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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국가의 영광과 수치
대하 26:1-8



우리는 다 무익한 종들일 뿐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 받을 뿐입니다. 내가 아니요 오직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고백이 일생 우리 삶을 지배하는 진정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관료사회가 부패하고 시대정신에 뒤떨어진 생각과 제도를 고집하던 나라가 맞이했던 불행한 역사가 우리의 일제강점 35년의 역사였음도 우리는 이를 매우 아프게 성찰해야겠습니다. 그 후로도 우리나라 역사는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전쟁을 겪었고 극심한 경제난으로 고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하여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됩니다. 국가 정체성이 손상되고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우리 사회의 윤리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국가 사회의 여러 일들이 옳고 그름을 생각하거나 효율성과 비효율성을 말하지 않고 진영논리에 휩싸여 논란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시대를 책임진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심한 실망감과 배신감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들은 그리스도인 된 우리에게 역사적 숙제와 기도제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선진국이란 경제수준이 높은 나라를 의미하지 않고 선진화된 의식 수준을 가진 국민이 있는 나라입니다. 1945년의 광복을 넘어 존경받는 국가의 모습을 갖춘 새로운 광복으로 나아가는 일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고 앞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으로 강성하여지는 복을 누렸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나병 환자가 되고 권력에서 축출되어 별궁에 거하다가 마침내 생을 마감했습니다. 우리는 웃시야 왕의 생애가 주는 교훈을 생각하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선한 영향력을 국가 사회에 끼쳐야 하는 지에 대하여 깊이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1. 웃시야의 신앙
웃시야는 다윗의 때로부터 제12대 유다 왕으로 16세 때 즉위하여 무려 52년간을 재위하면서 많은 치적을 남긴 왕이었습니다. 그의 치적을 본문에서는 크게 세 가지로 소개합니다.
 먼저 웃시야 왕은 주변을 평정했습니다. 유다 왕국의 만성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가 주변의 여러 부족들의 잦은 침공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지중해 해변도시들에 거주했던 블레셋 사람들과 요단 강 동편에 위치한 북쪽의 암몬에서부터 남쪽의 아라비아에 거주했던 부족들은 틈만 있으면 침공하여 약탈과 살육을 자행했습니다. 웃시야는 그들 모든 지역들을 평정하여 그들로 하여금 솔로몬 시대 이후 중단되었던 조공을 재개하게 했습니다. 두 번째로 심각한 식량문제 해결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농업을 장려하고 식량생산에 심혈을 기울여 식량 자급시대를 열었습니다. 세 번째로 무기 산업을 발전시켜 국가안보를 튼튼하게 했습니다.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4-5절). 웃시야 왕이 16세의 어린 왕으로 즉위해서 이렇게 영토를 확장하고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무기 산업을 발전시키는 등의 엄청난 역사를 만들어낸 저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했으며, 스가랴 선지자의 영적 지도를 잘 받아들였고, 항상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웃시야 왕은 비록 어리지만 진지한 신앙생활을 했고 신앙 윤리에 철저했으며 자기 임무에 충실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영적 자산이나 정신 자산이 지극히 빈곤합니다. 물질주의가 난무하고 모든 분야에서 권력에 대한 욕망이 지나칩니다. 국민 전체가 지나치게 공격적이며 필요 이상으로 독하고 거친 표현을 일삼습니다. 공존과 일치의 가치가 사라지고 독점주의가 난무합니다. 이런 정신으로는 부흥하는 시대를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의 근본정신인 사랑, 정의, 공정, 성실 등의 가치가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합니다. 이 신앙정신에서 역사를 창조해 내는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2.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간 웃시야가 시험에 빠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의 권력이 절정에 이르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자 마음이 교만해져서 그는 왕에게 금지되었던 마지막 한 가지인 종교의 영역에까지 손을 뻗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정제도를 허락하실 때 왕에게 절대 권력을 주셨지만 한계는 매우 분명하게 정하셨습니다. 율법의 말씀을 벗어나면 안 되는 것과 종교적 분야의 일은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두어 이 두 가지는 제사장들만 감당하게 했습니다.(16절) 성경은 웃시야 왕의 이런 행동을 그의 신앙적 열정이 지나쳐 행한 ‘선의의 실수’라고 말하지 않고 교만하여 악을 행하고 범죄 했다고 말합니다. 그가 성전으로 들어갈 때 제사장 아사랴가 동료 제사장 80명과 함께 왕의 가는 길을 가로막았지만 웃시야 왕은 제사장들을 뿌리치고 결국 제단에 분향을 시도했고 집요하게 반대하는 제사장들에게 분노할 때 그에게 나병이 생겼습니다. 그는 제사장들에게 쫓겨나서 성전 밖으로 나갔고 별궁에 감금되었다가 니병으로 죽었습니다. 52년을 왕으로 재위하면서 그의 치적이 다윗에 버금가는 빛나는 업적이었지만 마지막에 자행된 이 실수는 그 개인에게도 민족의 역사에도 치명적 결함이 되었습니다. 이 일로 웃시야 왕은 50여 년의 위대한 역사가 마지막 한 순간의 일탈로 모두 무너지고 그의 인생 전체가 부정되었습니다. 교만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의 삶에 스며든 교만은 모든 것을 자신이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또 그는 자기 생각을 절대 기준으로 삼았고 자기 영광만을 구했습니다. 웃시야 왕이 자기 권력과 영광을 과시하려 성전 제사까지 직접 감당하려 하지만 그 모습이 모든 사람들을 부끄럽고 분노하게 했습니다.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 1:24). 우리는 다 무익한 종들일 뿐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 받을 뿐입니다. ‘내가 아니요 오직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고백이 일생 우리 삶을 지배하는 진정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지도자는 자기 기쁨 보다 함께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국가 지도자는 국가의 존엄을 지키고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존재합니다. 모든 공동체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는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도자가 힘을 과시하고 사람을 억압하고 정의를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버리십니다. 자기 자랑에 열중하고 자기 영광만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교만이며 악을 행하는 범죄입니다.
 우리는 웃시야 왕의 역사에서 겸손할 때 복을 주셨고 교만할 때 버리셨던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세상에 오셔서 모든 것을 다 주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온전한 헌신과 완전한 희생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끝없는 비난과 누명과 배신과 버리심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분노하지 않으시고 대가를 요구하시는 법도 없으시고 섭섭해하시지도 않으시고 누구를 비난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끝까지 겸손히 기도하시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풍요로운 내적 충만과 자랑하지 않고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는 겸손함으로 새 역사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불안한 인생의 희망
위로 in 서울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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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고 위엄있게
한 전도자의 승리
건너편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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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절을 지키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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