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하이델베르크 신조 58강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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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강: 주기도문 (5)

 

 

129문: “아멘”이라는 이 짧은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답: “아멘”은 참되고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내 마음보다도 더 확실하게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들으십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אָמַן(aman, 아만)'에서 유래한 말로, “확고하다”, “견고하게 세우다”는 뜻을 지닙니다. 이 기본 의미는 점차 확장되어 “튼튼하게 하다”, “믿을 수 있다”는 뜻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즉 신뢰할 수 있는 대상에 기대고 붙잡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에무나(אֱמוּנָה, 'emunah)”로, “믿음” 혹은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5장 6절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אמין)”라고 번역된 구절의 히브리어 동사도 바로 이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단지 ‘생각의 동의’ 또는 교리에 대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신실하신 분께 자신을 기대어 맡기는 행위입니다. 기도 끝에 우리가 “아멘”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믿을 수 있는 분이시고, 나는 그분을 신뢰하며 내 기도를 맡깁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기도 끝에 우리가 “아멘”이라고 말할 때, 그거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믿을 수 있는 분이시고, 나는 그 분을 신뢰하며 내 기도를 맡깁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많은 이들이 “아멘”을 기도의 마침표로 이해하지만, 더 적절한 비유는 ‘서명’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게 올려드리는 편지라면, “아멘”은 그 편지 하단에 나의 이름을 적는 것입니다. 이 서명은 단지 기도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에 동의하며, 그 내용을 믿고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아멘”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선언이며, 우리의 존재 전체가 그 기도에 동참했다는 영혼의 서명입니다.

  “아멘”은 기도의 끝이 아니라 삶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아멘”을 말할 때, 그것은 곧 “기도한 대로 살아가겠습니다”는 신앙의 결단이 됩니다. 그러므로 “아멘”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 혹은 새로운 이야기를 여는 큰 따옴표입니다. 기도는 말씀에 응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위이고, “아멘”은 그 기도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실천의 시작입니다. 이 짧은 단어 하나는 신앙생활의 본질인 하나님과의 신뢰에 기초한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기도는 일방적인 청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상호적 관계 안에서 나누는 사랑의 대화이며, “아멘”은 그 관게를 맺는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보다 더 깊이 우리의 마음을 아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라는 믿음과 신뢰 위에서 “아멘”이 비로소 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전체 여정이 아멘으로 끝나는 의미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답은 죄 – 구원 – 감사라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문답인 제129문답이 “아멘”으로 끝나는 것은 단순한 결말이 아니라, 이 모든 구원의 여정에 대한 신앙의 응답입니다. 이 한 마디 “아멘” 속에는 첫째로 우리의 죄에 대한 회개,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믿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사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정리: 기도와 영성 – 관계 안에서의 사랑

 

  기도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영성의 실천입니다. 영성신학자 브래들리 홀트는 그의 『기독교 영성사』의 부제를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 (Thirty for God)’ 이라고 붙이고 영적 목마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어떤 영성이든지 가장 기초적인 전제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비물질적인 자아 역시 목마르다는 것이다. ... 우리의 더 깊은 갈증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은 사랑을 향한 갈망으로 표현된다. 우리는 사랑 받기를 갈망하고, 사랑하기를 갈망하며, 사랑으로 특징 지워진 세상에 살기를 갈망한다.

 

  이 생수는 곧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받기를 원하고, 사랑하기를 갈망하며,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꿈꿉니다. 홀트에 의하면 영성은 관계성입니다. 관계를 강조하는 ‘통전적 영성(영성의 다양한 측면들을 아우르고 조화시키고 통합하는 영성)에 관해서, 구체적으로는 진정한 관계에 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영성의 본질을 잘 드러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 세가지 관계 -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 – 는 모두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기도는 그 사랑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방식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을 넘어, 숨을 쉬고, 쉼을 얻고, 힘을 받는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기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영성이 관계성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영성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가 ‘관계성이 전제된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기도입니다.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의 마음도 기도로 표현됩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에 숨을 불어넣고 마음에 힘을 얻고 영혼에 쉼을 얻는 것 또한 기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 기도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도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고, 또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5세기경에 활동한 고대 교부 “위-디오니시우스”는 영성의 단계를 정화의 단계 – 조명의 단계 – 일치의 단계로 구분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일치의 단계를 “완전함”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과의 연합을 강조했습니다. 그 완전함은 먼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기도의 순간 안에서 지금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멘”은 그 순간을 열고, 기도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됩니다. 기도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 기도하게 되고, 그를 위해 기도하면 사랑하게 됩니다. 기도는 감정의 전환이며, “한”을 “정”으로, “미움”을 “용서”로 바꾸는 통로입니다. 아멘은 믿음의 선언이자, 사랑의 시작이며, 삶으로 드리는 예배의 서문입니다.

  기도는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걸음을 걸을 때도, 식사를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도 하나님과의 대화는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속적인 기도의 삶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모든 행동은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루터는 “신실한 농부가 밭을 갈고 신실한 여인이 빨래를 하는 것은 수도사의 기도보다 하나님께 더 가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모든 일상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이루어질 때, 그것이 바로 기도의 삶이 된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