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교회사 특강: 중세 여성의 삶과 작품으로부터 배우는 신앙과 영성 (1)
1. 왜 '중세', 왜 '여성', 왜 '영성'인가?
장로교 전통에 있는 개신교 남성 신학자가, 왜 '중세'와 '여성', 그리고 '영성'을 연구할까요? 이 물음은 저에게 단순한 연구 주제를 넘어, 개혁교회 전통 안에서 신학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교회를 위한 신학'을 수행하는 교단직영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장로교 교단 연구자의 전공이 '중세-여성-영성'이라는 조합은 때로 낯설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가 우리 개혁교회의 신학과 신앙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더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 문제의식과 연결됩니다. 바로 ➀ 복음의 연속성, ➁ 그리스도인의 주체성, ➂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특성입니다.
1) 중세 교회에 복음은 있었는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어, 2000여 년의 세월을 거쳐 오늘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이 흐름 안에는 초대교회도, 중세교회도, 종교개혁도, 오늘날의 교회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중세교회를 흔히 "암흑기"라 부르며, 복음이 제도와 권력 안에서 변질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세 교회에 복음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복음의 역사성과 연속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복음이 소외되고, 교회가 혐오의 대상이 된 지금 이 시대에, 중세교회를 거울 삼아 우리 자신의 몸가짐과 옷매무새를 바로잡을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중세는 단지 지나간 시대가 아니라, 복음을 새롭게 되묻기 위한 신학적 거울입니다.
2) 교회사는 남성의 역사만이 아니다
교회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당연하게도, 남성과 여성 모두가 참여한 역사입니다. 2000년 교회 역사를 펼쳐놓고 보면, 복음을 듣고 살아낸 신자들 중 절반 이상은 여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이름은 좀처럼 기록되지 않았고, 그들의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으며, 오랫동안 교회 역사에서 주체로서의 자리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사료의 부족입니다. 여성의 삶과 목소리를 담은 기록이 적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록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존재 자체를 보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은 교회사의 진실을 축소하는 일이자, 복음의 공동체성을 훼손하는 일일 것입니다.
2. 마녀의 재판에서 교회의 박사까지: 개혁교회는 어디에 설 것인가?
교회 구성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중요하게 조명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어서가 아닙니다. 두 가지 인식의 전환 때문입니다. 첫째, 역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역사 인식은 '영웅 중심', '권력 중심', '남성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역사 인식은, 그동안 기록되지 못하고 주변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함해야 전체의 역사가 완성된다는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여성의 이야기는 그 핵심에 있습니다. 둘째,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서양 지성사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한 '남성=이성', '여성=감성'이라는 이분법이 도전을 받았고, 여성 혐오적 문화와 역사적 사건들이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여성과 남성의 동등성은 이제 더 이상 이론이 아닌 사회적·신학적 전제이자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 중세의 여성혐오적 현실: 마녀재판
이 두 인식의 전환이 실제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중세의 마녀재판입니다. 중세의 마녀재판은 여성에 대한 집단적 혐오가 '종교적 언어'를 입고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이 재판은 중세에서 시작되어 근대에까지 이어졌고, 심지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에 의해서도 지속되었습니다. 중세의 마녀재판은 '종교재판'의 성격을 지녔고, 근대의 마녀재판은 '민사재판'의 성격으로 발전합니다. 따라서 중세의 마녀재판은 교회의 역사 안에서 여성의 이미지가 어떻게 왜곡되고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특히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는 중세 교회가 어떻게 여성의 신앙과 신체를 불신의 대상으로 취급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모두가 화형당하지는 않았습니다. 마녀재판을 통해 수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모든 여성이 화형당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단순한 영혼의 거울』을 남긴 마거리트 포레트는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당했지만, 아빌라의 테레사는 같은 종교재판의 과정을 통해 그의 저술이 신학적으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살아남았습니다. 그 후 테레사는 1622년 '성녀'로 선포되었고, 1970년에는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교회의 박사"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이 칭호는 가톨릭 교리 형성에 큰 공헌을 한 성인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지위로, 성스러운 삶과 탁월한 신학 저작을 모두 갖춘 자에게만 부여됩니다.
2) 교회박사 가운데 여성은 몇 명인가?
지금까지 로마 가톨릭이 인정한 교회의 박사는 총 36명이며, 그 중 여성은 단 4명- 그 중 중세 여성은 세 명입니다: 아빌라의 테레사, 시에나의 카타리나, 빙엔의 힐데가르트 이외에도 현대에 가까운 인물인 리지외의 테레사까지 포함하면 여성 교회 박사는 전체의 약 11%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외에도 중세에는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신앙 체험과 신학적 사유를 운문과 산문으로, 또는 구전과 성인전의 형태로 남기고 전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들의 삶과 목소리를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 속에 다시 불러와야 할 때입니다.
3. 중세 여성의 신앙과 삶에서 오늘날 개신교가 무엇을 회복할 수 있는가?: 주체성, 정체성, 영성의 관점에서
'중세 여성'이라는 연구 주제와 '교회를 위한 신학'이라는 연구 목적이 연결되는 지점은 바로 영성입니다. 영성이라는 주제로 2000년 교회 역사를 새롭게 서술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전통과 여정이 존재하지만,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개신교 신자들에게 중세 여성들의 생애와 저작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들이 보여주는 주체성, 정체성, 영성의 통합적인 증언 때문입니다.
중세 여성 영성가들-혹은 여성 신학자들에게-영성은 단지 내면적 경건이 아니라, 존재의 주체로 설 수 있는 통로였고, 신학적 질문에 응답하는 생생한 방식이었습니다. 중세 가톨릭 교회가 복음을 잃어버리고 진리에서 벗어났다고 여겨지던 시기, 이 여성들이 귀를 기울인 것은 교회의 공식 교리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신비체험 속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었습니다.
당시 신비체험의 기록은 자칫 마녀재판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그들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자신의 체험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해석하고, 고백신부를 통한 신학적 검토를 받으며 기록을 남겼습니다. 만약 이들이 주체적인 신앙인으로 서지 못했다면,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반복하거나 자신의 체험을 침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체험을 신학적으로 분별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신앙의 주체가 되었고, 그래서 그들의 저작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작품을 '영성'이라는 관점에서 읽고 해석할 때,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할 개념이 정체성입니다. 정체성이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의식이며,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어 단어 identity는 "동일시하다"는 의미의 identify와 연결되어 있듯,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셨을까"를 늘 고민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판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시대에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려는 태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는 중세 여성 신비가들이 보여준 삶의 태도이기도 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감정과 사유를 고난받는 그리스도와의 동일시 속에서 해석하며 살아갔습니다.
결국 중세 여성 영성가들을 연구할 때 핵심이 되는 개념은 여성, 주체성, 정체성이며, 이를 통해 영성이라는 개념도 더욱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중세 여성의 신앙과 삶을 연구하는 데는 몇 가지 어려움이 따릅니다. 무엇보다 사료의 부족, 그리고 현대 여성주의 역사 해석이 가진 복잡성이 대표적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기록은 대부분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세 기독교 사회의 덕성, 신중심 세계관, 신학적 체계가 깊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다른 말로 하면, '아래로부터의 역사'에 대한 이해, 귀납적 역사 해석의 수용, 그리고 여성주의 시각과 기독교 신학의 긴장과 만남이라는 주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중세를 암흑기로 간주하며 종교개혁의 빛을 부각시키려 했던 프로테스탄트 역사가의 시선을 넘어서, 한 여성의 시선으로 중세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발견하게 될까?" 이 질문은 곧 중세 여성의 영성을 새롭게 조명하고, 개혁교회가 오늘 어떤 영성적 자산을 회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4. 흑사병의 시대에도 빛났던 이름들: 왜 지금, 중세 여성신학자인가?
전 세계가 COVID-19로 인한 팬데믹을 겪으며, 오늘의 암울한 현실을 중세 흑사병의 시대와 나란히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중세의 이미지는 어둡고, 절망적이며, 우울한 감정을 자극하여 중세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더욱 강화시키는 듯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빛과 그림자, 희망과 절망은 공존해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과 남성이 함께 존재했고, 신학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중세에도 여성 신학자들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여전히 여성의 사제직을 인정하지 않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중세 여성들을 '교회 학자'(Doctor of the Church)로 공식 선포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삶과 신학, 신앙의 깊이와 탁월함을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특히 교회학자로 공식 인정받은 세 명의 중세 여성, 아빌라의 테레사, 시에나의 카타리나, 빙엔의 힐데가르트를 눈여겨 보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의 저술이 신학적으로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이 살아낸 영적인 삶의 방식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도전과 울림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생애와 신학을, '영성', '주체성', '정체성'이라는 관점에서 함께 조명함으로써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신학적 성찰과 영성 훈련의 새로운 자극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중세교회사 특강: 중세 여성의 삶과 작품으로부터 배우는 신앙과 영성 (1)
1. 왜 '중세', 왜 '여성', 왜 '영성'인가?
장로교 전통에 있는 개신교 남성 신학자가, 왜 '중세'와 '여성', 그리고 '영성'을 연구할까요? 이 물음은 저에게 단순한 연구 주제를 넘어, 개혁교회 전통 안에서 신학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교회를 위한 신학'을 수행하는 교단직영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장로교 교단 연구자의 전공이 '중세-여성-영성'이라는 조합은 때로 낯설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가 우리 개혁교회의 신학과 신앙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더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 문제의식과 연결됩니다. 바로 ➀ 복음의 연속성, ➁ 그리스도인의 주체성, ➂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특성입니다.
1) 중세 교회에 복음은 있었는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어, 2000여 년의 세월을 거쳐 오늘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이 흐름 안에는 초대교회도, 중세교회도, 종교개혁도, 오늘날의 교회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중세교회를 흔히 "암흑기"라 부르며, 복음이 제도와 권력 안에서 변질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세 교회에 복음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복음의 역사성과 연속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복음이 소외되고, 교회가 혐오의 대상이 된 지금 이 시대에, 중세교회를 거울 삼아 우리 자신의 몸가짐과 옷매무새를 바로잡을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중세는 단지 지나간 시대가 아니라, 복음을 새롭게 되묻기 위한 신학적 거울입니다.
2) 교회사는 남성의 역사만이 아니다
교회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당연하게도, 남성과 여성 모두가 참여한 역사입니다. 2000년 교회 역사를 펼쳐놓고 보면, 복음을 듣고 살아낸 신자들 중 절반 이상은 여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이름은 좀처럼 기록되지 않았고, 그들의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으며, 오랫동안 교회 역사에서 주체로서의 자리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사료의 부족입니다. 여성의 삶과 목소리를 담은 기록이 적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록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존재 자체를 보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은 교회사의 진실을 축소하는 일이자, 복음의 공동체성을 훼손하는 일일 것입니다.
2. 마녀의 재판에서 교회의 박사까지: 개혁교회는 어디에 설 것인가?
교회 구성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중요하게 조명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어서가 아닙니다. 두 가지 인식의 전환 때문입니다. 첫째, 역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역사 인식은 '영웅 중심', '권력 중심', '남성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역사 인식은, 그동안 기록되지 못하고 주변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함해야 전체의 역사가 완성된다는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여성의 이야기는 그 핵심에 있습니다. 둘째,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서양 지성사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한 '남성=이성', '여성=감성'이라는 이분법이 도전을 받았고, 여성 혐오적 문화와 역사적 사건들이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여성과 남성의 동등성은 이제 더 이상 이론이 아닌 사회적·신학적 전제이자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 중세의 여성혐오적 현실: 마녀재판
이 두 인식의 전환이 실제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중세의 마녀재판입니다. 중세의 마녀재판은 여성에 대한 집단적 혐오가 '종교적 언어'를 입고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이 재판은 중세에서 시작되어 근대에까지 이어졌고, 심지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에 의해서도 지속되었습니다. 중세의 마녀재판은 '종교재판'의 성격을 지녔고, 근대의 마녀재판은 '민사재판'의 성격으로 발전합니다. 따라서 중세의 마녀재판은 교회의 역사 안에서 여성의 이미지가 어떻게 왜곡되고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특히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는 중세 교회가 어떻게 여성의 신앙과 신체를 불신의 대상으로 취급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모두가 화형당하지는 않았습니다. 마녀재판을 통해 수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모든 여성이 화형당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단순한 영혼의 거울』을 남긴 마거리트 포레트는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당했지만, 아빌라의 테레사는 같은 종교재판의 과정을 통해 그의 저술이 신학적으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살아남았습니다. 그 후 테레사는 1622년 '성녀'로 선포되었고, 1970년에는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교회의 박사"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이 칭호는 가톨릭 교리 형성에 큰 공헌을 한 성인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지위로, 성스러운 삶과 탁월한 신학 저작을 모두 갖춘 자에게만 부여됩니다.
2) 교회박사 가운데 여성은 몇 명인가?
지금까지 로마 가톨릭이 인정한 교회의 박사는 총 36명이며, 그 중 여성은 단 4명- 그 중 중세 여성은 세 명입니다: 아빌라의 테레사, 시에나의 카타리나, 빙엔의 힐데가르트 이외에도 현대에 가까운 인물인 리지외의 테레사까지 포함하면 여성 교회 박사는 전체의 약 11%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외에도 중세에는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신앙 체험과 신학적 사유를 운문과 산문으로, 또는 구전과 성인전의 형태로 남기고 전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들의 삶과 목소리를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 속에 다시 불러와야 할 때입니다.
3. 중세 여성의 신앙과 삶에서 오늘날 개신교가 무엇을 회복할 수 있는가?: 주체성, 정체성, 영성의 관점에서
'중세 여성'이라는 연구 주제와 '교회를 위한 신학'이라는 연구 목적이 연결되는 지점은 바로 영성입니다. 영성이라는 주제로 2000년 교회 역사를 새롭게 서술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전통과 여정이 존재하지만,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개신교 신자들에게 중세 여성들의 생애와 저작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들이 보여주는 주체성, 정체성, 영성의 통합적인 증언 때문입니다.
중세 여성 영성가들-혹은 여성 신학자들에게-영성은 단지 내면적 경건이 아니라, 존재의 주체로 설 수 있는 통로였고, 신학적 질문에 응답하는 생생한 방식이었습니다. 중세 가톨릭 교회가 복음을 잃어버리고 진리에서 벗어났다고 여겨지던 시기, 이 여성들이 귀를 기울인 것은 교회의 공식 교리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신비체험 속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었습니다.
당시 신비체험의 기록은 자칫 마녀재판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그들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자신의 체험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해석하고, 고백신부를 통한 신학적 검토를 받으며 기록을 남겼습니다. 만약 이들이 주체적인 신앙인으로 서지 못했다면,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반복하거나 자신의 체험을 침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체험을 신학적으로 분별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신앙의 주체가 되었고, 그래서 그들의 저작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작품을 '영성'이라는 관점에서 읽고 해석할 때,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할 개념이 정체성입니다. 정체성이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의식이며,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어 단어 identity는 "동일시하다"는 의미의 identify와 연결되어 있듯,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셨을까"를 늘 고민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판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시대에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려는 태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는 중세 여성 신비가들이 보여준 삶의 태도이기도 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감정과 사유를 고난받는 그리스도와의 동일시 속에서 해석하며 살아갔습니다.
결국 중세 여성 영성가들을 연구할 때 핵심이 되는 개념은 여성, 주체성, 정체성이며, 이를 통해 영성이라는 개념도 더욱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중세 여성의 신앙과 삶을 연구하는 데는 몇 가지 어려움이 따릅니다. 무엇보다 사료의 부족, 그리고 현대 여성주의 역사 해석이 가진 복잡성이 대표적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기록은 대부분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세 기독교 사회의 덕성, 신중심 세계관, 신학적 체계가 깊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다른 말로 하면, '아래로부터의 역사'에 대한 이해, 귀납적 역사 해석의 수용, 그리고 여성주의 시각과 기독교 신학의 긴장과 만남이라는 주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중세를 암흑기로 간주하며 종교개혁의 빛을 부각시키려 했던 프로테스탄트 역사가의 시선을 넘어서, 한 여성의 시선으로 중세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발견하게 될까?" 이 질문은 곧 중세 여성의 영성을 새롭게 조명하고, 개혁교회가 오늘 어떤 영성적 자산을 회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4. 흑사병의 시대에도 빛났던 이름들: 왜 지금, 중세 여성신학자인가?
전 세계가 COVID-19로 인한 팬데믹을 겪으며, 오늘의 암울한 현실을 중세 흑사병의 시대와 나란히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중세의 이미지는 어둡고, 절망적이며, 우울한 감정을 자극하여 중세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더욱 강화시키는 듯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빛과 그림자, 희망과 절망은 공존해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과 남성이 함께 존재했고, 신학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중세에도 여성 신학자들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여전히 여성의 사제직을 인정하지 않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중세 여성들을 '교회 학자'(Doctor of the Church)로 공식 선포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삶과 신학, 신앙의 깊이와 탁월함을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특히 교회학자로 공식 인정받은 세 명의 중세 여성, 아빌라의 테레사, 시에나의 카타리나, 빙엔의 힐데가르트를 눈여겨 보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의 저술이 신학적으로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이 살아낸 영적인 삶의 방식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도전과 울림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생애와 신학을, '영성', '주체성', '정체성'이라는 관점에서 함께 조명함으로써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신학적 성찰과 영성 훈련의 새로운 자극이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