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강: 라 로셸 신앙고백에 나타난 위그노 신학사상
1. 들어가는 말: 믿음을 고백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 여러분에게 “당신은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마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한다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며, 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을 믿는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은 단순히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느낌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처음부터 고백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서도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마음의 일이지만 동시에 입으로 고백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는 결국 우리가 무엇을 고백하는가를 통해 드러납니다.
그러나 믿음을 고백하는 일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한국사회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에, 우리가 교회에서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한다고 해서 직장을 잃거나 감옥에 갇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슬람 문화권에서 오늘날에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순간 삶의 터전을 잃거나 재산을 몰수당하고, 감옥에 갇히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말할 수 있을까요?
16세기 프랑스의 개신교도들, 곧 위그노(Huguenots)가 바로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 때문에 끊임없는 탄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감추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함께 모여 자신들이 무엇을 믿는지를 정리하고, 그것을 공동의 언어로 고백했습니다. 라 로셸 신앙고백서(Confession de La Rochelle)는 바로 그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탄생한 문서입니다. 따라서 이 문서를 읽으면서 단순히 “위그노는 무엇을 믿었는가?”라고 질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박해받는 위그노 공동체에게 이러한 믿음의 고백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이 질문을 가지고 오늘 라 로셸 신앙고백서를 살펴보겠습니다.
2. 라 로셸 신앙고백의 역사적 배경
16세기 중반 프랑스에도 종교개혁의 영향이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제네바의 장 칼뱅과 프랑스 개혁자들의 영향을 받아 여러 지역에 개혁교회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이들은 성경 중심의 예배와 설교, 개혁교회 방식의 성례와 교회 질서를 세워갔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개혁교회는 독일의 루터파 교회와 달리 국가의 정치적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평화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일부 루터파 지역에서는 루터파 신앙이 제한적으로 인정되었지만, 프랑스의 위그노는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신앙공동체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 개혁교회는 “국가가 우리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교회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질문에 직면했습니다. 이 질문은 라 로셸 신앙고백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입니다. 1559년 5월, 프랑스 개혁교회의 대표자들은 파리에서 제1차 전국총회를 열었습니다. 이 총회는 흩어져 있던 개혁교회들이 공동의 신앙과 교회 질서를 가진 하나의 공동체로 자신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총회에서 40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신앙고백서가 채택되었습니다. 오늘날 라 로셸 신앙고백서라고 불리는 이 문서는 처음부터 라 로셸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 1559년 파리 총회에서 채택된 문서였고 처음에는 프랑스 신앙고백서 또는 갈리칸 신앙고백서라고 불렸습니다. 그 형성에는 칼뱅과 제네바 개혁신학의 영향이 컸으며, 제네바에서 보내온 초안을 프랑스 개혁교회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정리하여 공동 신앙고백으로 채택했습니다. 따라서 이 문서는 칼뱅 개인의 신학 요약이라기보다, 프랑스 개혁교회들이 제네바의 개혁신학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공동 신앙으로 고백한 문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프랑스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1562년부터 가톨릭과 위그노 사이의 종교전쟁이 본격화되었고, 전쟁과 박해, 정치적 갈등 속에서 많은 사람이 신앙 때문에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지나 1571년 4월, 위그노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라 로셸에서 제7차 전국총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1559년의 신앙고백이 다시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후 이 문서는 라 로셸 신앙고백서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라 로셸 신앙고백서를 이해할 때는 1559년과 1571년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1559년의 고백이 “우리는 이렇게 믿습니다”라는 선언이었다면, 1571년의 확인은 박해와 전쟁을 통과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믿습니다”라고 고백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라 로셸 신앙고백서는 단순한 교리문서를 넘어, 역사를 통과한 프랑스 개혁교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라 로셸 신앙고백서의 구조
라 로셸 신앙고백서는 모두 40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크게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1) 1-8조: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에 관하여. 유일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계시, 성경의 정경과 권위, 삼위일체, 창조와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합니다.
2) 9-11조: 인간과 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타락하였고 원죄 아래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3) 12-15조: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선택에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이라는 사실과 한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4) 16-24조: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과 그것의 적용. 그리스도의 죽으심, 칭의, 믿음, 성령의 역사, 성화, 율법, 그리고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자 되심을 고백합니다.
5) 25-28조: 교회의 본질. 교회의 필요성과 연합, 참된 교회의 정의와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입장을 밝힙니다.
6) 29-33조: 교회의 조직과 질서. 목사와 장로와 집사의 직분, 목회자의 동등성, 직분자의 선출, 교회의 규례와 권징을 설명합니다.
7) 34-38조: 성례. 성례의 의미를 설명하고 세례와 성찬이라는 두 성례를 고백합니다.
8) 39-40조: 세속 권력. 국가와 통치자의 권한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리스도인이 세속권력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구조를 천천히 살펴보면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라 로셸 신앙고백서는 개인의 구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시작하여 인간의 죄를 이야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고, 교회가 직분과 질서를 세우며, 말씀과 성례를 통해 신앙을 유지하고, 마침내 세상과 국가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흐름입니다: 하나님 → 인간의 죄 → 그리스도 → 구원 → 교회 → 교회의 질서 → 성례 → 세상.
복음은 한 사람을 구원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교회로 모으며, 그렇게 형성된 교회는 다시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라 로셸 신앙고백서를 단순히 개혁교회의 교리 목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문서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한 사람에게서 시작하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공동체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데까지 확장되는 신앙의 구조가 담겨 있습니다.
⸻4. 라 로셸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위그노 신학
라 로셸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위그노 신학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조입니다. 라 로셸 신앙고백서는 성경을 신앙의 확실한 규범으로 고백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게 하는 근거는 단순히 교회의 권위가 아니라 성령의 증언과 내적 조명입니다. 또한 성경의 권위는 인간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 옵니다. 그러므로 전통, 관습, 다수의 의견, 인간의 지혜, 칙령, 공의회, 환상이나 기적도 성경에 맞설 수 없습니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검증되고 개혁되어야 합니다. 이는 위그노의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고백이었습니다. 교회가 그들을 이단이라 하고, 왕이 그들의 예배를 불법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신앙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권위는 교황도 왕도 공의회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섭리 아래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라 로셸 신앙고백서에는 선택에 대한 고백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함께 이해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뒤 내버려두신 분이 아니라, 모든 일을 자신의 뜻에 따라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같은 관심으로 자기 백성을 돌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 없이는 머리털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박해받던 위그노에게 이 말은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위로의 언어였습니다. 그들은 군대, 왕, 교황,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삶과 구원을 붙들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위그노의 예정 신앙은 차가운 운명론이 아니라,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삶과 구원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신앙이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원 신앙입니다. 라 로셸 신앙고백서는 인간이 자신의 덕이나 공로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만을 의지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특히 칭의는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라 양심의 문제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선함이나 공로에서 구원의 근거를 찾으려 하면 끊임없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고백서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그리스도이며, 구원의 근거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과 순종입니다. 그 결과 신자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고, 믿음으로 약속을 붙들며, 성령의 역사로 거룩한 삶을 살아갑니다. 곧 선한 일을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선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넷째, 박해 속에서도 교회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신앙입니다. 라 로셸 신앙고백서는 개인의 구원만 말하지 않고, 교회의 본질과 질서, 성례, 세속권력에 대한 태도까지 중요하게 다룹니다. 박해받는 상황에서는 개인적으로 믿는 것이 더 안전해 보일 수 있었지만, 신앙고백서는 누구도 자신을 고립시키거나 홀로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위그노에게 신앙은 혼자 살아남는 일이 아니라 함께 교회로 살아가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모든 목회자는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에서 동일한 권위와 동등한 권한을 가진다고 고백함으로써, 어떤 교회도 다른 교회를 지배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 공동체적 신앙은 성례 이해에서도 드러납니다. 성례는 믿음이 강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연약한 믿음을 돕고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수단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을 들려주고, 성례는 그 약속을 보여줍니다. 박해받는 공동체에게 말씀과 성례는 믿음을 지속하게 하는 은혜의 방편이었습니다. 또한 위그노는 국가권력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이므로 그리스도인은 법을 지키고 통치자의 권위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복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권이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위그노 신학은 단순한 저항도, 무조건적인 복종도 아니라 모든 인간 권력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상대화하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라 로셸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위그노 신학의 핵심
위그노 신학의 핵심은 세 가지 질문으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우리는 누구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가?” 위그노의 대답은 하나님입니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강조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도, 선택에 대한 고백도 결국 여기에 연결됩니다. 교황도 최종적인 권위가 아니며 왕도 최종적인 권위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과 구원을 궁극적으로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 질문은,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위그노의 대답은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공로나 선행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순종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 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평안은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
세 번째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혼자가 아니라 교회로 함께 살아갑니다. 이것이 위그노 신앙의 매우 중요한 특징입니다. 박해받는 상황에서도 교회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세례와 성찬을 행하며, 목사와 장로와 집사를 세우고, 서로를 돌보며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형성된 공동체는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질서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모든 인간 권력 위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따라서 라 로셸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위그노 신학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라 로셸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통치 아래에서, 박해 속에서도 교회로 함께 살아가려는 위그노 공동체의 신학입니다. 이렇게 보면 예정론도, 칭의론도, 교회론도, 성례론도 서로 떨어져 있는 교리가 아닙니다. 말씀을 붙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섭리를 믿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붙드는 이유는 사람이 스스로에게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개인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백성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성례에 참여하는 이유는 개인의 믿음이 언제나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력을 존중하면서도 절대화하지 않는 이유는 모든 권력 위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모든 교리가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6. 오늘날 교회에 주는 의미
오늘날 우리는 16세기 위그노와 같은 형태의 박해를 경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신앙을 고백한다는 이유로 당장 재산을 빼앗기거나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날 신앙은 점점 개인적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내가 믿고 천국가면 되는 것 아닌가? 꼭 교회 공동체와 함께해야 하는가? 내 마음속에 믿음이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이른바 Spiritual But Not Religious로 표현되는 탈종교화 시대에 라 로셸 신앙고백서는 우리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믿습니까?” 이것이 첫 번째 질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믿음을 누구와 함께 고백하고 있습니까?” 위그노는 자신들의 신앙을 개인적인 확신으로만 간직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고백했습니다. 공동의 언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백을 통해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더 해야 합니다. “그 고백을 어떻게 함께 살아내고 있습니까?”
21강: 라 로셸 신앙고백에 나타난 위그노 신학사상
1. 들어가는 말: 믿음을 고백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 여러분에게 “당신은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마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한다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며, 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을 믿는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은 단순히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느낌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처음부터 고백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서도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마음의 일이지만 동시에 입으로 고백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는 결국 우리가 무엇을 고백하는가를 통해 드러납니다.
그러나 믿음을 고백하는 일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한국사회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에, 우리가 교회에서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한다고 해서 직장을 잃거나 감옥에 갇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슬람 문화권에서 오늘날에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순간 삶의 터전을 잃거나 재산을 몰수당하고, 감옥에 갇히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말할 수 있을까요?
16세기 프랑스의 개신교도들, 곧 위그노(Huguenots)가 바로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 때문에 끊임없는 탄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감추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함께 모여 자신들이 무엇을 믿는지를 정리하고, 그것을 공동의 언어로 고백했습니다. 라 로셸 신앙고백서(Confession de La Rochelle)는 바로 그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탄생한 문서입니다. 따라서 이 문서를 읽으면서 단순히 “위그노는 무엇을 믿었는가?”라고 질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박해받는 위그노 공동체에게 이러한 믿음의 고백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이 질문을 가지고 오늘 라 로셸 신앙고백서를 살펴보겠습니다.
2. 라 로셸 신앙고백의 역사적 배경
16세기 중반 프랑스에도 종교개혁의 영향이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제네바의 장 칼뱅과 프랑스 개혁자들의 영향을 받아 여러 지역에 개혁교회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이들은 성경 중심의 예배와 설교, 개혁교회 방식의 성례와 교회 질서를 세워갔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개혁교회는 독일의 루터파 교회와 달리 국가의 정치적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평화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일부 루터파 지역에서는 루터파 신앙이 제한적으로 인정되었지만, 프랑스의 위그노는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신앙공동체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 개혁교회는 “국가가 우리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교회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질문에 직면했습니다. 이 질문은 라 로셸 신앙고백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입니다. 1559년 5월, 프랑스 개혁교회의 대표자들은 파리에서 제1차 전국총회를 열었습니다. 이 총회는 흩어져 있던 개혁교회들이 공동의 신앙과 교회 질서를 가진 하나의 공동체로 자신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총회에서 40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신앙고백서가 채택되었습니다. 오늘날 라 로셸 신앙고백서라고 불리는 이 문서는 처음부터 라 로셸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 1559년 파리 총회에서 채택된 문서였고 처음에는 프랑스 신앙고백서 또는 갈리칸 신앙고백서라고 불렸습니다. 그 형성에는 칼뱅과 제네바 개혁신학의 영향이 컸으며, 제네바에서 보내온 초안을 프랑스 개혁교회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정리하여 공동 신앙고백으로 채택했습니다. 따라서 이 문서는 칼뱅 개인의 신학 요약이라기보다, 프랑스 개혁교회들이 제네바의 개혁신학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공동 신앙으로 고백한 문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프랑스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1562년부터 가톨릭과 위그노 사이의 종교전쟁이 본격화되었고, 전쟁과 박해, 정치적 갈등 속에서 많은 사람이 신앙 때문에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지나 1571년 4월, 위그노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라 로셸에서 제7차 전국총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1559년의 신앙고백이 다시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후 이 문서는 라 로셸 신앙고백서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라 로셸 신앙고백서를 이해할 때는 1559년과 1571년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1559년의 고백이 “우리는 이렇게 믿습니다”라는 선언이었다면, 1571년의 확인은 박해와 전쟁을 통과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믿습니다”라고 고백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라 로셸 신앙고백서는 단순한 교리문서를 넘어, 역사를 통과한 프랑스 개혁교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라 로셸 신앙고백서의 구조
라 로셸 신앙고백서는 모두 40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크게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1) 1-8조: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에 관하여. 유일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계시, 성경의 정경과 권위, 삼위일체, 창조와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합니다.
2) 9-11조: 인간과 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타락하였고 원죄 아래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3) 12-15조: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선택에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이라는 사실과 한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4) 16-24조: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과 그것의 적용. 그리스도의 죽으심, 칭의, 믿음, 성령의 역사, 성화, 율법, 그리고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자 되심을 고백합니다.
5) 25-28조: 교회의 본질. 교회의 필요성과 연합, 참된 교회의 정의와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입장을 밝힙니다.
6) 29-33조: 교회의 조직과 질서. 목사와 장로와 집사의 직분, 목회자의 동등성, 직분자의 선출, 교회의 규례와 권징을 설명합니다.
7) 34-38조: 성례. 성례의 의미를 설명하고 세례와 성찬이라는 두 성례를 고백합니다.
8) 39-40조: 세속 권력. 국가와 통치자의 권한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리스도인이 세속권력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구조를 천천히 살펴보면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라 로셸 신앙고백서는 개인의 구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시작하여 인간의 죄를 이야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고, 교회가 직분과 질서를 세우며, 말씀과 성례를 통해 신앙을 유지하고, 마침내 세상과 국가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흐름입니다: 하나님 → 인간의 죄 → 그리스도 → 구원 → 교회 → 교회의 질서 → 성례 → 세상.
복음은 한 사람을 구원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교회로 모으며, 그렇게 형성된 교회는 다시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라 로셸 신앙고백서를 단순히 개혁교회의 교리 목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문서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한 사람에게서 시작하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공동체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데까지 확장되는 신앙의 구조가 담겨 있습니다.
⸻4. 라 로셸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위그노 신학
라 로셸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위그노 신학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조입니다. 라 로셸 신앙고백서는 성경을 신앙의 확실한 규범으로 고백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게 하는 근거는 단순히 교회의 권위가 아니라 성령의 증언과 내적 조명입니다. 또한 성경의 권위는 인간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 옵니다. 그러므로 전통, 관습, 다수의 의견, 인간의 지혜, 칙령, 공의회, 환상이나 기적도 성경에 맞설 수 없습니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검증되고 개혁되어야 합니다. 이는 위그노의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고백이었습니다. 교회가 그들을 이단이라 하고, 왕이 그들의 예배를 불법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신앙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권위는 교황도 왕도 공의회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섭리 아래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라 로셸 신앙고백서에는 선택에 대한 고백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함께 이해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뒤 내버려두신 분이 아니라, 모든 일을 자신의 뜻에 따라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같은 관심으로 자기 백성을 돌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 없이는 머리털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박해받던 위그노에게 이 말은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위로의 언어였습니다. 그들은 군대, 왕, 교황,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삶과 구원을 붙들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위그노의 예정 신앙은 차가운 운명론이 아니라,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삶과 구원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신앙이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원 신앙입니다. 라 로셸 신앙고백서는 인간이 자신의 덕이나 공로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만을 의지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특히 칭의는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라 양심의 문제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선함이나 공로에서 구원의 근거를 찾으려 하면 끊임없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고백서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그리스도이며, 구원의 근거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과 순종입니다. 그 결과 신자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고, 믿음으로 약속을 붙들며, 성령의 역사로 거룩한 삶을 살아갑니다. 곧 선한 일을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선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넷째, 박해 속에서도 교회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신앙입니다. 라 로셸 신앙고백서는 개인의 구원만 말하지 않고, 교회의 본질과 질서, 성례, 세속권력에 대한 태도까지 중요하게 다룹니다. 박해받는 상황에서는 개인적으로 믿는 것이 더 안전해 보일 수 있었지만, 신앙고백서는 누구도 자신을 고립시키거나 홀로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위그노에게 신앙은 혼자 살아남는 일이 아니라 함께 교회로 살아가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모든 목회자는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에서 동일한 권위와 동등한 권한을 가진다고 고백함으로써, 어떤 교회도 다른 교회를 지배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 공동체적 신앙은 성례 이해에서도 드러납니다. 성례는 믿음이 강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연약한 믿음을 돕고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수단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을 들려주고, 성례는 그 약속을 보여줍니다. 박해받는 공동체에게 말씀과 성례는 믿음을 지속하게 하는 은혜의 방편이었습니다. 또한 위그노는 국가권력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이므로 그리스도인은 법을 지키고 통치자의 권위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복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권이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위그노 신학은 단순한 저항도, 무조건적인 복종도 아니라 모든 인간 권력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상대화하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라 로셸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위그노 신학의 핵심
위그노 신학의 핵심은 세 가지 질문으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우리는 누구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가?” 위그노의 대답은 하나님입니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강조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도, 선택에 대한 고백도 결국 여기에 연결됩니다. 교황도 최종적인 권위가 아니며 왕도 최종적인 권위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과 구원을 궁극적으로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 질문은,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위그노의 대답은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공로나 선행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순종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 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평안은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
세 번째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혼자가 아니라 교회로 함께 살아갑니다. 이것이 위그노 신앙의 매우 중요한 특징입니다. 박해받는 상황에서도 교회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세례와 성찬을 행하며, 목사와 장로와 집사를 세우고, 서로를 돌보며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형성된 공동체는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질서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모든 인간 권력 위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따라서 라 로셸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위그노 신학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라 로셸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통치 아래에서, 박해 속에서도 교회로 함께 살아가려는 위그노 공동체의 신학입니다. 이렇게 보면 예정론도, 칭의론도, 교회론도, 성례론도 서로 떨어져 있는 교리가 아닙니다. 말씀을 붙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섭리를 믿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붙드는 이유는 사람이 스스로에게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개인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백성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성례에 참여하는 이유는 개인의 믿음이 언제나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력을 존중하면서도 절대화하지 않는 이유는 모든 권력 위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모든 교리가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6. 오늘날 교회에 주는 의미
오늘날 우리는 16세기 위그노와 같은 형태의 박해를 경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신앙을 고백한다는 이유로 당장 재산을 빼앗기거나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날 신앙은 점점 개인적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내가 믿고 천국가면 되는 것 아닌가? 꼭 교회 공동체와 함께해야 하는가? 내 마음속에 믿음이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이른바 Spiritual But Not Religious로 표현되는 탈종교화 시대에 라 로셸 신앙고백서는 우리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믿습니까?” 이것이 첫 번째 질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믿음을 누구와 함께 고백하고 있습니까?” 위그노는 자신들의 신앙을 개인적인 확신으로만 간직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고백했습니다. 공동의 언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백을 통해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더 해야 합니다. “그 고백을 어떻게 함께 살아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