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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1
헌신과 반역
(막 14:1-11)




 <십자가의 대속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은혜입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절대 타락한 존재이며 절대 무능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으신 분이심을 수없이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에만 ‘보내신 이, 보내신 분, 보내신 아버지’ 등의 표현이 39회나 등장합니다. 그리고 요 6:38에서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하신 주님의 사역에 참여하고 헌신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에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과 대응들이 있었습니다.

 1. 거절과 반대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1절). 이때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십자가를 위해서 예루살렘에 도착하셔서 마지막 한 주간을 보내고 계시던 때였습니다. 주님은 공생애 3년간 충분히 말씀하셨고 가르치셨고 그의 사랑과 능력과 진심을 다 나타내셨습니다.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증거들을 충분히 나타내셨지만 주님을 가장 잘 알아보아야 할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확실한 증거 앞에서도 도무지 예수님을 인정하고 수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두 가지로 제시하는데 첫째는 오해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관심은 유대의 정치적 독립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온전한 예배의 회복을 메시야 시대의 조건으로 보았는데 성전에서 제사장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성전을 헐라’는 과격한 말씀을 하시는가 하면 폭력을 반대하는 등의 예수님의 모습에서 ‘예수는 메시야 시대를 지연시킨다.’는 오해를 증폭시켰고 그래서 죽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구주이신 것의 논리와 증거와 성경의 가르침이 너무나 분명했지만 유대인 지도자들은 무지막지한 반대와 거절로 하나님의 사역에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시기와 질투심입니다. 유대인들의 반대와 예수님께 대한 살해의 음모에는 성전을 장악한 그들이 차지한 막대한 이권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을 것입니다. 영적 무지와 분별력 부재에서 오는 오해, 자신의 무능을 숨기고 종교권력을 독점하고 싶은 기득권자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세속적 이권과 관련된 욕심 등이 반대와 거절의 편에 그들을 서게 했습니다. 아무리 심각한 자기 이익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 때문에 명백한 진리 편에 서지 못하고 하나님 사역에 저항한다면 이는 결국 파멸하게 될 너무나 어리석고 무지한 일입니다.

 2. 반역에 가담한 사람
 본문에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한 여자의 갸륵한 헌신이 소개됩니다. 베다니 마을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자가 예수님께 매우 값진 순전한 나드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께 부어 바쳤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가룟 유다는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야지 그렇게 허비하느냐’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는 매우 총명하고 사리판단이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여인이 바친 향유를 보고 가룟 유다는 그것이 300데나리온 이상이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능력과 재주 때문에 주님은 그에게 돈궤를 맡기셔서 재정을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직분도 재능도 신뢰도 모두 자기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악용했습니다. 주님 곁에서 말씀을 배우고 거룩한 뜻을 분별하고 주님께서 하시려는 일에 헌신할 생각은 없고 오로지 자기 이익을 채우는 것에만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도둑질을 했고 마지막에는 은 30에 예수님을 넘겨주는 파렴치한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그가 마귀에게 사로잡힌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물질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배반의 무리에 합류합니다. 중세교회를 타락시킨 가장 큰 원인도 성직자들의 탐심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 거래했습니다. 심지어 성직을 매매하고 고위직 성직자들은 뇌물을 받고 성직자들의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돈을 받고 죄를 사해주는 면죄부 판매가 전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모두가 가룟 유다의 후예들입니다. 성경도 불의한 소득을 거절할 것과 낭비하지 말 것과 선한 일에 인색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근본은 욕심을 멀리하는 것에 있습니다.
 가룟 유다도 다른 사도들처럼 거룩한 복음의 전도자가 되어 생명을 주님께 바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배신의 자리에 이르게 한 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이 거짓을 낳고 양심의 마비를 낳고 후안무치한 인면수심이 되게 했고 결국은 돈과 함께 그 자신도 망했습니다. 불의한 소득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탐심 때문에 헌신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삶을 버려야 합니다.

 3. 영원히 기념되는 헌신
 십자가 사건은 인류 역사에서 반복될 수 없고 반복될 필요도 없는 오직 한 번의 역사일 뿐입니다. 이 역사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원한다고 해서 그 시기를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기회를 상실하지 않고 예수님 머리에 향유를 부어 헌신한 그 여자를 칭찬하셨습니다. 동시에 더 중요한 일은 그 가치의 비교불가능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고 축복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돕고 구제하고 섬기는 일을 매우 가치 있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행위를 극찬하시고 우리 삶의 모델로 제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지닌 일이 있는데 곧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대속의 사역입니다. 십자가의 대속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은혜입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절대 타락한 존재이며 절대 무능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구제와 돌봄이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고귀한 선물이지만 그것으로 사람이 구원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은혜는 비교불가능의 가치를 지닌 완전 은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일에 참여한 이 여자의 행한 일을 복음이 전파되는 세상 모든 곳에서 기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고치는 것도 세상의 이념에서 그 능력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20세기 전쟁의 세기를 마치면서 전쟁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는 다시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말씀에서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다’는 말씀처럼 참담한 일입니다. 세상을 고치는 능력,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도 오직 십자가의 복음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모든 선한 일에 힘쓰되 더욱 복음의 사역에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의 목회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의 목회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진리를 분별하고 진실을 따르며 인간의 욕심 때문에 배신과 거절의 대열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하시는 일에 전심으로 참여하는 것이 우리 도리입니다. 복음만이 비교불가능의 가치와 능력이며 나와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진리임을 깨닫고 이를 증거하는 일에 우리의 옥합을 깨뜨리고 가장 고귀한 향유를 바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