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문장 검토와 최종 type를 하기 위해 전문 typist에게 맡겼다. 그 무렵 한국인들의 이민이 시작되어 필라델피아에도 한인들이 떼를 지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종윤의 집은 갑자기 대서소, 복덕방, 직업알선소와 같았다. 그의 아내가 수고하는 것으로는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그는 섬기던 교회 죤스목사님을 찾아가 한국인 영어반을 신설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매일밤 8시부터 10시까지 약150명이상씩 모인 성인들에게 생활영어를 죤스목사와 이종윤은 열심히 강의한다. 물고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종윤은 로간 한인촌을 조직하여 한국인이 사는 동리를 새벽에 빗자루 들고 쓰는 청소운동을 시작하고 자기들 내외는 일 나갈 터이니 이종윤에게 자기 아이 데리고 병원에 가 달라는 이들까지 생길 만큼 이종윤은 로간 한인촌의 대부였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 일간지에 몇 차례씩 이종윤의 자기 민족 이민자 위한 수고를 사진과 함께 기사화했다. 서재필 박사 기념사업회 초대 사무총장이 되어 Jayson Center를 세워 이민자의 생활, 직장, 교육등을 돕고 Medical clinic을 세워 건강을 돌보았다. 로간 한인촌을 세워 Ad Hoc Committee for Logan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타민족과 함께 하는 공동체를 운영했다. 미국에서 해외봉사를 위한 Peace Corps(평화봉사단)이 있듯이 국내 봉사를 위한 Vista제도가 있다.
의사, 변호사, 목사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이들로 구성된 vista들은 매주 10불정도씩 받고 이민상담, 실업상담, 건강상담, 직업상담등 이민자를 위한 특별봉사를 한다. 이종윤은 한인 이민자를 돕기 위해 Vista에 가입하여 필라델피아 이민국 정식 통역관이 된다. 불법이민자 또는 불법 체류자들이 하루에도 수명씩 체포되어 간이재판을 받게 된다. 영어가 서투른 이민자들에게 위로와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누나를 칼 들고 죽이겠다고 따라 다녔다는 17세 소년이 동리사람들의 신고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중 이종윤은 통역겸 변호를 하여 무죄선언을 받기도 했다. 우리말과 영어 표현의 구문이 다른 점을 지적하여 판사를 설득시킨 것이다. “Don't you have a knife in your hand.” (네 손에 칼이 없었는가) 라는 질문을 한 경찰에게 소년은 “아니요”라고 대답하려면 “아니요 나는 칼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한국어 어법대로 “네” 라고만 대답을 하니 칼을 가진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날 재판관에게 당당하게 예문 몇 개를 만들어 들려주며 소년에게 질문을 했을 때 그의 대답은 여전히 같은 대답이 나오자 판사가 한국어의 구문을 따라 갓 이민 온 소년이 한국식 표현을 한 것으로 판단하고 현장에서 칼을 빼앗은 경찰의 고발이 잘못된 것으로 판결했다.
매일밤 계속되는 영어수업 시간에 성경공부시간 비슷한 강의가 이어지자 학생으로 등록한 이민자들의 흥미가 더해갔다. 그러던 어느날 이종윤은 과로로 쓰러졌다. 문병을 온 반 대표들이 교회를 세우자고 제안한다. 이종윤은 이미 필라델피아에 필라 한인교회, 연합교회, 북부 필라델피아 교회들이 있으니 그곳에 가서 예배드리라 했다. 그들은 이미 다 그곳에 가 보았으나 우리가 교회를 세우면 좋겠다고 떼를 쓴다. 그들 중엔 한국에서 믿음을 갖고 오신 분도 있으나 대부분이 이종윤의 영어 강의를 통해 복음을 처음 들은 이들이었다. 병석에서 깊은 기도를 하던 이종윤은 유학 온 학생이 유학을 마치면 귀국해야 되는데 이곳서 교회를 세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주와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고(행20:32) 자신은 담대하게 떠났듯이 이종윤은 복음 전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하고 필라델피아 제일장로교회를 Holy Trinity Bethlehem Presbyterian Church의 한국어 class로 시작하여 교회를 출발시킨다. 필라델피아에서 제일 늦게 시작한 교회라 하여 필라 제일장로교회라 명명했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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