀 중심의 질서로 재배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츠빙글리는 전통과 인간 권위가 제자리를 찾도록 다음과 같이 촉구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나아가게 하고 인간의 말은 물러나게 하라.” 이 문장은 전통을 향한 파괴적 구호가 아니라, 전통의 정당한 자리를 회복하라는 요청입니다. 전통이 살아 있으려면, 전통은 말씀 앞에서 끊임없이 검증받아야 합니다. 검증을 거부하는 전통은 더 이상 신앙의 유산이 아니라 신앙을 가로막는 장벽이 됩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중요한 원리인 “오직 성경”의 정신입니다. 여기서 “오직 성경”은 흔히 오해되곤 합니다. 마치 교회, 설교, 신조, 신학이 모두 불필요하다는 뜻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츠빙글리의 취지는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교회도 설교도 전통도 필요합니다. 다만 그것들은 “최종 권위”가 아니라 종속적 권위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와 전통은 성경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비추는 빛 아래서 제 기능을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이란 이런 뜻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의 승인으로 권위를 얻지 않는다. 교회는 성경에 의해 생기고 성경에 의해 개혁된다. 전통은 성경을 돕는 한에서만 유익하며, 성경 위에 설 때 우상이 된다. 이렇게 보면, “오직 성경”은 단지 학문적 원칙이나 종교개혁 슬로건이 아니라, 참종교의 구조를 지탱하는 실질적 규범입니다.
결국 참종교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고백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다”는 순종으로 구체화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인간 권위가 말씀을 대신해 판단하고 명령한다면, 그것은 신뢰의 고백이 아니라 신뢰의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참종교는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종교적 권위 위에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원리 때문에 교회 역시 말씀 아래 있어야 하며, 결코 말씀 위에 설 수 없습니다.
4. 교회는 은혜의 주인이 아니라 복음의 증언자이다
츠빙글리 시대의 교회는 단지 신자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공동체를 넘어, 구원의 질서를 관리하고 성례를 집행하며 신앙인의 삶을 감독하는 강력한 권위를 행사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교회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처럼 여겨졌고,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은혜도 구원의 확신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츠빙글리는 결정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인가?” 물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하나님 자신인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교회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교회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츠빙글리는 교회를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신자들이 함께 예배하며, 믿음 안에서 서로를 세워 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중요하다고 해서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츠빙글리는 교회를 은혜를 만들어 내는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선포하고 증언하는 공동체로 이해했습니다. 교회는 복음의 주인이 아니라 복음의 전달자이며, 구원의 원천이 아니라 구원을 선포하는 증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사람들을 자신에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자신을 드러낼수록 참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드러낼수록 참된 교회가 됩니다.
이 관점에서 츠빙글리의 교회 이해는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 은혜를 “얻는다”고 생각했지만, 츠빙글리는 은혜의 근원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강조합니다. 교회는 은혜를 생산하거나 저장하거나 통제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가리키고 증언하는 곳입니다. 요약하면 츠빙글리의 교회 이해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은혜의 주인이 아니라 복음의 증언자입니다.”
이 문장은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의 참된 권위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밝힙니다. 교회의 권위는 교회 자체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증언하는 데서 나옵니다. 교회가 말씀에 순종하는 한 권위를 가지지만, 말씀 위에 서려 하는 순간 그 권위는 정당성을 잃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사람들의 양심을 대신하는 기관이 아니라,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우는 공동체이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대신 차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지입니다.
결국 츠빙글리에게 교회의 존재 이유는 분명합니다. 교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신뢰하게 만드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교회는 자신을 향하도록 만드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도록 만드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참종교 안에서 교회는 결코 하나님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말씀 아래 서서 복음을 증언하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가리키는 공동체로 존재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가리킬 때 교회는 참된 교회가 되지만, 교회가 하나님을 대신하려 할 때 거짓종교의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츠빙글리가 이해한 참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5. 정리: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츠빙글리는 참종교와 거짓종교의 차이를 단순히 ‘교회 안’과 ‘교회 밖’의 구분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결정적인 기준은 소속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람이 어디에 속해 있는가보다,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의 말씀에 자신을 두는가가 더 중요했습니다.
먼저, 참종교는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며,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궁극적인 의지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거짓종교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돈이든 권력이든, 종교적 전통이든, 심지어 교회 자체이든—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게 되는 순간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이 신뢰의 문제는 곧 권위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츠빙글리는 참종교와 거짓종교를 구분하는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았습니다. 참종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 권위로 인정합니다. 교회와 전통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은 말씀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말씀은 교회에 의해 정당성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판단하고 교회를 개혁하는 기준이 됩니다.
또한 츠빙글리는 교회의 위치를 분명히 세웁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언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은혜의 주인이 아니라 복음의 증언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은 사람들을 자기 자신에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도하는 데 있습니다. 교회가 자신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드러낼 때 참된 교회가 됩니다.
결국 츠빙글리가 말하는 참종교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며, 교회를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거짓종교는 우상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반대로 참종교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츠빙글리의 『참종교와 거짓종교』 전체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할 때, 말씀은 다시 최종 권위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할 때, 교회는 다시 복음의 증언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할 때, 신앙은 종교적 습관이나 형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이 됩니다. 참종교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츠빙글리가 『참종교와 거짓종교』를 통해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15강: 『참종교와 거짓종교』에 나타난 츠빙글리의 신학사상
1. 들어가는 말: 참된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스위스 종교개혁자 울리히 츠빙글리의 대표 저서 『참종교와 거짓종교』를 통해 “참된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묻고자 합니다. 여기서 츠빙글리가 말하는 ‘종교’는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신앙’ 혹은 ‘믿음의 삶’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 혹은 믿음의 삶은 정직하고 성실한 교회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신앙이 없어도 사람이 직장생활을 성실히 하듯, 교회생활 역시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직분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곧 참된 신앙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참된 신앙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중세에는 복음 자체보다 복음을 둘러싼 종교적 장치와 관행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은혜가 어떻게 주어지는지에 대해 점점 더 복잡한 설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은혜보다 교회가 관리하는 종교적 질서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황도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도 비슷한 혼란이 존재합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 자체를 신앙의 목표로 여기고, 어떤 이들은 특정 목회자나 종교적 전통을 절대화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신앙을 하나님과의 관계라기보다 종교적 행위의 문제로 이해합니다. 이 문제는 츠빙글리가 살던 16세기에도 존재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보다 교회의 권위가 더 크게 보이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말하면서도, 그 은혜가 마치 교회에 의해 관리되고 통제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츠빙글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대신한다고 말하는 종교 체계를 신뢰하고 있는가?” 그에게 참종교와 거짓종교의 차이는 단순히 교회 안과 교회 밖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참종교와 거짓종교는 모두 교회 안에서도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신뢰하고 있는가에 있었습니다.
2. 참종교는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이다
츠빙글리는 『참종교와 거짓종교』에서 참된 신앙과 거짓된 신앙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 책(1525)은 모두 29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님, 인간, 율법, 복음, 교회, 성례, 성인숭배, 공로사상, 연옥, 성상 문제 등 당시 교회의 주요 신학 쟁점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책을 츠빙글리의 가장 완성된 체계신학으로 평가합니다. 그렇다면 츠빙글리는 참종교와 거짓종교를 어떤 기준으로 구분했을까요?
츠빙글리에게 참종교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참된 종교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츠빙글리는 종교의 본질을 종교적 의식이나 외적인 행위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당시 종교적 의식이란 무엇보다 7성사로 대표되는 성례 체계를 의미합니다. 교회가 의무라고 말하는 성례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참종교는 단순히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거짓종교는 종교적 열심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 신뢰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뀌어 버린 상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뢰의 대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돈을 의지할 수도 있고, 권력이나 지식을 의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보다 교회를 더 의지하거나, 하나님보다 종교적 형식을 더 의지할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통로라고 주장하는 교회의 시스템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약속보다 면죄부를 더 신뢰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보다 교회가 발급한 문서를 더 신뢰한다면 그것은 이미 참종교의 자리를 벗어난 것입니다.
츠빙글리는 바로 이 점을 경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신이다.” 이 말은 우상이 반드시 눈에 보이는 형상일 필요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돈도 우상이 될 수 있고, 권력도 우상이 될 수 있으며, 심지어 교회나 종교적 전통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거짓종교는 단순히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거짓종교는 우상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신뢰할 때 우리는 우상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우리의 욕망에 맞추어 조종가능한 존재로 여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 위에도 서지 않습니다. 츠빙글리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 위에만 서 있다.” 그래서 츠빙글리의 신학은 결국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3.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종교적 권위 위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참종교와 거짓종교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앞서, 참종교의 핵심이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신뢰는 마음속의 결단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최종 기준으로 삼는지, 다시 말해 어떤 권위에 순종하는지가 결정됩니다. 결국 “참된 신앙”은 ‘내가 무엇을 의지하는가’에서 끝나지 않고, ‘내가 무엇 앞에서 판단받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츠빙글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참종교와 거짓종교를 가르는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았습니다.
츠빙글리가 살던 시대의 교회는 자신을 단지 신앙을 돕는 공동체로만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교회는 신앙의 질서를 규정하고, 은혜의 통로를 관리하며, 신앙인의 양심을 판정하는 최상위 권위로 기능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결정, 교황의 말, 오랜 관행과 전통은 거의 자동적으로 “옳음”의 지위를 갖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전통을 거부했습니다. 인간이 세운 어떤 권위도—그것이 교황이든 공의회든 관습이든—오류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으며, 인간의 판단과 승인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권위를 갖습니다. 그래서 츠빙글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강한 확신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며 결코 실패할 수 없다.” 이 한 문장은 단순한 경건한 문구가 아니라, “무엇이 최종인가”에 관한 선언입니다. 참종교는 이 선언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권위에 의해 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인간 권위를 판단합니다. 즉 권위의 관계가 뒤집힙니다. 교회가 성경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교회를 판단해야 합니다. 전통이 말씀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전통을 검증해야 합니다. 이 말은 곧 “교회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을 말합니다. 교회가 참된 교회이려면, 교회는 스스로를 무오한 재판관으로 세우는 곳이 아니라, 말씀 앞에 함께 서서 들으며 순종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교회의 권위도 결국 “말씀에 일치하는 만큼”만 정당합니다. 말씀이 교회를 만들고, 말씀이 교회를 정화하며, 말씀이 교회를 교정합니다.
따라서 츠빙글리에게 “참종교”란 단지 개인이 성경을 존중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신앙과 교회의 구조 전체가 말씀 중심의 질서로 재배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츠빙글리는 전통과 인간 권위가 제자리를 찾도록 다음과 같이 촉구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나아가게 하고 인간의 말은 물러나게 하라.” 이 문장은 전통을 향한 파괴적 구호가 아니라, 전통의 정당한 자리를 회복하라는 요청입니다. 전통이 살아 있으려면, 전통은 말씀 앞에서 끊임없이 검증받아야 합니다. 검증을 거부하는 전통은 더 이상 신앙의 유산이 아니라 신앙을 가로막는 장벽이 됩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중요한 원리인 “오직 성경”의 정신입니다. 여기서 “오직 성경”은 흔히 오해되곤 합니다. 마치 교회, 설교, 신조, 신학이 모두 불필요하다는 뜻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츠빙글리의 취지는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교회도 설교도 전통도 필요합니다. 다만 그것들은 “최종 권위”가 아니라 종속적 권위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와 전통은 성경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비추는 빛 아래서 제 기능을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이란 이런 뜻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의 승인으로 권위를 얻지 않는다. 교회는 성경에 의해 생기고 성경에 의해 개혁된다. 전통은 성경을 돕는 한에서만 유익하며, 성경 위에 설 때 우상이 된다. 이렇게 보면, “오직 성경”은 단지 학문적 원칙이나 종교개혁 슬로건이 아니라, 참종교의 구조를 지탱하는 실질적 규범입니다.
결국 참종교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고백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다”는 순종으로 구체화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인간 권위가 말씀을 대신해 판단하고 명령한다면, 그것은 신뢰의 고백이 아니라 신뢰의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참종교는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종교적 권위 위에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원리 때문에 교회 역시 말씀 아래 있어야 하며, 결코 말씀 위에 설 수 없습니다.
4. 교회는 은혜의 주인이 아니라 복음의 증언자이다
츠빙글리 시대의 교회는 단지 신자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공동체를 넘어, 구원의 질서를 관리하고 성례를 집행하며 신앙인의 삶을 감독하는 강력한 권위를 행사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교회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처럼 여겨졌고,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은혜도 구원의 확신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츠빙글리는 결정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인가?” 물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하나님 자신인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교회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교회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츠빙글리는 교회를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신자들이 함께 예배하며, 믿음 안에서 서로를 세워 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중요하다고 해서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츠빙글리는 교회를 은혜를 만들어 내는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선포하고 증언하는 공동체로 이해했습니다. 교회는 복음의 주인이 아니라 복음의 전달자이며, 구원의 원천이 아니라 구원을 선포하는 증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사람들을 자신에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자신을 드러낼수록 참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드러낼수록 참된 교회가 됩니다.
이 관점에서 츠빙글리의 교회 이해는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 은혜를 “얻는다”고 생각했지만, 츠빙글리는 은혜의 근원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강조합니다. 교회는 은혜를 생산하거나 저장하거나 통제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가리키고 증언하는 곳입니다. 요약하면 츠빙글리의 교회 이해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은혜의 주인이 아니라 복음의 증언자입니다.”
이 문장은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의 참된 권위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밝힙니다. 교회의 권위는 교회 자체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증언하는 데서 나옵니다. 교회가 말씀에 순종하는 한 권위를 가지지만, 말씀 위에 서려 하는 순간 그 권위는 정당성을 잃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사람들의 양심을 대신하는 기관이 아니라,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우는 공동체이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대신 차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지입니다.
결국 츠빙글리에게 교회의 존재 이유는 분명합니다. 교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신뢰하게 만드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교회는 자신을 향하도록 만드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도록 만드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참종교 안에서 교회는 결코 하나님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말씀 아래 서서 복음을 증언하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가리키는 공동체로 존재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가리킬 때 교회는 참된 교회가 되지만, 교회가 하나님을 대신하려 할 때 거짓종교의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츠빙글리가 이해한 참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5. 정리: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츠빙글리는 참종교와 거짓종교의 차이를 단순히 ‘교회 안’과 ‘교회 밖’의 구분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결정적인 기준은 소속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람이 어디에 속해 있는가보다,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의 말씀에 자신을 두는가가 더 중요했습니다.
먼저, 참종교는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며,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궁극적인 의지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거짓종교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돈이든 권력이든, 종교적 전통이든, 심지어 교회 자체이든—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게 되는 순간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이 신뢰의 문제는 곧 권위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츠빙글리는 참종교와 거짓종교를 구분하는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았습니다. 참종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 권위로 인정합니다. 교회와 전통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은 말씀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말씀은 교회에 의해 정당성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판단하고 교회를 개혁하는 기준이 됩니다.
또한 츠빙글리는 교회의 위치를 분명히 세웁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언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은혜의 주인이 아니라 복음의 증언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은 사람들을 자기 자신에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도하는 데 있습니다. 교회가 자신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드러낼 때 참된 교회가 됩니다.
결국 츠빙글리가 말하는 참종교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며, 교회를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거짓종교는 우상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반대로 참종교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츠빙글리의 『참종교와 거짓종교』 전체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할 때, 말씀은 다시 최종 권위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할 때, 교회는 다시 복음의 증언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할 때, 신앙은 종교적 습관이나 형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이 됩니다. 참종교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츠빙글리가 『참종교와 거짓종교』를 통해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