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번역에 있어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신명, 즉 “신의 이름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이다. 성서를 번역할 때는 당연히 본토인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기독교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신학적으로 복잡한 개념인 기독교의 신을 번역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각 나라에는 고유한 종교 전통과 독특한 신에 대한 개념이 있다. 따라서 이런 전통적인 신 개념의 어떤 부분을 받아들이고 어떤 부분을 배제하면서 신의 이름을 번역할 것인가는 언제나 성서번역자들 사이의 심각한 토론거리였다.
동아시아 3국의 성서를 보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모두 신의 이름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일본은 ‘신님’을 뜻하는 가미사마(神)를 사용하고, 중국은 기독교는 샹디(上帝)를, 가톨릭은 톈주(天主)를 주로 사용한다. 한국은 현재 종파나 교파에 따라 하나님 또는 하느님을 사용한다. 모두 종교 전통이 다르기 때문에 번역이 다르게 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를 더 살펴보면 가톨릭과 정교회, 성공회는 하느님을 사용하고 기독교는 하나님을 사용한다. 가끔 하나님과 하느님의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를 묻는 질문에 ‘하느님’은 하늘의 계신 신을 의미, ‘하나님’은 한 분이신 하나님을 강조하는 말이라는 대답을 보곤 한다. 이는 100점 만점에 약 20점 정도의 대답이다. ‘하나님’이라는 신명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번역자의 의도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정착되기까지 성서번역자들 사이에 어떤 논쟁이 있었는지를 통해 알아보자.
가장 먼저 성서를 번역한 스코틀랜드 장로회의 존 로스 선교사는 신의 이름으로 하느님과 하나님을 모두 사용했다. 하지만 모두 ‘하늘’과 ‘님’의 합성어로 아래아(ㆍ)의 표기를 달리한 것이었다. 이 번역은 원시 유교와 도교의 신인 ‘상제’(上帝, 최고의 지위를 가진 하늘의 신)에서 착안한 번역으로 ‘상제’에는 최고와 창조주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자가 같은 샹디(上帝)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일본에서 성서를 번역한 이수정은 ‘신’(神)을 사용하였다. 일본 성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수정은 기독교에 귀의한 직후부터 성서를 번역했고 별도의 신학공부를 한 적은 없으므로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한 선교사들은 이수정의 ‘신’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귀신과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로스의 ‘하나님’을 받아들이되 서울식 표기인 ‘하느님’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한 선교사가 있었다. 언더우드였다. 언더우드는 ‘하느님’은 한국의 다신교인 무교의 최고신이기 때문에 천주(天主), 상주(上主), 천부(天父) 등의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천주’를 사용한다면 가톨릭, 성공회, 기독교 사이의 연합사업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언더우드와 다른 선교사들 사이에 논쟁이 시작되어 성경번역이 지체되었다. 논쟁이 시작된 1895년부터 10년 동안 선교사들은 신명의 번역에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언더우드가 ‘하 님’을 수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게일 선교사의 한국어 연구였다. 게일은 한국의 언어와 정신문화에 매력을 느끼고 한국의 문화를 깊이 연구했다. 게일은 한글학자인 주시경의 도움을 받아 ‘하늘’의 어원에서 하늘(天), 한(大), 하나(一)의 의미를 찾아냈다. ‘하느님’에는 하늘의 초월성과 한의 위대성, 하나의 유일성이 모두 담겨있다는 것이었다. 게일은 서양을 포함한 여러 민족들의 신명과 비교해도 조선의 ‘하 님’이 가장 하나님의 속성을 잘 담아내는 이름이며 한국의 전통문화가 서양문화보다도 더 성경의 문화와 밀접하다고 생각했다. 언더우드도 삼국시대의 건국신화를 연구하면서 “고대 한국에 계시로 주어진 하 님에 대한 원시 유일신 신앙”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1904년 ‘하느님’을 수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느님’은 1912년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과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아래아(ㆍ)가 폐지되면서 ‘하나님’이 되었다. 이렇듯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신명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에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자, 우주의 주재자이며, 가장 크고 위대하신 분이며, 유일한 신앙의 대상이라는 것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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