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강: 착한 행실- 은혜에 대한 응답 (1) (86문-88문)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서, 착한 행실을 강조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한글성경 개역개정역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성경에서 '행위'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신약성경에만 43번이 나옵니다. 가장 많이 언급된 3권의 책은 요한계시록(14번), 로마서(10번), 갈라디아서(4번)입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합친 14번과 동일한 횟수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데, 갈라디아서에는 4번 모두 '율법(의) 행위'로 표현되었습니다. 로마서에는 10번 중 3번은 '율법의 행위'로 표현되고, 4번은 믿음 및 은혜와 대립되는 의미로 사용되며, 나머지 3번은 각각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말과 행위', '의로운 행위'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바울서신에서 '행위'의 연관 검색어는 '율법'이고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띱니다. 그나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의로운 행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의미하기에 인간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행위'하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고, 복음과 상반된 것으로 여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분위기는 바울서신과 다르게 나타납니다. 14번 중 긍정적인 의미로 6번, 부정적인 의미로 6번, 중립적인 의미로 1번 사용되었습니다.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6번의 예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계2:2),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5),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2:19),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2:23),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3:8),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계18:6).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은 20장 13절 말씀입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요한계시록에서는 행위가 의로운 행위와 악한 행위로 나뉘면서 각각 동일한 수로 사용되었고, 의로운 행위든 악한 행위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행위를 율법과 연결시키면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행위'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바울서신과 요한계시록이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믿지 않는 사람의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고, 요한계시록은 믿는 사람들의 심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행위가 아닌 믿음이 필요하지만, 구원받은 이후에는 의로운 행위와 믿음의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이 신약성경 전체의 맥락입니다. 이러한 맥락을 무시하고 '행위'하면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86문에서 91문은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86문: 우리의 공로가 조금도 없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우리의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데, 우리는 왜 또한 선행을 해야 합니까?
답: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그의 형상을 닮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삶으로써 하나님의 은덕에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찬양받으시기 위함이며, 또한 우리 각 사람이 그 열매로써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얻고 경건한 삶으로써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선행이나 공로로 구원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선행이 필요 없다고 해서, 구원받은 이후에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데 선행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구원받은 이후에는 은혜가 필요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가치관과 풍조를 거슬러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더 큰 은혜가 필요합니다. 구원을 받아 새사람이 된 자신과 그리스도를 동일시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은혜에 응답하고, 그리스도를 본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바로 선행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87문: 감사치도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삶을 계속 살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답: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음란한 자, 우상 숭배자, 간음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욕하는 자, 강도질하는 자나 그와 같은 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제 87문답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충격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는 87문이 불신자들이 아닌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질문으로,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감사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삶을 계속 살아간다면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진술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문답은 감사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8가지 죄악으로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아 신분이 마귀의 자녀(요 8:44)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다 해도,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이 자동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이 바뀌는 계기는 바로 "진정한 회개"입니다.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 세계관과 사생관, 그리고 삶의 목적의 변화는 모두 진정한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88문: 사람의 진정한 회개는 무엇입니까?
답: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마음에 영접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신분 혹은 새 사람으로 거듭난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고 명명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이나 사고방식까지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막 믿기 시작한 사람은 영적인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신분은 변화되었지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자기중심적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 지니고 있던 나쁜 습관이 좋은 습관으로 바뀌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하나님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변화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40강: 착한 행실- 은혜에 대한 응답 (1) (86문-88문)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서, 착한 행실을 강조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한글성경 개역개정역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성경에서 '행위'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신약성경에만 43번이 나옵니다. 가장 많이 언급된 3권의 책은 요한계시록(14번), 로마서(10번), 갈라디아서(4번)입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합친 14번과 동일한 횟수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데, 갈라디아서에는 4번 모두 '율법(의) 행위'로 표현되었습니다. 로마서에는 10번 중 3번은 '율법의 행위'로 표현되고, 4번은 믿음 및 은혜와 대립되는 의미로 사용되며, 나머지 3번은 각각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말과 행위', '의로운 행위'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바울서신에서 '행위'의 연관 검색어는 '율법'이고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띱니다. 그나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의로운 행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의미하기에 인간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행위'하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고, 복음과 상반된 것으로 여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분위기는 바울서신과 다르게 나타납니다. 14번 중 긍정적인 의미로 6번, 부정적인 의미로 6번, 중립적인 의미로 1번 사용되었습니다.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6번의 예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계2:2),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5),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2:19),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2:23),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3:8),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계18:6).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은 20장 13절 말씀입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요한계시록에서는 행위가 의로운 행위와 악한 행위로 나뉘면서 각각 동일한 수로 사용되었고, 의로운 행위든 악한 행위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행위를 율법과 연결시키면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행위'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바울서신과 요한계시록이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믿지 않는 사람의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고, 요한계시록은 믿는 사람들의 심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행위가 아닌 믿음이 필요하지만, 구원받은 이후에는 의로운 행위와 믿음의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이 신약성경 전체의 맥락입니다. 이러한 맥락을 무시하고 '행위'하면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86문에서 91문은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86문: 우리의 공로가 조금도 없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우리의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데, 우리는 왜 또한 선행을 해야 합니까?
답: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그의 형상을 닮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삶으로써 하나님의 은덕에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찬양받으시기 위함이며, 또한 우리 각 사람이 그 열매로써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얻고 경건한 삶으로써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선행이나 공로로 구원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선행이 필요 없다고 해서, 구원받은 이후에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데 선행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구원받은 이후에는 은혜가 필요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가치관과 풍조를 거슬러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더 큰 은혜가 필요합니다. 구원을 받아 새사람이 된 자신과 그리스도를 동일시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은혜에 응답하고, 그리스도를 본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바로 선행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87문: 감사치도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삶을 계속 살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답: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음란한 자, 우상 숭배자, 간음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욕하는 자, 강도질하는 자나 그와 같은 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제 87문답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충격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는 87문이 불신자들이 아닌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질문으로,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감사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삶을 계속 살아간다면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진술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문답은 감사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8가지 죄악으로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아 신분이 마귀의 자녀(요 8:44)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다 해도,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이 자동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이 바뀌는 계기는 바로 "진정한 회개"입니다.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 세계관과 사생관, 그리고 삶의 목적의 변화는 모두 진정한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88문: 사람의 진정한 회개는 무엇입니까?
답: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마음에 영접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신분 혹은 새 사람으로 거듭난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고 명명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이나 사고방식까지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막 믿기 시작한 사람은 영적인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신분은 변화되었지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자기중심적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 지니고 있던 나쁜 습관이 좋은 습관으로 바뀌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하나님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변화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훈련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