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교회사]19강: 중세 스콜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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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강: 중세 스콜라 철학

 

1. 서론적 질문: 믿음은 마음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머리로도 분명히 이해되어야하는가?

 중세 신학자들이 오늘날 “스콜라 철학” 또는 “스콜라 신학”이라고 불리는 학문적인 작업을 시작한 이유는 바로 이 질문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과 교회의 전통의 가르침을 따라 믿음의 진리를 더 분명하게 이해하고 또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작업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교리를 분명히 하고, 신앙을 가르치며, 이단의 도전 및 진리에 대한 오해에 답하기 위한 공적인 봉사였습니다. 그래서 스콜라 철학의 핵심 표어는 종종 이렇게 요약됩니다.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 안셀무스

  스콜라 철학 또는 스콜라 신학라는 말은 학교(schola)에서 발전했다는 뜻입니다. 교부 신학이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스콜라 신학은 12-13세기 대학의 강의실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스콜가 신학자들이 진리를 탐구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일종의 표준적화된 방법이 있었고,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문제 제기 (quaestio): 신앙과 삶의 문제에서 실제로 중요한 질문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2) 반대의견 제시(Objectiones): 가능한 다른 의견 또는 반대편의 의견들을 정직하게 나열합니다. 3) 권위 인용(Sed contra): 성경과 교부들의 가르침 공의회의 결정사항을 근거로 방향을 잡습니다. 4) 해답 제시(Respondeo): 이성과 논증으로 핵심 답변을 제시합니다. 5) 이의 해소(Ad): 처음 제기된 반대의견을 하나씩 풀어 줍니다.

  스콜라 신학자들은 이러한 신학 연구 방법이 ‘머리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더 잘 가르치고 지키기 위한 합리적인 교회를 위한 봉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념에는 ‘이성은 신앙에 이르는 중요한 수단이다.’ 또는 ‘신앙은 교리에 대한 지적인 동의이다.’라고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신앙을 단순히 교리에 대한 이성적 동의로 축소할 경우 발달 초기 단계에 있는 유아들이나 지적장애를 지닌 이들은 신앙의 가능성에서 배제된다는 점입이다. 그러나 그들 또한 감정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와 은총에 응답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스콜라 신학자들이 이성과 신앙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신학방법론과 명제들을 잘 이해하되, 이성과 감정의 긴장관계, 교부신학과 스콜라 신학과의 긴장관계, 교회와 신학교와의 긴장관계는 늘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2. 스콜라 신학의 시작: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810~877년경)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프랑크 왕국에서 궁정학자로 활동한 스콜라 철학의 선구자입니다. 그의 주요저서는 865~870년 경에 저술한 『자연의 구분에 관하여』 5권으로, 전통적으로 이 책은 중세 전기의 유일한 철학서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철학과 신학을 분리하지 않고, 모든 참된 지식이 하나님에게서 오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보았습니다.그는 단순히 신앙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신앙의 깊이를 탐구하려 했습니다.

  에리우게나의 중요한 통찰은 모든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순환 구조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된 철학은 참된 종교와 다르지 않다.” 즉, 철학과 신학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는 두 가지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단순히 이론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지키면서도, 헬라 철학 전통과 새롭게 들어온 사상들을 해석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에리우게나는 신플라톤주의적 사유를 받아들이면서, 신앙과 이성이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작업은 후대의 스콜라 철학자들 -안셀무스, 아퀴나스, 둔스 스코투스-가 걸어가게 될 길을 여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물론, 에리우게나의 사상은 때때로 지나치게 철학적이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중요한 씨앗의 역할을 했습니다. 신앙을 단순히 ‘덮어놓고 믿는 믿음’ 또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두지 않고, 이성과 대화할 수 있는 신앙으로 세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3. 이슬람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귀환

  스콜라 철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데에는 의외의 배경이 있습니다. 이미 설명한 대로, 그 배경은 이슬람 세계를 통한 고대 그리스 철학과 새로운 학문방법의 유입이었습니다. 서유럽에서는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이후, 고대 그리스의 많은 철학자의 저술들이 사라지거나 잊혀졌습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에서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7세기 이후 급속히 확장한 이슬람 제국은 헬라 철학의 고전을 아랍어로 번역하고, 연구하며 발전시켰습니다. 바그다드, 코르도바 같은 도시에는 학문과 철학이 꽃피웠습니다.

  대표적인 이슬람 철학자 아비센나(이븐 시나)와 아베로에스(이븐 루시드)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깊이 연구했고, 그들의 저술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유럽에 전해졌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서유럽에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중세 유럽 교회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이성과 경험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성경과 교부들의 신학만을 배우던 신학자들에게, 이제 새로운 질문이 생겼습니다. “이성이 신앙을 넘어설 수 있는가?”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이성이 충돌할 때, 무엇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신앙과 이성의 관계라는 주제로 요약되는 이러한 질문들은 스콜라 철학의 핵심 주제가 되었습니다. 신앙을 지키면서도, 철학과 과학의 발견을 무시하지 않기 위해, 신학자들은 치열하게 씨름해야 했습니다. 이슬람 철학을 통해 들어온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순히 고대 철학이 아니라, 중세 신학의 새로운 도전과 자극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안셀무스,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신학자들은 이 질문에 자신들의 방식으로 답하며, 스콜라 철학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켜 갔습니다.

 

4. 안셀무스 -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

  스콜라 철학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은 안셀무스(1033~1109)입니다. 그는 캔터베리 대주교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중세 신학을 ‘스콜라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안셀무스의 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이 문장입니다.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그가 말한 이 문장의 의미는 “믿음을 전제로 하여, 그 믿음을 더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신앙과 이성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먼저이지만, 그 믿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성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콜라 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안셀무스는 두 가지의 대표적인 업적을 남겼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존재 증명 또는 “존재론적 논증”입니다. 안셀무스는 『프로슬로기온』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큰 존재를 생각할 수 없는 분이다.” 이 논리만으로도 하나님은 반드시 존재하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이 단지 ‘관념’으로만 존재한다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더 크기 때문에 모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 논증은 철학자들 사이에서 지금도 계속 토론되는 주제입니다.

  다른 하나는, “만족 이론”이라고 불리는 구속론을 제시한 것입니다. 안셀무스는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는가(Why God Became Man)』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키는 사건”으로 설명했습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켰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대신 만족을 이루셨기에 구원이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안셀무스는 철학적 논리와 신학적 믿음을 함께 붙잡으려 했습니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철학을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진리를 더 명확하게 설명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안셀무스의 신학 방법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분명합니다. 믿음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을 통하여 더 깊어질 수도 있으며, 동시에 이성은 독립된 진리가 아니라 믿음을 섬기는 도구입니다. 안셀무스는 스콜라 철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신학자로서, “믿음과 이성이 서로를 비추는 관계”라는 중요한 전통을 남겼습니다.

 

5. 토마스 아퀴나스 - 신앙과 이성의 조화

 

  스콜라 철학의 절정에 선 인물은 누구나 인정하듯이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입니다. 그는 도미니코회 수도사로서, 중세 신학과 철학을 가장 체계적으로 종합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저서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은 중세 스콜라 철학의 결정판이라 불릴 만큼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다루었던 주제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신앙과 이성의 관계: 아퀴나스는 신앙과 이성을 대립하지 않고 조화롭게 이해했습니다. 이성은 인간이 가진 자연적 능력으로, 세상의 질서를 탐구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그러나 이성만으로는 하나님의 본질, 삼위일체와 같은 신비를 다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계시는 이성을 넘어서는 초월적 진리를 알려주는 은혜로운 빛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 이 말의 의미는 이성이라는 자연적 도구는 계시라는 은혜 속에서 온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2) 하나님의 존재 증명 - 다섯 가지 길: 안셀무스가 ‘존재론적 논증’을 제시했다면, 아퀴나스는 보다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증거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증명하기 위해 ‘다섯 가지 길’을 제시했습니다.

(1) 운동의 근원 (모든 움직임의 첫 원인)

(2) 원인의 연속 (모든 원인의 궁극적 근원)

(3) 필연적 존재 (우연한 존재가 아닌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분)

(4) 완전성의 기준 (선함, 진리, 아름다움의 근원)

(5) 목적론적 질서 (세상의 질서와 목적을 주관하는 분)

이 논증들은 “세상에 있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자연신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3) 신앙과 철학의 종합

  아퀴나스는 당시 서유럽에 전해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신학을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작업은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처럼, 철학을 도구로 삼아 신앙을 더 깊이 설명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아퀴나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신앙은 이성을 배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성을 통해 더 분명해질 수 있다. 동시에 이성은 스스로 절대적이지 않다. 계시의 빛 안에서만 참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아퀴나스의 신학은 ‘믿음과 이성의 조화로운 대화’라는 중요한 교훈을 오늘날에도 남깁니다.

 

6. 둔스 스코투스 - 의지와 사랑의 신학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 스콜라 철학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둔스 스코투스(1266~1308)입니다. 그는 프란치스코회 출신 신학자로서, 그의 섬세하고 치밀한 논리 전개는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에 ‘섬세한 박사’ 또는 ‘난해한 박사’라는 별칭으로 불렸습니다. 그가 다루었던 주요한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의지(voluntas)의 우선성: 스코투스는 아퀴나스와 달리,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기보다 의지에 더 큰 비중을 두었습니다. 아퀴나스가 ‘지성이 먼저, 의지는 그 뒤’라고 했다면, 스코투스는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가 지성을 이끈다’고 했습니다. 이는 인간 존재의 중심에 자유의지와 사랑의 선택이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자유와 사랑: 스코투스의 사유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도 자유로우시다는 관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필연이 아니라, 사랑의 자유로운 선택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도 지식적인 이해를 추구하기 이전에, 하나님을 향한 자유로운 사랑의 응답으로 세워져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3) 무염시태 교리의 옹호: 스코투스는 특히 성모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를 강력히 옹호했습니다. 그는 마리아가 태어날 때부터 원죄에서 보존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당시 큰 논쟁거리였지만, 훗날 가톨릭 교리로 확정되는 데 중요한 사상적 기초가 되었습니다.

  스코투스의 사상의 기초가 되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는 신앙과 자유와 사랑입니다. 스코투스에 의하면, “신앙은 이해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가 동반될 때 비로소 온전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제로가 아니라 자유롭게 사랑하시고, 우리도 자유로운 사랑으로 하나님께 응답해야 한다.” 따라서 스코투스는 사랑과 자유라는 두 키워드를 통해, 신앙을 더 인격적이고 관계적으로 이해하도록 길을 열었습니다.

 

7. 결론 - 스콜라 철학의 의의와 한계

  스콜라 철학은 중세 교회가 직면했던 거대한 과제를 붙잡고 씨름한 신학적 전통이었습니다. 그 핵심은 ‘이성과 신앙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스콜라 철학의 의이는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추구했습니다. 아퀴나스를 비롯한 신학자들은 신앙을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이해될 수 있는 합리적 체계로 제시했습니다. 둘째, 신학의 학문화를 이루었습니다. 질문-반론-답변이라는 학문적 방법론을 발전시켜, 오늘날의 학문적 토론 방식에도 영향을 남겼습니다. 셋째, 지성과 영성의 통합을 시도했습니다. 단지 머리의 이해가 아니라, 수도원적 기도와 영성과도 맞물려 있었습니다. 안셀무스의 기도 신학, 아퀴나스의 예배 중심 신학, 스코투스의 사랑 중심 신학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스콜라 철학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첫째, 신학의 추상화와 형식화입니다. 지나치게 논리와 개념에 매달리면서, 때로는 실제 신앙의 삶과 멀어졌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둘째, 복잡한 체계입니다. 일반 신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게 여겨지고, 교회 현장과는 거리가 먼 학자들끼리의 이야기로만 남아버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셋째,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둔감함입니다. 상아탑에 갇히 학문으로서의 신학은 십자군 전쟁, 흑사병, 새로운 사회 변화에 대해 즉각적인 대답을 주지 못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의의와 한계를 통해 스콜라 철학은 우리에게 중요한 균형을 가르쳐 줍니다. 신앙은 머리와 가슴, 이성과 감성을 함께 요구합니다. 성경과 전통을 통해 전해진 신앙에 대한 이해가 없는 믿음은 뿌리가 약하고,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사랑 없는 신앙 이해는 공허하다. 하나님을 향한 길은 이성과 감성, 지성과 영성, 학문과 기도가 함께 가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콜라 신학자들의 씨름을 통해, 오늘 우리의 신앙도 더 깊고 균형 있게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