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나 지위를 탐하지 말고 감당해야 할 사명에 집중하십시오. 교회 안에서 지위나 직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명감입니다. 사명감 없이 지위만 추구하면 그것이 세속화요 성직을 타락시키는 일입니다.
고대교회사에서 ‘황금의 입’으로 불리는 교부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AD349-407)은 안디옥에서 사제가 되어 목회사역을 하다가 콘스탄티노플 교회에서 사역을 이어가며 당시 귀족들의 사치와 황족들의 개인 우상화를 철저하게 비판했고 성직자들에게도 엄격한 수행과 청빈 생활을 강조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이 세대란 이 시대를 지배하는 대중들의 가치관과 유행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하고,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에서 공동체에 대한 기여를 먼저 생각해야 하며 자기 영광과 능력을 과시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권세자들은 호령하고 군림하고 지배자로 살고 있지만 제자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1. 지위보다 사명을 생각해야
본문의 예수님은 갈릴리를 출발하여 먼 길 을 걸어 예루살렘으로 행하시던 중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갈 때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하는 것을 기피하여 이런 우회로를 선택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예수님도 그 관례를 따라 먼 길을 우회하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 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막 10:32). 예수님은 이제 유대의 교권자들이 공회를 열고 죽일 것을 결의하고 이방인인 로마 총독에게 인계할 것이며 그들이 십자가에서 사형을 집행할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예고하셨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예수님께서 단 한 번도 자기 지위나 명칭에 관하여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메시야로서의 권위에 대해서도 언급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오직 십자가의 대속만을 생각하셨습니다. 자신의 지위보다 사명에만 몰두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처음부터 지위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모친 살로메는 주님께 다가와서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1절)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그들에게 ‘자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에게 주실 것이요 너희는 내가 주는 잔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자리나 지위를 탐하지 말고 감당해야 할 사명에 집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지위나 직분에 관심이 많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명감입니다. 사명감 없이 지위만 추구하면 그것이 세속화요 성직을 타락시키는 일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선지자나 교사나 목사나 사도나 집사나 누가 어떤 직분을 가지는가가 중요하지 않고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게 세워나가는 사명감으로 사는 것이 성도의 근본입니다. 세상의 가치로는 지위를 얻는 것이 승리고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2. 지배하지 말고 섬겨라
야고보와 요한의 청탁은 주변 제자들을 분노케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분노한 것은 그들의 마음에도 역시 자리를 탐하는 명예심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조용히 제자들을 부르시어 세상 제도와 정치에서는 당연히 고위직일수록 권력을 행사하고 지배자로서 군림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25-27절) 그리고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소위 리더십의 유형 가운데 섬김의 리더십인 ‘Servant Leadership’의 원리가 되는 말씀입니다. 지도자는 섬기는 자요 공동체의 종입니다. 섬기는 자는 ‘Diakonos, 즉 일하는 자’라는 의미이며 종은 ‘Doulos, 노예’를 의미합니다. 우리 신분은 노예와 같고 우리 하는 일은 섬기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언제나 ‘복음의 일꾼, 섬기는 자,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고백에 어울리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교회는 갈등에 직면하고 세속화된 부패 조직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교권을 장악했던 대제사장이나 바리새파 지도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을 정치인으로 생각했고 정치적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자기들이 결정하면 법이 된다고 생각했고 모든 백성들은 당연히 굴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백성들을 섬겨야 한다거나 종의 신분에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고 그 제자들을 고문하고 협박하고 죽이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었습니다.
교회 역사가 중세로 접어들면서 비슷한 타락 양상이 생겼습니다. 막강한 교권으로 세속 왕권을 지배했고 거짓 교리를 만들고 이를 악용하여 백성들을 착취하고 권력 남용의 전횡을 일삼았습니다. 교회가 권력을 자랑하고 물질의 힘을 과시하면 반드시 부패하고 타락하게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낮아져야 하고, 종이 되어야 하고 섬김을 삶의 근본으로 알아야 합니다.
3. 목적을 새롭게 하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8절) 예수님은 왜 당신 자신이 섬기려 하시는지, 왜 하나님 아들의 영광과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기어이 지려하시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당신이 비천한 신분으로 오시고 힘없는 자처럼 멸시와 천대를 당하시고 죄인처럼 죽으시는 이 모든 일의 목적이 죄인인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시기 위함이요, 반드시 죽어야 하고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시기 위함이요, 죄인들을 섬기시기 위함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죄인들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목적의식은 우리 삶의 표준점을 제시합니다. 어떤 말이나 행위에 있어 내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살아야 주변 사람이 구원받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우리의 삶의 표준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세상의 원리는 모두 자기가 잘 되는 것이 판단의 기준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사람이 구원 얻는 일에 유익한 것이 판단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구원에 방해되는 일을 ‘실족시키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의 목적을 전환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예수 믿도록 돕는 일을 목적 삼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도록 하는 목적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버렸고 다 포기했고 마침내 십자가에 당신 생명도 바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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