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강: 기도 (2) (118문)
진심 어린 기도의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기도를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기도를 관계의 언어, 곧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가르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욕심에 이끌려 하나님께 떼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님께 이끌려 우리의 상한 심령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 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기도의 출발점이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기도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노력이나 정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움직인다는 오만함을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자세를 뜻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전제 조건은 침묵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침묵이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침묵이란 나의 생각과 주장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태로를 말합니다. 우리가 말을 멈추고 침묵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간구하십니다. 침묵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어드리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욕심이 아닌 성령께 이끌려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문 – 주기도문 – 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훈련이자, 믿음의 자세를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118문: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무엇을 구하라고 우리에게 명하셨습니까?
답: 영혼과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인데, 그리스도 우리 주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에 그것들이 다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위해 구해야 할 모든 내용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가르치신 기도, 곧 주기도문에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전인적인 필요를 포괄하며, 영적 갈망과 일상적인 필요, 내면의 회복과 이웃과의 화해까지 모두 아우릅니다. 주기도문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세우는 동시에, 이웃들과의 수평적 관계를 다루며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도록 이끕니다. 또한, 이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숙과 순종의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 115문답에서 제 118문답 까지는 본격적으로 주기도문을 다루기 전, 기도의 본질과 자세를 먼저 설명합니다.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 기록된 기도의 내용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라는 뜻으로 ‘주기도문’이라 부릅니다. 이 기도는 찬양-간구-순종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후 29강부터 한 한목씩 차근차근 살펴볼 예정입니다.
정리 및 개인적 나눔
기도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정의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지만 대화란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도 자신의 말만 계속하는 사람과는 진정한 대화가 어렵듯, 하나님과의 기도에서도 우리가 자신의 생각과 바람만을 쏟아내고 하나님의 음성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기도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하라"는 말에 힘입어 열정적으로 기도하지만, 그 열정이 지나쳐 하나님께 떼쓰는 태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말씀하신 과부의 강청 비유는,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간절함이지, 욕심을 관철시키려는 고집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고집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가 이루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간절히 구하라는 초대입니다.
고대 교부 오리게네스는 기도를 "하나님과의 키스"라 표현했습니다.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기도 안에서 경험하는 친밀함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알고, 느끼며, 그분과의 관계를 살아 있게 하는 영적 호흡입니다.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기도가 자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성장은 기도의 '길이'가 아니라 그 '깊이'에서 드러납니다. 기도의 깊이는 언변의 능숙함이 아니라, 우리의 방향과 태도, 그리고 품은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와 가족을 위한 기도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이웃, 먼 나라와 민족,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로까지 우리의 기도가 자라납니다.
저에게도 기도의 지평이 넓어진 계기가 있습니다. 2014년 영국에서 열린 한 학회에 참석했을 때, 런던 웨스트민스터 애비의 부속 예배당에서 정오 예배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 예배 중 기도 시간에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화해를 위해 기도합니다"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외국의 예배당에서 내 조국을 위해 기도하는 음성을 듣는 순간, 큰 감동과 동시에 반성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동안 너무나도 좁은 기도의 울타리 안에서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시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는 단순한 영혼의 호흡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장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세상과 우리를 연결하고 계시는지를, 말이 아니라 삶으로 배우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랑을 나누는 자리이며,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경계 없는 사랑의 언어입니다.
유학 시절, 한 교회의 집사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에 저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제 사정을 다 아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다 하실 테니까요." 이 말은 한편으론 깊은 신뢰처럼 들릴 수 있지만, 기도를 하나님을 움직이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오히려 기도의 본질을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램프의 요정 Genie 처럼 여기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의 램프 자체를 꺼버리는 것이 신앙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며, 우리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순간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아신다"는 이유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침묵 속에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배우자가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해 준다고 해서, 대화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마음을 말로 표현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때로는 말 없이 곁에 머무는 것에서 피어납니다. 기도는 바로 그러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자체입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기도를 오해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기도의 목표라면, 기도는 그저 도구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기도는 관계이며, 소통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배워가는 자리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은 점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기도는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빚어가시는 은혜의 도구입니다. 우리가 무릎 꿇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십니다.
53강: 기도 (2) (118문)
진심 어린 기도의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기도를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기도를 관계의 언어, 곧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가르칩니다. 기도는 우리의 욕심에 이끌려 하나님께 떼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님께 이끌려 우리의 상한 심령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 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기도의 출발점이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기도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노력이나 정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움직인다는 오만함을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자세를 뜻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전제 조건은 침묵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침묵이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침묵이란 나의 생각과 주장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태로를 말합니다. 우리가 말을 멈추고 침묵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간구하십니다. 침묵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어드리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욕심이 아닌 성령께 이끌려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문 – 주기도문 – 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훈련이자, 믿음의 자세를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118문: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무엇을 구하라고 우리에게 명하셨습니까?
답: 영혼과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인데, 그리스도 우리 주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에 그것들이 다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위해 구해야 할 모든 내용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가르치신 기도, 곧 주기도문에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전인적인 필요를 포괄하며, 영적 갈망과 일상적인 필요, 내면의 회복과 이웃과의 화해까지 모두 아우릅니다. 주기도문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세우는 동시에, 이웃들과의 수평적 관계를 다루며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도록 이끕니다. 또한, 이 기도는 우리의 영적 성숙과 순종의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 115문답에서 제 118문답 까지는 본격적으로 주기도문을 다루기 전, 기도의 본질과 자세를 먼저 설명합니다.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 기록된 기도의 내용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라는 뜻으로 ‘주기도문’이라 부릅니다. 이 기도는 찬양-간구-순종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후 29강부터 한 한목씩 차근차근 살펴볼 예정입니다.
정리 및 개인적 나눔
기도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정의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지만 대화란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도 자신의 말만 계속하는 사람과는 진정한 대화가 어렵듯, 하나님과의 기도에서도 우리가 자신의 생각과 바람만을 쏟아내고 하나님의 음성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기도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하라"는 말에 힘입어 열정적으로 기도하지만, 그 열정이 지나쳐 하나님께 떼쓰는 태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말씀하신 과부의 강청 비유는,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간절함이지, 욕심을 관철시키려는 고집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고집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가 이루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간절히 구하라는 초대입니다.
고대 교부 오리게네스는 기도를 "하나님과의 키스"라 표현했습니다.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기도 안에서 경험하는 친밀함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알고, 느끼며, 그분과의 관계를 살아 있게 하는 영적 호흡입니다.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기도가 자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성장은 기도의 '길이'가 아니라 그 '깊이'에서 드러납니다. 기도의 깊이는 언변의 능숙함이 아니라, 우리의 방향과 태도, 그리고 품은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와 가족을 위한 기도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이웃, 먼 나라와 민족,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로까지 우리의 기도가 자라납니다.
저에게도 기도의 지평이 넓어진 계기가 있습니다. 2014년 영국에서 열린 한 학회에 참석했을 때, 런던 웨스트민스터 애비의 부속 예배당에서 정오 예배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 예배 중 기도 시간에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화해를 위해 기도합니다"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외국의 예배당에서 내 조국을 위해 기도하는 음성을 듣는 순간, 큰 감동과 동시에 반성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동안 너무나도 좁은 기도의 울타리 안에서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시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는 단순한 영혼의 호흡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장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세상과 우리를 연결하고 계시는지를, 말이 아니라 삶으로 배우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랑을 나누는 자리이며,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경계 없는 사랑의 언어입니다.
유학 시절, 한 교회의 집사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에 저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제 사정을 다 아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다 하실 테니까요." 이 말은 한편으론 깊은 신뢰처럼 들릴 수 있지만, 기도를 하나님을 움직이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오히려 기도의 본질을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램프의 요정 Genie 처럼 여기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의 램프 자체를 꺼버리는 것이 신앙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며, 우리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순간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아신다"는 이유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침묵 속에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배우자가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해 준다고 해서, 대화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마음을 말로 표현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때로는 말 없이 곁에 머무는 것에서 피어납니다. 기도는 바로 그러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자체입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기도를 오해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기도의 목표라면, 기도는 그저 도구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기도는 관계이며, 소통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배워가는 자리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은 점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기도는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빚어가시는 은혜의 도구입니다. 우리가 무릎 꿇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