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하이델베르크 신조 46강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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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강: 제3계명 (99문-102문)

 

99문: 제3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우리가 저주나 거짓 맹세, 또는 불필요한 서약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거나 잘못 사용하지 않는 것이며, 더 나아가 침묵하는 방관자가 되어 그러한 두려운 죄에 참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만 사용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고백하고 부르며 우리의 모든 말과 행실에서 그분이 영광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3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아니하리라.”라는 명령입니다. 세 번째 계명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서는 안되는지,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3계명에서 알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하나님의 이름들 가운데 대표적인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יהוה" (YHWH)로 표되며, 유대인들은 이를 감히 입에 담지 않고 “아도나이” (Adonai, 주님)라고 대체해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단순히 그 이름을 입에 담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고 높이라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하지 말야야 할 것 

1) 저주나, 거짓 맹세, 불필요한 서약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 

2) 침묵하는 방관자가 되지 말 것


해야할 것

 1)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낼 것


이라는 교훈을 줍니다.

 

100문: 맹세나 저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대로 그러한 죄를 막거나 금하지 못한 사람들에게까지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정도로 중대한 죄입니까?

답: 진실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크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죄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사형으로 벌하라 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하거나 저주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이나 악의 주체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이러한 예는 열왕기하 5장 20절에 기록된 엘리사의 종 게하시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엘리사의 지시로 나아만은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어 나병이 나았습니다. 나아만이 감사의 선물을 주려 했지만 엘리사는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게하시는 이 기회를 이용해 나아만에게 거짓말을 하고 선물을 받아냈습니다. 게하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했고, 결국 엘리사에게 발각되어 나아만의 나병이 옮겨지는 벌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할 때 얼마나 큰 심판이 따르는지를 보여줍니다.

 

101문: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건하게 맹세할 수는 있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경우, 혹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복을 위하여 신뢰와 진리를 보존하고 증진시키는 데 꼭 필요한 경우에는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맹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며 그렇기에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도 이것을 옳게 사용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의 구체적인 예로 맹세와 저주를 제시했습니다. 이로 인해 "어떠한 경우에도 맹세를 하면 안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101문답에서는 경건하게 맹세할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건하게 맹세한 예를 다윗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20장 3절에 기록된 다윗의 맹세는 그가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에게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음을 강조하는 장면입니다. "다윗이 또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아버지께서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에게 이것을 알리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

  이 구절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질투와 분노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여러 번 죽이려 했지만, 다윗은 요나단의 도움으로 여러 차례 목숨을 구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요나단은 처음에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의도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윗은 자신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요나단에게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 사이에는 한 걸음뿐이니라"라고 말하며 자신의 절박한 상황을 강조했습니다. 이 맹세는 요나단과 다윗의 깊은 우정과 신뢰를 나타내는 장면이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건하게 맹세한 예시입니다.

 

102문: 성인이나 다른 피조물로도 맹세할 수 있습니까?

답: 아닙니다. 정당한 맹세는 오직 홀로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을 불러, 진리에 대해 증인이 되어 주시며 내가 거짓으로 맹세할 때에 형벌하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예는 어떤 피조물에게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여호와' 대신 '아도나이'를 사용한 것과 유사하게,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직접 맹세하는 대신 성인이나 다른 피조물의 이름으로 맹세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표면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과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실제로 피할 수 있게 해주는지는 의문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이름을 오용하거나 경솔하게 사용하는 죄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대신 성인이나 다른 피조물의 이름으로 맹세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효과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행위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맹세의 대상을 하나님에서 성인이나 다른 피조물로 바꾸는 것은 진리의 궁극적 증인이며 거짓 맹세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고유한 권위를 피조물에게 부적절하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첫 번째 계명을 위반하는 우상숭배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고 존중하는 방식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진정한 경외심은 단순히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언행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것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