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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첫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출 15:22-27)



 <고난은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연단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 주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져야 하기 때문에 부름 받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고난이 오기도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처음의 실패는 지속적인 상처와 두려움으로 남아서 인생살이의 큰 부담감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첫 시련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역의 첫 순간에 큰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하시며 ‘사탄아 물러가라’고 호통하시며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첫 시험을 이기신 주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시며 본격적인 전도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처음으로 맞이했던 광야의 시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홍해를 기적으로 건넌 후 사기충천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진입했습니다. 찬송 소리가 우렁찼고 모든 도전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면서 물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도저히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물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행진을 시작하여 오아시스인 엘림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첫 시험을 잘 이겼고 그 여세를 몰아 오아시스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1. 삶은 끝없는 문제의 현장
 애굽에서 수백 년간 노예생활에 시달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망은 속히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 땅을 벗어나서 바로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자유로운 세계를 원했고 강제노동 현장의 포악한 관리들의 채찍질이 없는 평화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애굽만 벗어나면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넘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애굽을 떠난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은 홍해였습니다. 하나님께 울부짖듯 기도하여 구사일생으로 홍해를 마른 땅을 걷듯이 건너 드디어 자유의 땅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격에 겨운 찬송을 불렀고 미리암을 선두로 여인들은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스스로의 구원을 자축했습니다.
 그러나 겨우 사흘 만에 상황은 또 역전되었습니다. 물이 없는 현실에 직면하며 다시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 들렸습니다. 홍해를 건넌 후 불렀던 찬송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우성 소리가 광야에 메아리쳤습니다.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해 고생하다가 어찌어찌하여 물을 찾았지만 마시지 못할 쓴 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 파라다이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항상 오늘의 마라, 인생의 쓴 물 같은 일들이 우리 삶의 자리에서 생기는 법입니다. 그래서 흔히 고난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말하기도 합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단순히 죄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다양하고 고통의 원인들도 신비한 영역에 속합니다. 하나님 하시는 일을 우리는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시에는 그 의미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지나고 나면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난은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연단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 주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져야 하기 때문에 부름 받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고난이 오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남아있을 제자들에게 결코 녹녹치 않을 세상살이를 예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좁고 험한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셨고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2.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우리는 시험 앞에 다음과 같이 대응합니다. 첫째는 깊은 걱정의 수렁에 빠집니다. 물론 걱정 자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나 걱정의 수렁에 빠져드는 것은 인생을 더 어렵게 합니다. 둘째는 자포자기하고 체념합니다. 셋째는 분노하고 책임을 전가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가 이 범주에 속합니다. 그들의 이런 원망과 책임전가는 반복적이고 습관적이었습니다. 물이 없어도 원망과 분노이며 양식이 없어도 지도자들의 책임을 추궁하며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걱정, 도피, 분노 등 이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 가능하기는 하나 어느 것도 문제의 극복이나 우리 삶에 궁극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모세의 방법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그들의 모든 자구책이 소용없게 되었을 때 모든 사정을 안고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습니다. 모세는 고통의 샘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25절) 이것은 백성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자 했던 모세의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믿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은혜의 결과였습니다.

 3. 희망을 버리지 말라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27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희망을 가지고 광야의 전진을 계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엘림이라는 오아시스에 도착하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엄청난 시련의 풍파가 있었어도 가나안을 향한 전진을 멈추지 말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는 마라의 큰 시련이 있는가 하면 엘림의 은혜도 예비되어 있습니다. 엘림에서 만난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의 숫자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7과 12는 모두 충만함을 뜻하는 완전수입니다.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고 마시고 쉬기에 충분한 오아시스임을 의미하는 상징수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삶의 시련과 풍파가 있을지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의연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존재하고 삶의 여건은 더욱 팍팍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자들의 것입니다. 마라의 시험은 광야의 첫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라의 쓴물이 생수로 변하듯 광야의 모든 시련들도 하나님 은혜로 이길 수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광야 생활의 시험은 불가항력적 어려움이었지만 하나님은 문제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십니다. 때문에 문제 극복 비결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평화롭게 하며 노래하게 만들며 만족과 감사를 누리게 만들겠습니까? 무엇이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오늘과 내일의 대책이 되겠습니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희망을 움켜잡게 만듭니까? 무엇이 넘어진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능력입니까? 누가 우리를 이 광야를 지나 건너편 가나안에 이르도록 도울 것입니까?
 이는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주 예수님의 은혜뿐입니다. 주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마라의 사건은, 광야에서의 살길은 오직 은혜뿐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예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