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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7
주여, 반석 위에 세우소서!
2021 홍해작전

셋째 날 : 6월 19일(토)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교회(계 2:8-11)
(계 2:8-11)


1. 서머나 교회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단 한 가지도 부족하다거나 책망하지 않으시고 칭찬만 하셨습니다. 서머나는 에베소의 북쪽에 있는 항구 도시이며 리디아 주의 수도로 크게 번성한 도시입니다. 서머나는 BC 195년부터 로마의 신전을 건립한 친 로마 도시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로마의 황제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마침 이 시기에 황제 숭배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과 교회가 충돌을 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많은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이 순교의 역사는 이후 수백 년 동안 계속되었고. 대표적인 순교자로는 폴리캅을 들 수 있습니다.

2. 주님의 모습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자신을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소개합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은 영원하신 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입니다(사41:4, 44:6, 48:12, 계 1:17, 2:8, 22:18). 또한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는 부활하셔서 영원히 승리하신 분을 의미합니다. 언제든지 순교할 각오를 하며 살던 서머나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이렇게 영생을 주시고 부활의승리를 주시는 분으로 환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셨습니다.

3. 칭찬

1)실상은 부요한 자이다 : 서머나 교회의환난은 순교에 이르게 되는 박해를 말하는 것이요 궁핍은 경제적인 가난을 의미합니다. 가난은 그들의 십자가였습니다. 더구나 박해자들은 믿는 자들의 가산을 약탈하는 경우가 빈번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부유한 자들로 인정하셨습니다. 믿음과 영적 자산과 하늘에 쌓은 보물을 생각할 때 부요한 자라는 것입니다.
2)비방을 견딤 : 서머나에는 유대인 이민자들이 많았고 그들은 같은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머나 교회를 비방하며 박해의 선두에 섰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들을 참 유대인이 아니며 사탄의 회당이라고 지칭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살지 않기 때문이며 외식과 위선과 교만에 빠져 있고 그리스도를 배격하는 일에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머나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유대인의 만행을 견디면서 믿음의 참 모습을 견지하였습니다.

3) 담대한 신앙 :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믿음을 잘 지켜 고난을 견디고 환난 중에도 승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0절의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의 ‘십 일’은 숫자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십 일이라는 기한을 정하신 것은 아무리 불같은 시험이라도 끝날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4. 권면
주님께서는 환난을 이기는 방법으로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은 끝까지 잘 견뎌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비록 죽음과 맞바꾸는 시간이 오더라도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믿음 위에 굳건히 서서 모든 시험을 감당하라는 권면이십니다. 끝까지 싸워 이긴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5. 이기는 자
죽도록 충성하여 싸워 이긴 자에게 주님은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둘째 사망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훗날 서머나 교회는 교회사에 길이 빛나는 영광스러운 역사를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본질인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기를 끝없이 시도했고 조화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며 자기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던 예루살렘 교회를 본받아 든든한 반석 위에 우리 교회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넷째 날 : 6월 21일(월)
핍박과 유혹의 시험을 이기라
(계 2:12-17)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박해와 유혹이라는 양면의 시험이 항상 있습니다.
그 대표적 경우가 버가모 교회였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박해의 고난을 용감하게 대응하고 순교로 이겼으나 그 후에 유혹이 찾아왔을 때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해 주님의 책망을 받게 됩니다.

1. 버가모 교회에 임하신 주님
버가모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12절) 입니다. 좌우에 날선 검은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해서 정리하시는 진리의 말씀을 의미하고, 주님께서 이 진리의 말씀을 들고 나타나신 것은 버가모 교회의 영적 혼돈을 치유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2. 버가모는 어떤 곳인가?
주님은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데’라고 말씀하십니다. 버가모는 서머나에서 북쪽 100km에 위치한 곳으로 인근 지역의 정치적 중심지였습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모두가 당시의 로마라고 하는 큰 권력의 시달림 속에 있었고 황제 숭배라고 하는 종교적인 열풍 속에서 여러 모로 핍박과 환난을 당했습니다. 로마가 버가모를 군사와 정치의 중심지로 삼았기 때문에 주님은 버가모를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세속 학문, 퇴폐적 예술, 헬라의 종교들, 로마의 황제숭배와 정치권력의 압력이 혼재된 버가모 교회는 ‘이 세상 임금’에 의한 정치적 박해가 큰 문제였고 이런 정치권력과 결탁한 각종 종교세력의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3. 칭찬
주님께서는 사탄이 사는 곳에서 박해를 받아 순교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주의 이름을 붙잡고 믿음을 버리지 않고 신앙을 지킨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13절의 ‘안디바’라는 사람은 ‘Antipas, 반대하는 모든 자’라는 의미로 순교자 모두를 지칭하는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개인 이름의 별명이기도 합니다.

4. 책망
주님께서 버가모 교회를 책망한 이유는 발람의 교훈(민 22-25장)을 따르는 자들과 니골라당을 따르는 자들 때문이었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박해에는 용감하게 저항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행음하게 한 발람의 교훈에 쉽게 빠졌습니다. 여기에 니골라당의 유혹까지 가세하여 성도들을 타락으로 몰고 갔습니다.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유혹은 일맥상통하여 예수님은 성도들이 느슨한 영적 자세를 가지면 자칫 영적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경고하셨습니다.

5. 회개하라
주님은 버가모 교회에 강하고 신속한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모든 잘못된 것 앞에서는 변명하거나 합리화하지 않고 회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회개할 때마다 용서하시는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늘 보장되어 있습니다.

6.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만나와 흰 돌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만나를 주시겠다는 것은 일상의 복을 주시겠다는 것과 동시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시는 은혜를 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요 6:35). 또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주신다 함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영광과 기쁨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성공과 실패 속에서 귀한 교훈을 얻어 환난 날에 주의 이름을 지키므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유혹 앞에서 깨어있어 대적하고 분별하므로 신앙의 정결함을 지켜나가 하늘의 상급을 날마다 누리고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날 : 6월 22일(화)
새벽 별을 주리라
(계 2:18-29)

주님께서는 가장 작은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에 가장 긴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규모는 작았으나 구성원들의 양상이 매우 다양했습니다. 전통적 신앙을 지킨 주류 그룹이 있었고,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는 이탈자들이 있었고, 그리고 이쪽도 저쪽도 아니면서 자기들의 신앙과 양심을 지켜나가는 제3의 세력도 있었습니다.

1. 두아디라는 어떤 곳인가
버가모에서 동남쪽 64km지점에 위치한 두아디라를 보면 지금까지 북진하던 말씀의 방향이 남쪽을 향해 내려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아디라의 특징은 공업도시였고, 상업도 매우 발달해서 많은 상업조합들이 있었습니다. 행16장에 나오는 자색 옷감장사 루디아도 두아디라 사람이었습니다. 두아디라는 고대로부터 태양신 아폴로를 섬겼고, 여신 아데미를 섬기기도 하였습니다. 교회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으나 바울의 에베소 전도 기간 중에 설립되었거나 루디아의 전도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2. 두아디라 교회에 임하신 주님
두아디라 교회에 임하신 주님은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18절)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계시록에 단 1회 사용되었으며 두아디라의 주신인 아폴로에 비교할 수 없는 광명의 본체이신 주님을 보여주십니다.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음’은 원수를 짓밟는 강력한 심판주의 모습인데 그가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감추어진 것을 감찰하시는 분이시며 회개하지 않는 악한 세력들을 강력하게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3. 칭찬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에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안다'고 하시며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고 하셨습니다(19절). 사업이란 믿음의 실천을 의미하며 사랑 믿음 인내가 어우러진 매우 균형 잡힌 신앙을 가졌다고 칭찬하십니다. 섬김은 예루살렘 교회를 본받아 구제 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와 같이 두아디라 교회는 매우 바람직한 신앙요소들을 균형 있게 갖추었던 교회였습니다. 더 나아가 두아디라 교회는 에베소 교회와는 대조적으로 신앙이 나중에 더 좋아졌다고 칭찬하셨습니다(욥 8:7, 요 2:10).

4. 책망
20절의 이세벨은 아합 왕의 처로 북왕국 이스라엘을 바알 숭배에 빠지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종교적 변절, 바알 숭배로 인한 도덕적 타락으로 내몰았고, 의인들을 핍박한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두아디라의 이세벨은 그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세벨처럼 활동한 이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적도 없고 그의 입에 말씀을 주신 적도 없는 자칭 선지자 이세벨은 자신을 절대시하며 자신만이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이세벨은 백성들에게 행음과 우상제물을 먹도록 유혹했습니다. 2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 이를 거절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두아디라 교회는 교회 안에서 선지자라 칭하는 자가 이런 일들을 행할 때 금지시키고 징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주님의 강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어 거짓 교훈을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질병과 환난과, 이세벨을 따라가는 영적인 추종자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겠다는 징계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5. 권면과 약속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믿음을 잘 지켜낸 사람들에게 믿음을 굳게 잡을 것을 권면하십니다. 그리고 이기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 곧 영적 권능을 주시겠다고 하시며 마지막으로 예수님 자신이신 새벽 별을 주신다고 하십니다(계 22:16).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이러한 신실한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섯째 날 : 6월 23일(수)
실제적 무신론자들
(계 3:1-6)

세상에는 이론적 무신론자들과 실제적 무신론자들이 있는데 전자는 세상에 있고 후자는 교회 안에 있습니다. 신앙인의 형식과 절차 그리고 제도적 과정에 순응하지만 실제 삶은 철저히 인본주의에 머물고 세속의 가치와 이생의 자랑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실제적 무신론자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데 교회는 실제적 무신론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에 라오디게아 교회와 함께 한 가지도 칭찬하지 않으시고 책망만 하시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혹독하게 질책하셨습니다.

1. 사데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사데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일곱 영이란 하나님의 성령을 의미하고 일곱 별은 우주적 교회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명목만 살아있는 사데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임재하시고, 교회를 다스리시는 교회 주관자로 임재하셔서 고치시고 새롭게 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주님으로 임재하셨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지만 아주 버리시지 않고 더 가까이 오셔서 큰 능력으로 임재하시어 회복시키시고 온전케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2. 사데는 어떤 곳인가
사데는 두아디라 남쪽 50km에 위치한 언덕 위에 세워진 고대도시로 BC 6세기에는 인근 모든 지역을 관장했던 대도시였습니다. 양털의 염색을 최초로 시작한 곳이며 염색과 섬유 산업의 발달로 1세기에는 큰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고 사치와 부도덕이 도시 전체를 지배했습니다.
사데 교회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세기 중반쯤 세워졌을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이것은 2세기에 유명한 주석가요 변증학의 거두 멜리토가 사데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발전과 성장을 이루었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지도자가 있던 교회였지만 사데 교회는 도시의 퇴페적 문화를 방어하지 못하고 쇠락해갔습니다.

3. 사데 교회의 문제
사데 교회에는 큰 박해의 흔적도 없고 경제적 고통의 문제도 없었습니다. 또 이단으로 교회가 혼란케 되는 일도 없었고 내분으로 시련을 당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데 교회를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로 가장 극단적 표현으로 책망하셨습니다. 결국 사데 교회는 무사안일과 선교적 열정의 상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도전보다는 세상과의 평화로운 공존 속에서 안전함만 추구했던 것이 교회의 생명력의 상실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4. 주님의 명령
주님은 사데 교회의 모든 치유와 회복의 시작을 영적 자각에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2-3절). 깨어 있다는 것은 신앙인의 근본 자세이며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사데 교회의 가장 우선적인 해야 할 일은 영적 상태를 자각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우리를 향해 베푸신 사랑은 대충 행하신 일이 아닙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삶을 통해 주신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대충했던 신앙생활을 회개하여 영적 빈사상태에서 일어서야 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한 가지도 칭찬할 것 없는 사데 교회를 버리시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찾아오시고, 교회를 소생 시키시는 주님으로 찾아오셨습니다.

5. 약속과 축복
주님은 회개하고 깨어나 믿음을 소생하면 흰 옷을 입고 주와 함께 하는 성도가 되게 하시고(계 7:13-14)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그 이름을 시인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데 교회에 찾아오셔서 회개와 각성을 요구하시며 주신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는 이 하루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일곱째 날 : 6월 24일(목)
작은 능력으로 큰 일 하는 교회
(계 3:7-13)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함께 주님께 책망이 없이 칭찬만 들은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좋은 교회는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되지 아니하고 영적이며 내재적이며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켜나가는 선교적 기준에 의하여 판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특별한 교회였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교회들이 다 대도시에 위치했던 반면 빌라델비아는 내륙에 위치한 소읍이었고 교회 또한 모든 면에서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로 평가되었고 주목받지 못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실 때 빌라델비아 교회는 최고의 교회였습니다.

1. 빌라델비아 교회에 임하신 주님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빌라델비아 교회를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심’은 여호와 하나님의 본성이시며 속성입니다. 진실함이란 거짓에 대비되는 참이며 불완전에 대비되는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는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 안에 주권적인 절대자로 임하심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또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신 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주님께서 열어두신 문은 개인에게는 구원의 문이요, 교회에게는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두 열린 문을 통하여 모든 성도들이 구원의 확실함 가운데 거하고 온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선교해야 합니다.

2. 빌라델비아는 어떤 곳인가
빌라델비아는 사데에서 남쪽으로 약 50km에 위치하고 버가모 왕국에 속한 도시였으나 사데와 함께 티베리우스 황제 때 로마에 복속되었습니다. 도시 규모가 작은 것에 비해서 유대인 공동체가 활발하게 활동했고, 유적지도 많지 않은 도시였습니다. 빌라델비아라는 지명은 버가모 왕국의 앗탈루스 2세가 형을 기념하여 명명한 것으로 전해지며 교회는 언제 세워졌는지에 대한 기록도 분명하지 않고 괄목할만한 지도자도 없었습니다.

3. 칭찬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8절)라는 말씀에서 보듯 주님은 그들에게 닥친 환난과 유혹과 시험이 있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한 사람의 배교자도 나오지 않은 것을 칭찬하십니다. 박해의 내용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마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받은 박해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1세기 후반의 유대교는 대단한 중흥기를 맞았는데 예루살렘 멸망 이후 흩어진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에 의해 인근 지역 나라들의 유대인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세력이 확장되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빌라델비아의 유대인들에 의해 교회를 향한 유혹과 압박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에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잘 지킨 것에 대해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4. 권면과 약속
주님께서는 그토록 빌라델비아 교회를 박해하고 시험에 들게 했던 유대인들이 이제는 성도들 앞에 무릎 꿇고 회개할 때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9절).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끝까지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으면 오히려 악한 자들이 찾아와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징계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스스로 회개케 하심을 믿고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믿음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두 번째 축복은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험이 오나 이기게 하시며 시험 자체를 면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12절). 이 약속은 진리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이기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하고, 흔들리지 않고, 아름다운 일꾼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외형적인 모습에 구애받지 말고 믿음 잘 지켜서 큰 일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여덟째 날 : 6월 25일(금)
자기 진단의 착각
(계 3:14-22)

신앙생활은 영적인 자기 진단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를 진단하고, 바르게 평가하는 일이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도 자기 진단에 크게 실패하였습니다. 그들 스스로는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17절)라고 진단했지만 주님께서 보시기에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는 사데 교회와 같이 단 한 가지도 칭찬 받지 못하고 책망만 들은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1. 라오디게아 교회에 오신 주님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14절)가 라오디게아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아멘이시다’는 참으로 진실하시다는 의미입니다(사 65:16). 하나님은 진실하실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진리이신 분입니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심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사역과 말씀과 삶의 모든 내용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보여주심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 모습은 ‘창조의 근본’이신데 창조의 근본이란 그로부터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는 의미입니다(요 1:3, 골 1:15). 주님께서 이와 같은 모습으로 빈사 상태에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오신 것은 살리시고 회복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2. 라오디게아는 어떤 도시인가?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에서 남쪽 64km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 바로 곁에 히에라볼리, 골로새 등의 도시들이 있는 곳입니다. 교통의 요충지였고 모직 공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유명한 의학교가 있어서 안약을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하여 AD 60년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을 때도 로마의 도움을 거절하고 독자적으로 재건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에바브라가 설립하고 초기 목회자로 사역한 것으로 보여집니다(골 4:12 이하). 4세기에도 중요한 종교 회의가 이곳에서 모인 것을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상당 기간 영향력 있는 교회로 존속한 것으로 보입니다.

3. 칭찬 없는 책망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네가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고 미지근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14, 15절)고 책망하십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앙 상태가 확실하지도 않고 열정도 드러나지 않을 뿐 아니라 진정성도 없는 매우 모호한 모습이라고 질책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환난의 역사나 박해나 내부분열이나 이단의 훼방 등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유롭고 안정적이고 평온했습니다. 그런데도 신앙 상태는 매우 흐릿하여 주님께서는 이것을 매우 이중적이고 위선적으로 보셨습니다. 모든 초대교회들이 가난한 교회와 이웃들을 섬기기 위해 모금을 하고 헌신할 때도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런 일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한 군데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떤 면으로 그들은 자기들끼리의 종교놀이에 심취했던 것입니다. 이에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 영적인 온도를 높이라고 촉구하십니다.

4. 권면과 약속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첫째는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둘째는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셋째는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18절). 불로 연단한 금은 단련된 믿음을, 흰 옷은 회개하여 주의 보혈에 정결함을 받는 성도들이 되고, 안약을 눈에 바르라는 것은 바른 분별력을 가진 성도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토해내고 싶고 역겹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어찌하든지 회개하고 새롭게 될 것을 권면하시는데 그 이유는 주님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며 징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주님의 권면은 주님과 하나가 되자고 하시는 것입니다(20절).
일곱 교회에 주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신앙의 온도를 높여 하늘 보좌에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요약 정리 : 허숙 권사(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